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요구불예금 37조 증발…유동성 위기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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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요구불예금 37조 증발…유동성 위기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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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김하은 기자]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고금리 예금 경쟁이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 등 저원가성 예금이 한 달 사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원가성 예금에서 이탈한 돈은 평균 금리 연 3%를 웃도는 수신예금에 몰리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저원가성 예금 이탈 추세로 부족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채 발행을 늘리고 있으나 자금 조달 비용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말 기준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673조3602억원으로, 한 달 새 36조6033억원이 줄었다.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이 700조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올 들어 처음이다.

언제든지 현금화가 가능해 금리 연 0.1% 수준에 불과한 요구불예금은 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을 줄여주는 저원가성 핵심 예금이다. 은행 입장에선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아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효과를 본다.  

그러나 금리 상승기에 맞춰 은행들의 수신금리 경쟁이 심화되자 요구불예금이 줄어드는 추세다. 요구불예금에서 빠져나간 돈은 예·적금으로 향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정기 예·적금 잔액은 전달보다 28조원 늘어난 750조5658억원으로 집계됐다. 

한국은행이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최대 3%까지 인상할 가능성이 커지자 요구불예금에서 예·적금으로 갈아타는 수요는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저원가성 예금의 이탈로 금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은행들의 정기예금 금리는 평균 3%대로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지난달 말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연 3.4%(상위 3개 은행 기준)까지 뛰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연 3%는 물론이고, 2금융권인 저축은행의 연 3.42%과 비교해도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은행으로선 고금리 정기예금이 늘어날수록 조달 비용이 증가하게 되는데 이는 결국 대출금리 상승 효과를 불러오게 된다. 조달 비용이 커지면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등 주요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도 오른다. 코픽스 인상에 따른 대출금리 상승으로 가계대출 차주들의 이자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에도 코픽스는 정기예금 금리 인상 영향 등에 따라 2.38%를 기록했다. 상승폭은 0.40%포인트로 코픽스 공시를 시작한 이후 가장 큰 폭을 나타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도 같은 폭만큼 뛰었다. 

은행들은 저원가성 예금 이탈로 부족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은행채 발행을 늘리고 있다. 1년 미만의 단기 상품 중심인 예·적금을 중장기 기업대출 재원으로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최근 금리 상승 여파로 채권시장이 경색되면서 은행 대출을 더 늘리는 추세다. 

은행권에선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나는 만큼 은행채 발행을 통해 미리 대출자금 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달 국내 은행채 순발행액은 7조680억원으로 집계됐다. 순발행액은 발행액에서 상환액을 뺀 나머지 금액을 의미한다. 

금융권 안팎에선 은행 예·적금과 은행채에 시중자금이 몰리면 제2금융과 기업에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요구불예금을 늘리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저원가성 자금 이탈에 따라 은행 조달 비용이 상승하면 비은행의 유동성 부족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은행들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파킹통장 금리를 더 높이거나 우량 중소기업 고객을 유치하는 등의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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