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솔지의 잇사이트] 일회용품 규제 백지화…소상공인·소비자 노력 '물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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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솔지의 잇사이트] 일회용품 규제 백지화…소상공인·소비자 노력 '물거품'
  • 안솔지 기자 digeut@cstimes.com
  • 기사출고 2023년 11월 09일 0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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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안솔지 기자 | 정부가 오는 24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일회용품 규제 정책을 사실상 백지화했다. 식당이나 카페, 편의점 등에서 종이컵·플라스틱 빨대, 비닐봉투 등 일회용품 사용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하기로 한 것이다. 이로 인해 그간 정부를 믿고 일회용품 규제에 대비해오던 소상공인과 불편을 감수하며 묵묵히 따랐던 소비자들의 노력은 일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정부는 전세계적으로 친환경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자 일회용품 사용에 따른 환경 파괴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 2018년 식품접객업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했다. 2019년에는 대형 매장 내 비닐봉투 사용을 제한하며 규제 범위를 차츰 늘려갔다. 

2021년 12월에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개정·공포했고, 이를 지난해 11월 24일부터 시행했다. 이에 따라 식당과 카페에서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젓는 막대 사용이 제한됐다. 면적 33㎡ 이하 매장을 제외한 편의점과 제과점 등에서도 비닐봉지 판매를 금지했다. 

당시 환경부는 소상공인의 부담을 고려해 1년의 계도기간을 갖기로 했고, 이 계도기간이 오는 23일 종료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계도기간 종료를 불과 2주 앞둔 지난 7일 갑작스레 소상공인의 부담을 이유로 계도기간 연장을 선언하며, 일회용품 규제 자체를 사실상 백지화한 것이다.

소상공인연합회와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 등은 이같은 정부 결정에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회용품 규제에 대비하던 일부 소상공인들은 당황스럽다는 입장도 내놓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A씨는 "정부가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한다기에 종이컵도 다 바꾸고, 주방 선반도 새로 짜고, 설거지가 늘어날까봐 식기세척기도 구매했다"며 "여기 들어간 비용도 많은데 계도기간이 연장된다니 당황스럽고 괜히 부지런떨었다는 생각도 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동네에서 개인 카페를 운영 중인 B씨는 "일반 빨대보다 단가가 비싼데도, 정부 정책에 따르고자 종이빨대를 구매해 놓은 상황이었는데 고스란히 재고를 떠안게 됐다"며 "하루 아침에 이렇게 정책을 바꾸어 버리면 앞으로 정부를 어떻게 믿고 장사를 할 수 있겠나"라고 토로했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정부가 소상공인들이 현장에서 실제로 겪는 어려움을 감안해 계도기간을 늘리는 등 정책을 바꿀 수는 있다. 하지만 규제 시행을 코앞에 두고 그동안의 정책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리는 식의 변화는 그간 정부를 믿고 준비해 온 소상공인들을 '바보'로 만드는 것은 물론, 현장 혼란을 되려 가중시킬 것이다. 

게다가 정부의 이번 조치로 일회용품 사용 절감을 위한 소비자들의 실천 의지도 깡그리 무시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해 10월 환경부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일회용품 사용량 절감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97.7%, '일회용품 규제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응답이 87.3%에 달했다. 불편을 감수하더라고 일회용품 사용 절감이 필요하다는 취지에 공감해 묵묵히 실천을 준비해 온 소비자들의 노력을 우습게 만든 셈이다.

정부 정책은 멀리 내다보며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 1년 만에 손바닥 뒤집듯이 바뀐 정책을 어느 누가 신뢰하고 따를 수 있겠는가. 결국 정부는 이번 조치로 일회용품 규체 정책의 동력을 스스로 잃게 됐다. 이미 힘을 잃은 정책을 두고 "자발적 참여에 기반하는 지원 정책으로 전환하겠다"는 '빈 말'만 운운하는 정부가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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