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회장님 '갑질' 성난 소비자 산업 지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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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회장님 '갑질' 성난 소비자 산업 지도 바꾼다
  • 한행우 기자 hnsh21@cstimes.com
  • 기사출고 2016년 04월 08일 0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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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한행우 기자] 개인적으로 '피자는 미스터피자'라고 생각했다. 다른 브랜드는 입에 그다지 맞지 않았다. 피자가게를 찾아가든 시켜먹든 늘 미스터피자였다.

10년 넘은 단골로서 매장에 지불한 돈을 생각하면 내게도 쓴 소리할 권리는 있다.

어쨌든 '미피'에 대한 애정도 이젠 과거형이다.

정우현 MPK 회장의 경비원 폭행 사건 직후 최근 뜨고 있는 '피자 ○○○' 매장이 우리 동네에도 있는지 검색했다. 배달이 되는지 확인했다. 어떤 메뉴가 좋을까 고민하고 있다.

이 참에 갈아타려는 생각이다. 선택지가 이렇게 많은데 굳이 '갑질' 기업 제품을 소비할 이유가 없다. 호감도가 수직 하강했다.

나와 같은 평범한 소비자들이 맛있게 피자를 먹은 대가로 지불한 돈이 정 회장에게 부와 권력을 쥐어줬다. 그 결과 안하무인 오너로 만들었다는 생각에 안타깝다.

그에게서 '겸손한 사업가'가 될 기회를 빼앗은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할 지경이다. 다시 소박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야 하지 않겠냐는 일종의 의무감마저 든다.

돌아선 소비자들의 마음은 당장 금전 손실로 이어진다. 실제 정우현 회장 사건이 알려진 후 3일 연속 MPK 주가는 급락했다.

'회장님 주먹 한방에 시가총액 80억원이 증발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불매운동 효과가 가시화되면 경영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은 당연하다.

이미 MPK는 실적 악화로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생계가 막막한 가맹점주들이 길거리로 나서 '불매운동만은 중단해달라'며 읍소하고 대리 사과를 할 정도다.

갑질 이슈에 대응하는 소비자들의 적극성과 영향력이 날로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분노 응집의 '광장' 역할을 하는 것도 여기에 한몫 했다.

인터넷 검색 횟수와 댓글은 관심의 척도다. 당장 모 포털사이트에 미스터피자를 검색하면 '폭행' '불매' '갑질' 등이 연관 검색어로 뜬다. 소식을 몰랐던 사람들도 한번쯤 눌러보게 만든다.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의 운전기사 폭행 논란 당시 '대림 e-편한세상을 불매할 수도 없고…'라며 아쉬워(?)하는 글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어떤 방식이든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다.

법적 처벌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과 정우현 MPK 회장은 최근 나란히 검찰에 고발됐다. 시민단체인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이들을 각각 고발 조치했다.

서민에게 모멸감을 주고 명예를 훼손하는 처신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하는 현실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엄중한 법의 처벌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는 거다.

남양유업 갑질 사건부터 포스코 라면상무, 대한항공 땅콩회항, 몽드드 마약질주 등의 사건을 거치며 국민적 피로감이 절정에 달한 상태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광범위하게 형성됐다.

결국 집행유예로 끝나긴 했으나, 비교적 도주 우려가 적었던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을 143일간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로 재판 받게 했던 것은 법보다 무서운 국민정서의 위력이었다.

업계 1위 롯데면세점이 알짜 면세 사업권을 박탈 당한 것도 오너 일가 밥그릇 다툼, 일본 기업 논란이 빚은 '반롯데' 정서가 무엇보다 크게 작용한 탓이었다.  

영화 '베테랑'의 모티브가 됐던 SK일가 최철원의 '매값 폭행' 사건이 이맘때 발생했더라면 사실 SK는 아주 '벌집'이 됐을지도 모른다. 

한때는 재벌이라는 지위가 면죄부가 되는 사회이기도 했다. 폭발적 경제성장에 일조했다는 이유에서였는지 모르겠다.

존경 받는 경제리더에 대한 관심보다 당장 먹고 사는데 급급해 사회 정의 구현이 더딘 시기였다.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암묵적으로 가능했다.

지금은 다르다. 인권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저열한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혐오감은 팽배하다. 가진 자들의 도덕성과 품행에 대한 검열도 다양한 통로로 가능해졌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침묵하는 '을'에 머물기를 거부한다. 갑질에 당하고 있을 만큼 약하거나 무능하지도 않다. 기업의 생존권을 쥐고 흔들 수도 있다.

결국 소비자의 지갑이 진정 '갑'이다.

내가 고용한 노동자, 내가 만만히 취급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만년 을 직원도 회사를 떠나면 모두 소비자다. 

반면교사(反面敎師)라 했다. 고매하신 회장님, 사장님, 재벌 2·3세들이 일련의 갑질 사건들로부터 부디 배우는 것이 있길 바란다. 

경솔한 말 한마디, 불량한 손 버릇 한 번으로 공든 탑이 우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간접 경험만큼 훌륭한 교과서가 또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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