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시선] 이야기가 넘치는 야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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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아의 시선] 이야기가 넘치는 야외운동
  • 노경아 한국일보 교열팀장 admin@cstimes.com
  • 기사출고 2022년 09월 21일 10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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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잠시 반짝 유행하다 사라지고, 한자에 영어를 더하는 등 국적 불명의 엉터리 단어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조어가 신문과 방송에까지 등장하면서 직업(교열기자)상 무시할 수 없습니다. 내키진 않지만 신조어를 틈틈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 하나. 상황에 따라 의도적으로 띄우는 신조어도 있습니다.

'산스장(산+헬스)'이 대표적입니다. 최근 대한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 등 건강 관련 단체는 물론 각 지자체 등에서 미는 신조어입니다. 코로나 여파로 실내 운동시설을 꺼리자 야외 운동을 권장하며 내놓은 말입니다.

야외 운동시설은 산뿐만 아니라 아파트 쉼터, 동네 공원, 한강변 등지에도 설치돼 있습니다. '강스장(강+헬스장)' '공스장(공원+헬스장)' 등의 말이 생겨난 이유입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앞 산책로에는 마라톤 운동, 하늘걷기, 파도타기, 팔 돌리기, 허리 돌리기, 평행봉, 거꾸로 매달리기 등 다양한 운동기구가 있습니다.

산책로에서 운동한 지 두 달이 넘었습니다. 처음 며칠간은 사람들이 나만 보는 것 같아 쭈뼛거리며 기구에 올라갔는데, 지금은 마라톤 운동부터 하늘걷기까지 신나게 몸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오전 6시 30분, 늘 같은 시간에 가다 보니 눈인사를 주고받는 이들도 생겼습니다.

건강과 더불어 이웃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는 즐거움도 꽤 큽니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부는 나와 같은 시간에 어김없이 나와 도토리를 줍습니다. 오늘도 몇 알 안 남은 도토리가 바람에 후드득 떨어지니 아내가 재빨리 주워 남편이 멘 배낭에 넣습니다. 키가 큰 남편은 아내의 손이 가방에 닿기 좋게 앉았다 섰다를 반복합니다. 내 눈에는 두 사람이 스쿼트(squat·발바닥을 바닥에 밀착한 채 등을 펴고 무릎을 구부렸다 폈다 하는 운동)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며칠 전부터 이들에게 경쟁자가 나타났습니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곱게 쪽 진 어르신이 같은 시간에 도토리를 주우러 나옵니다. 기운이 좋아 지팡이로 나무를 툭 치면 입 벌린 도토리들이 사방에 떨어집니다. 빈 껍질이 더 많은데도 어르신은 소리칩니다. "이건 내 도토리니까 건들지들 마슈!" 그러면 부부도 웃으며 답합니다. "암유~"

7시쯤엔 60대 초반쯤 되는 두 부부가 10분 간격으로 등장합니다. 먼저 오는 부부는 금슬 좋게 손을 꼭 잡고 나란히 걸어갑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아주머니의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가고 나면 또 다른 부부가 나타나는데 매일 아내가 남편을 끌고 갑니다. 두 사람도 손을 잡고 있지만, 아주머니보다 두 걸음 뒤처진 아저씨는 연신 투덜댑니다. 그래도 손을 놓지 않는 걸 보면 그리 싫진 않은가 봅니다. 라디오 음악방송을 들으며 그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뮤지컬의 한 장면 같습니다.

야외운동이라고 늘 낭만적이진 않습니다. 따로 자세 등을 지도해주는 사람이 없는 탓에 기구를 잘못 이용하는 이들도 종종 눈에 띕니다. '하늘걷기'의 경우 양 손잡이를 잡고 발판에 올라서서 다리를 앞뒤로 교차시키는 운동기구입니다. 그런데 마치 그네를 타듯 두 발을 동시에 앞뒤로 움직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운동효과는커녕 허리에 무리가 가니 기구에서 내려올 때 무척 힘들어합니다. 몸의 균형을 잃어 떨어지기도 합니다. 운동하기 전에 기구의 이용방법과 주의사항을 꼭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장 난 기구가 방치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자칫 그런 기구를 사용하다 사고로 이어질까 걱정입니다. 지자체가 주민의 안전을 위해 파손, 고장, 흔들림 등 운동기구의 상태를 정기적으로 확인해주면 맘이 놓이겠습니다.

걷기, 달리기 등 야외활동하기 가장 좋은 계절입니다. 가을길을 걸으면 여름철 뜨거웠던 고뇌와 분노 등 감정의 찌꺼기들도 말끔히 사라집니다. 숲길도 좋고 산길도 가로수길도 좋습니다. 나이, 무릎 등 핑곗거리를 찾지 말고 신발 끈부터 조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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