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주정뱅이 - 인생이 던지는 잔혹한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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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 - 인생이 던지는 잔혹한 농담
  • 이해선 기자 lhs@cstimes.com
  • 기사출고 2016년 05월 31일 07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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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 창비 / 276쪽 / 1만2000원
   
 

[컨슈머타임스 이해선 기자] 장편소설 '토우의 집'으로 제18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권여선이 선보이는 다섯번째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에는 2013년 여름부터 2015년 겨울까지 발표한 일곱편의 단편소설이 묶여있다.

한국문학의 특출한 성취로 굳건히 자리매김한 권여선의 이번 소설집은 이해되지 않는, 그러면서도 쉽사리 잊히지 않는 지난 삶의 불가해한 장면을 잡아채는 선명하고도 서늘한 문장으로 삶의 비의를 그려낸다.

인생이 던지는 지독한 농담이 인간을 벼랑 끝까지 밀어뜨릴 때, 인간은 어떠한 방식으로 그 불행을 견뎌낼 수 있을까.

미세한 균열로도 생은 완전히 부서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탁월한 감각을 발휘해온 권여선은 그럼에도 그 비극을 견뎌내는 자들의 숭고함을 가슴 먹먹하게 그려낸다.

이 책에는 술 마시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유는 제각각 이지만 그들은 습관적으로 혹은 무언가를 견디기 위해 술을 마신다.

아이를 빼앗기고 술을 마시다 알코올중독이 되어버린 '봄밤'의 영경이 술에 취한 채 김수영의 시를 큰 소리로 외는 장면은 그 중 단연 압권이다.

바닥을 맞닥뜨린 자의 절망을 고통스럽게 보여주며 취기 어린 인물의 행동을 복기해내는 권여선의 언어는 곧 허물어질 것 같은 '주정뱅이'의 아슬아슬한 내면을 서늘하게 포착한다.

인간은 그 누구라도 벼락처럼 떨어지는 불행에 대비할 수 없다.

인생에는 누구의 탓이라고 책임을 전가할 수조차 없는 비극이 산재한다. 그래서 어떤 비극은 마치 인생이 던지는 악의적인 농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층'에는 "이게, 내 탓은 아니잖아요?"라고 묻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 물음에 대구를 이루듯 이 작품은 "내가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라는 말로 끝을 맺지만 소설은, 그리고 문학은 분명 도움이 된다.

모든 것을 잃은 이들은 서로를 위로할 수 있다.

마치 '봄밤'의 영경과 수환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렇게 꽉 쥐지 말아요, 문정씨. 놓아야 살 수 있어요"라는 말로 상대를 위로할 때, 그 위로는 이 소설을 펼치는 우리에게도 건네진다.

마치 "안녕 주정뱅이" 하고 담담한 듯 건네는 쓸쓸한 인사처럼 말이다.

안녕 주정뱅이 / 권여선 / 창비 / 276쪽 /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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