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자본시장 '부산‧대구'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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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자본시장 '부산‧대구'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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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지훈 기자]
대구 북성로 공구 박물관. [사진=김지훈 기자]

[컨슈머타임스 김지훈 기자] 여행을 좋아하는 금융 기자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자본시장의 역사를 길 위에서 만났다. 어린 시절 열광했던 어느 만화 속 주인공이 된 마냥 한국거래소 학예사가 직접 선별해 전국 14곳으로 내던진 구슬을 찾아 헤매고 왔다고 할까. 이는 3박 4일간의 자본시장 역사탐방이자 1200km에 이르는 대장정이기도 하다. 땡볕과 폭우에 몸은 지쳤을지 몰라도 마음만큼은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처럼 설레고 열정적이었다. 희비가 교차했던 자본시장의 역사를 리와인더 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편집자주>

근대 자본시장 역사 여행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서울에서 시작해 인천, 군산, 부산을 거쳐 대구까지 긴 여행의 마지막 시간을 기록해보자.

(왼쪽) 과거 눌원빌딩 한국거래소 모습. [사진=한국거래소] 현재 모습 [사진=김지훈 기자]

지난 시간에 이어 과거 한국거래소가 위치했던 부산 눌원빌딩을 방문했다. 2005년 통합거래소 출범 후 3년 동안 부산 중앙동에서 다져진 기반을 바탕으로 2008년 범일동으로 본사를 이전한 곳이다.

늦은 시간 방문해 사진을 찍고 있으니 건물 관리인이 다가왔다. 신분을 밝히고 과거에 이 장소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나갔기에 더 기억에 남는 장소다.

현재는 금융과 관련된 모든 회사들이 빠져나갔지만 과거에는 BNK부산은행 등이 위치했다고 한다. 이곳은 前한국거래소가 있어서 유명하기도 하지만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필자의 기억에는 소극장이 있어 소규모 영화 상영과 시사회를 보러 간 추억이 있다. 그 시절 한국거래소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찍어뒀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섰다.

부산국제금융센터 전경. [사진=김지훈 기자]

다음 행선지는 부산 금융의 중심지 문현동이다. 이곳에는 랜드마크 타워가 존재하니 바로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이다. "여기가 한국거래소?"라고 물음표가 그려질 때 익숙한 황소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 한국거래소에서 자주 보던 녀석과 닮아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 촬영을 마치고 건물을 올려다보니 규모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지상 63층으로 비수도권에서 업무용(비주거용)으로는 가장 높은 건물이라고 한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국거래소가 본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부산이 본사다. 경영지원본부, 파생상품시장본부, 청산결제본부 3개 본부가 있으며 선물거래 중심으로 업무가 이뤄지고 있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자본시장역사박물관을 운영 중이니 꼭 방문해볼 것을 권한다. 다녀온 지인들은 하나 같이 "볼거리가 많고 뷰 맛집"이라는 일관된 평가를 내렸다.

부산 한국거래소 본사. [사진=김지훈 기자]

그런데 한국거래소는 왜 본사가 부산에 있고 서울이 사무소가 된 것일까?

한국거래소 관계자의 설명을 들었을 때 2005년 한국증권거래소, 한국선물거래소, 코스닥위원회, ㈜코스닥증권시장 4개의 기관이 통합돼 설립됐다고 한다. 이때 지방 균형발전 정책에 따라 '한국증권선물거래소법'에서 본사를 한국선물거래소가 있던 부산에 두도록 한 것이다. ​현재는 법률에서 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거래소 정관(회사의 조직과 활동에 대해 정한 기본 규칙)에서 본사의 위치를 부산에 두는 것으로 정하고 있다고 한다.

BIFC에는 한국거래소뿐만 아니라 농협중앙회 부산본부, 신용보증기금 부산지부,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 부산국제금융연수원, 해양금융종합센터, 한국해양보증보험 등이 입주해 있어 금융의 메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다.

부산상공회의소 모습. [사진=김지훈 기자]

고향집에 방문하기 전 과거 한국선물거래소의 흔적을 쫓아 떠났다. 현재는 부산상공회의소가 자리한 곳이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現한국거래소가 위치했던 곳이니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자. 필자에게는 학창 시절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따러 갔다가 낙방한 비운의 장소로 기억된다.

[사진=김지훈 기자]

고향집에서 선잠을 자고 눈을 떴다.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운 느낌이다. 3박 4일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 날이다. 아침 일찍 '대구 북성로 공구 박물관'을 목적지로 내비게이션 찍고 하염없이 낙동강 줄기를 따라 달렸다.

최종 목적지는 과거 대구미곡취인소가 위치했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 대구에 설치됐던 농산물(쌀과 콩 등)이 선물거래됐던 장소로 당시 인천‧군산과 함께 3대 현물거래시장으로 불렸다. 미곡취인소는 이 시리즈를 읽은 독자라면 이제 친숙할 것이다. 이에 미곡취인소의 설명보다는 재미있는 일화들을 소개한다.

대구미곡취인소는 특이하게도 산하에 스모선수단을 운영했다. 다이큐잔 다카요시가 대표적이며 그의 부친은 육군어용상인으로 대구에 살았다고 한다. 일본에서 열린 스모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1939년 전시체제로 인해 미곡시장이 모두 폐쇄되고 총독부가 직접 관리하는 조선미곡시장 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이 회사가 전시 미곡 유통을 대행하게 됐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여파로 1936년 마산에서 정미소를 차렸던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와 1938년 쌀가게를 열었던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는 사업을 접어야 했다. 이병철 회장의 경우 마산에서 하던 사업을 접고 대구로 올라와 삼성상회를 열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은 북성로공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의 원형을 복원‧보존하고 있기에 도심 속 이색적인 장소로 다가온다. 일제 강점기부터 정미시설, 중개시설 등으로 사용돼 오다가 한국전쟁 이후 한국인이 사용해오면서 많은 변형이 이뤄진 건물이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KRX홍보관 모습. [사진=김지훈 기자]

이색적인 모습에 잠시 상기됐다가 이내 건물 사진을 촬영하는 동안 아쉬움이 밀려왔다. 자본시장 역사여행도 이제 끝났기 때문이다. 3박 4일 동안 군산‧대구를 제외하면 어쩌면 평범한 도심 속 장소들을 돌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거래소 학예사의 설명과 관련 문헌들을 찾아보면서 평범한 장소들이 특별해지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싶다. 여행도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다.

영화에 빠져있던 대학 시절 '새벽의 7인'이라는 영화를 보고 무작정 체코 성 키릴과 메서디우스 정교회 성당을 방문했다. 건물 벽에 남아있는 총알 자국을 보기 위해서 떠난 여행이었다. 동행했던 친구가 "허무하다"는 말을 수없이 내뱉는 사이 필자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이번 자본시장 역사여행도 마찬가지다. 대구미곡취인소 현재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고 이곳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후 즐거운 마음으로 이번 여행을 시작했고 아드레날린이 샘솟았다. 또 다시 이런 기회가 돌아올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배낭을 메고 자본주의 역사의 흔적을 쫓는 '행복회로'를 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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