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면세 시장 혼란 '근시안' 정부가 문제다
상태바
[기자수첩] 면세 시장 혼란 '근시안' 정부가 문제다
  • 한행우 기자 hnsh21@cstimes.com
  • 기사출고 2016년 04월 04일 07시 48분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컨슈머타임스 한행우 기자] '조변석개(朝變夕改)', 아침에 바꾸고 저녁에 고친다. 그만큼 일관성 없이 정책이나 계획 따위가 수시로 바뀐다는 뜻이다.

최근 면세점 제도 개선을 놓고 보이는 정부의 갈팡질팡 행보를 수식하는 단어로 이만한 게 없어 보이니 하는 얘기다. 

지난 2013년 정부는 관세법 개정으로 면세점 특허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였다. 지난해 줄줄이 특허권 만료를 앞두고 재심사를 받은 기존 사업자들 중 결국 탈락자가 나왔다.

SK네트웍스가 운영하는 워커힐면세점과 롯데의 잠실월드타워점이 첫 희생양이 됐다. 대신 신세계와 두산, 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이 손잡은 HDC신라 등 새 사업자가 등판했다.

관세법 개정 당시부터 업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반대 여론이 거셌다. 중국 소비자 유입으로 막 개화되기 시작한 면세산업의 경쟁력을 꺾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중국·일본 등 이웃한 나라들이 자국 면세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향상을 위해 힘쓰는 것과도 정면 배치되는 결정이었다. 국내 기업들을 키워주진 못할 망정 어째 발목을 잡으려하냐는 전문가 지적이 줄을 이었다.

이 같은 비판은 해외에서도 제기됐다.

영국의 유통전문지 무디리포트는 지난해 10월 '황금알을 낳는' 한국의 면세산업이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면세 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마틴 무디' 무디리포트 회장은 "한국인들은 면세산업이 보물상자인 줄 알지만 실제로는 비용이 많이 들고 복잡한 사업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불모지가 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그는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사업자 재선정과 관련해 "전문적이고 영향력 있는 강한 사업자가 사업권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고 비합리적"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의 입법부는 반재벌 정서에 치우쳐 규제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며 "한국정부가 과연 면세시장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쐐기'도 박았다.

업계 안팎의 지적처럼 부작용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지만 충격파는 해를 넘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롯데와 워커힐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실직 위기에 내몰렸다. 정부의 은근한 압박에 서둘러 가오픈을 진행한 신규사업자들의 초반 성적은 초라했다.

곧 문을 닫아야 하는 면세점에는 손님이 붐비는 반면 철저한 준비 없이 떠밀리듯 문을 연 새 면세점들은 한산했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 유치도 난항을 겪고 있다. '5년 시한부' 사업장에 누가 대대적인 투자를 하겠냐는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다. 결국 명품 브랜드 콧대만 높여준 꼴이라는 볼멘소리가 업계 내부에서 흘러나왔다.

결과를 떠나 방식의 엉성함에 대한 쓴 소리도 적지 않다.

1등으로 달리고 있는 선수의 한쪽 다리를 꺾어 다른 경쟁자들과 나란히 서게 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평등이냐는 근원적 의문이다. 그게 정부가 주장하는 '창조경제'의 골자냐는 것이다.

롯데라는 기업에 대한 반감을 지워내면 당장 멀쩡한 직장을 타의에 의해 잃게 되는 수백명 직원들의 황망한 마음이 눈에 들어온다.

굳이 롯데를 죽이지 않고 신세계나 두산 등 다른 사업자들을 키우는 방법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창조적인 방향을 생각해내라고, 한 수 앞이 아니라 열 수 앞을 내다보라고 국민들이 세금으로 정치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효과'보다 '결점'만 선명해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면세점 5년 특허기간을 다시 10년으로 늘리겠다는 거다. 롯데와 워커힐의 부활 가능성도 타진하고 있다.

이거야말로 '아니면 말고'식 졸속행정의 전형이다. '해봤더니 별로네? 그럼 다시 바꾸지 뭐'라는 안일한 생각이 읽힌다. 법·제도가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뒤집을 수 있는 성격의 것이었나 묻고 싶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어린아이 장난처럼 무책임한 행보다. 지난 2013년의 실책을 인정하는 셈이다. 3년만에 면세법은 다시 수술대에 눕게 됐다. 시장에 한바탕 혼란만 야기한 채다.

롯데와 워커힐의 사업 지속 여부를 놓고 이번에는 신규 면세점들이 큰 고민에 빠졌다. 인력·브랜드·소비자 유치에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서다.

엉성한 정책을 믿고 따른 뒷감당은 기업들의 몫으로 남게 됐다.

정부의 좁은 시각, 짧은 생각, 서툰 판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지 소비자들은 이번 사태를 통해 배웠고 또 기억할 것이다. 

실수하면서 배우는 건 학생들에게나 해당되는 관용이다. 앞으로는 시장을 퇴보시키는 이 같은 정부 무능이 다신 없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