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없이 집 나섰다가는 망신당하기 십상"
상태바
"현금 없이 집 나섰다가는 망신당하기 십상"
  • 김재훈 기자 press@cstimes.com
  • 기사출고 2011년 10월 12일 08시 21분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만원이하 카드 '소액결제제한' 이후 미리 본 가상 소비풍경
   
 

금융당국이 소액결제 거부제도 시행을 올해 말 예고하고 있다. 일반 소비자는 물론 정부나 카드사, 금융권, 일반사업자 등 이해관계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격론이 오가고 있다.

신용카드 수납을 의무화한 현행 여신전문금융업법이 가맹점주의 권익을 지나치게 침해하고 있다는, 즉 중∙소∙영세상인들의 이윤보장에 금융당국은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시민사회권에서는 반대의견이 우세하다. 소비자들의 불편이 커지고 세원 투명성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가 배경에 깔려 있다.

1만원 이하 소액결제는 전체 신용카드 결제 건수의 30%에 육박하고 있다. '소비편의' 측면에서 봤을 때 소액결제 거부는 일정 정도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본보는 소액결제 거부제도가 시행됐다는 가정 하에 바뀌는 생활 속 소비풍경을 미리 그려봤다. <편집자주>

◆ 축축해진 만원짜리 지폐… 부담되는 현금인출 수수료

#장면1= 직장인 최모(25, 여)씨는 길을 걷다 갑자기 생리가 찾아온 느낌을 받았다.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근처 약국을 찾았다. 2000원짜리 소용량 생리대를 주문하고 지갑을 열었으나 잔돈이 없었다.

약사는 "가까운 곳에 현금인출기가 있으니 그 곳에서 현금을 찾아 오라"고 말했다. "알겠다"며 발걸음을 뗀 최씨 앞에 예상치 못한 난관이 찾아왔다. 현금인출기가 고장이 났던 것이다.

약국으로 돌아간 최씨는 어쩔 수 없이 1만원이 넘는 대용량 제품을 구입했다. 최근 대형마트에서 대량으로 싸게 구입한 생리대들이 집에 켜켜이 쌓여있는데도 말이다.

#장면2= 평소 취미생활로 한강변에서 조깅을 즐기는 직장인 김모(34, 남)씨. 퇴근 후 김씨는 운동차림을 갖추고 집을 나서던 중 급히 1만원짜리 지폐를 챙겼다. 한강변에 있는 편의점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사먹기 위해서였다.

이전까지는 신용카드 한 장만 주머니 속에 찔러 넣고 나가면 됐지만, 신용카드 소액결제 거부제도 시행 이후 지폐가 지참물 목록에 추가됐다.

그렇게 약 한 시간 정도를 달린 김씨는 근처 편의점을 찾았다. 600원짜리 생수 한통을 사든 김씨는 주머니 속에서 만원짜리를 꺼냈다. 배어난 땀으로 인해 축축해진 돈을 점원에게 전달하기가 미안했다. 돈을 받아 든 점원의 표정도 달갑지만은 않아 보였다.

휴식을 마친 김씨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가뿐 숨소리와 운동복 마찰소리, 지면을 딛는 소리 외에 한가지 소리가 추가됐다. 거슬러 받은 잔돈이 김씨의 주머니 속에서 달그락거리고 있었다. 신경이 쓰인 김씨는 잔돈을 손에 쥘 수 밖에 없었다.

#장면3= 어린 손자가 눈에 아른거렸던 주부 박모(59)씨는 분가해 살고 있는 아들집을 찾기로 했다. 걸어서 10여분 정도로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무릎 관절이 편치 않았던 탓에 택시를 탔다.

목적지에 다다랐을 무렵 박씨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그런데 택시기사 A씨는 다짜고짜 박씨를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소액결제가 안 되는 것을 모르고 탔느냐"며 박씨를 몰아세웠다. 박씨는 이 같은 정보를 사전에 접한 바가 없어 크게 당황했다. 주머니를 뒤져 잔돈을 모았지만 택시비를 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A씨의 거듭된 재촉에 박씨는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유모차에 손자를 태우고 종종 걸음으로 나오는 며느리가 시야에 들어온 순간 박씨는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장면4= 지방에서 올라와 혼자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대학생 강모(21, 여)씨는 분실 우려가 있는 현금 대신 쓰라는 이유로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신용카드를 거의 쓰지 못하고 있다. 평소 소비패턴 자체가 학용품이나 간단한 생활용품, 식당 이용 등 1만원 미만 결제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강씨는 현금을 받은 뒤 통장에 넣어두기도 했으나 은행방문이 잦아 크게 번거로웠다. 특히 수업종료 시간이 은행 업무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허다해 그때마다 빠져 나가는 인출수수료가 부담됐다.

강씨는 일주일정도 쓸 수 있는 현금을 미리 찾아 자취방 은밀한 곳에 숨기고 필요할 때 마다 꺼내 쓰고 있다.

비록 큰 돈은 아니지만 자취방의 보안이 허술해 혹시나 도난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집을 비운 강씨에게는 늘 습관처럼 따라붙었다.

컨슈머타임스 김재훈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