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연설 중 언급한 '롤러코스터 삶'…사망순간도 '혁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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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연설 중 언급한 '롤러코스터 삶'…사망순간도 '혁신화'
  • 유경아 기자 kayu@cstimes.com
  • 기사출고 2011년 10월 06일 23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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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시간) 사망한 애플의 '전설' 스티브잡스는 개인사에 대해서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CEO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학 졸업식 연설을 통해 자신이 살아온 불우했던 어린 시절, 암투병, 좌절과 성공 등에 대해 상세하게 털어놨다.

잡스가 했던 "곧 죽을 거란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인생에서 커다란 선택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다. 외부의 기대, 자부심, 좌절과 실패 등은 모두 죽음 앞에서 덧없이 사라지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이다"라는 말에서 죽음까지 혁신의 도구로 이용한 그의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잡스는 1955년 2월2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몇 주 만에 입양기관을 거쳐 폴과 클래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됐다.

잡스의 생부 압둘파타 존 잔달리와 생모 조앤 심슨은 위스콘신대 대학원 재학 중 캠퍼스 커플로 만났으나 심슨 가족이 결혼을 반대하면서 미혼모인 상태로 잡스를 낳았다.

생모인 조앤 심슨은 입양 당시 대학을 나오지 않은 잡스 부부가 마음에 들지 않아 주저하다가 "스티브를 꼭 대학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에야 입양 허락을 내렸다.

잡스는 학창시절 내내 사고뭉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잡스 부부는 다행히 그를 사랑으로 감쌌다.

이후 잡스는 명문 리드대학에 입학했지만 6개월 만에 중퇴하는 등 어려운 생활을 했다. 그는 당시 친구의 방바닥에서 자고 콜라병을 반납해 5센트를 모아 먹을 것을 샀다. 한 사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주는 식사를 먹기 위해 무려 11.3㎞를 걸어가기도 했다.

잡스는 1976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알토스에 있는 입양부모의 집 창고에서 '컴퓨터 천재' 스티브 워즈니악과 애플을 창업하고 이듬해 개인용PC 애플Ⅱ로 성공을 맛봤다. 그러나 1985년 30세의 나이에 자신이 영입한 CEO 존 스컬리과 이사회에 의해 회사에서 쫓겨나게 됐다.

그는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모든 것이 사라지고 너무나 비참한 기분을 느껴 몇 달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며 "공식적으로 실패한 사람이었고 실리콘밸리에서 도망가고 싶었다"고 당시 심경을 털어놨다.

하지만 스티브잡스는 현실에 굴하지 않았다. 그는 컴퓨터 개발사 넥스트와 컴퓨터그래픽(CG) 영화사 픽사를 설립해 재기에 성공했고 경영난을 겪고 있던 애플로 복귀했다.

이후 그는 애플을 세계 최대 IT업체로 성장시키는 발판이 되는 아이맥과 아이팟(2001년), 아이폰(2007년), 아이패드(2010)를 잇따라 성공시키며 전세계 소비자들을 '스마트 시대'로 이끌었다.

잡스는 그러나 이 같은 외적인 성공에도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한 뒤 2009년 간이식 수술까지 받는 등 긴 투병생활에 시달렸다.

잡스는 복잡한 가정사와 함께 대학 중퇴 후 방황하던 시절,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난 사건, 암 선고에 간이식 수술까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잡스는 암선고를 받고 죽음에 직면한 후에도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명언을 내놓으면서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IT의 새 역사를 썼다.

그는 '롤러코스터'와 같은 성공과 좌절의 연속인 인생을 살았지만 스탠퍼드대 연설 말미에 밝혔듯이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전진하면서(Stay Hungry. Stay Foolish)" 자신의 신념에 따라 치열하게 살다 세상을 떠났다.

컨슈머타임스 유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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