'미 외교 거목'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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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외교 거목'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별세
  • 장하니 기자 giattl@cstimes.com
  • 기사출고 2023년 11월 30일 17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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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장하니 기자 |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29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미중 수교의 물꼬를 트고 미소 데탕트(긴장완화)를 이끈 미국 외교계의 거목이다. 냉전의 세계 질서를 바꾼 전략가로 평가받으며 외교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렸다.

'레알폴리티크(Realpolitik)'를 추구한 그는 국제 정치에서 국가 이익, 세력 균형을 중시하는 마키아벨리식 현실주의 접근법을 취했다.

'키신저 외교'라는 말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미국의 외교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그는 특히 1972년에 닉슨 미국 대통령, 마오쩌둥 중국 주석간 정상회담 성사를 이끄는 등 미중 수교의 토대를 닦았다. 또 구 소련과의 데탕트를 조성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으며 베트남전 종식에도 기여했다.

유대인 출신으로 1923년 독일에서 태어난 키신저 전 장관은 1938년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1954년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69년 취임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의해 국가안보보좌관에 발탁됐다.

닉슨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뒤 1973년에는 제56대 국무장관에 임명됐다. 그는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후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포드 정부에서도 두 자리를 겸직하다가 1975년 11월 안보보좌관에서는 물러났다. 미국 정치사에서 안보보좌관과 외교 수장을 겸직한 사람은 고인이 유일하다.

'키신저 외교'의 대표적 성과는 미중 수교의 토대 마련이다.

고인은 1971년 두 차례 중국을 방문해 저우언라이 당시 총리와 회담했다. 이를 통해 이듬해 닉슨 대통령이 방중했으며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이 20여 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관계 개선에 나선 순간으로, 미국과 중국은 1979년 공식적으로 수교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소련과의 데탕트 전략으로 1969년부터 전략무기제한협정 협상을 주도해 1972년 협정을 맺기도 했다. 또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을 토대로 1973년 파리에서 북베트남 정부와 휴전협정을 체결했다. 이에 베트남전 종식에 기여한 공로로 당시 베트남측 협상대표와 함께 197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키신저 전 장관은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도 여러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는 1975년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4자회담 개최를 제안했다. 또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으며 당시 현직에 있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과 만났다.

키신저 전 장관은 1977년 1월 지미 카터 행정부 출범으로 국무장관에서 퇴임한 뒤에도 저술, 연구, 강연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미국이 외교 문제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고 뛰어난 목소리 가운데 하나를 잃었다"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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