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ELS 달콤함에 빠졌다가 '된서리'…똑똑한 소비자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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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ELS 달콤함에 빠졌다가 '된서리'…똑똑한 소비자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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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김수정 기자] "10년에 1번 있을까 말까 한 특이 케이스입니다."

26일 홍콩항생중국기업지수(HSCEI·이하 H지수)가 8000선을 내주면서 H지수를 추종하는 주가연계증권(ELS)들이 대거 원금손실 위기에 놓였다. 이에 관한 업계 관계자의 코멘트다.

다른 관계자들도 H지수가 이렇게 폭락할 줄은 꿈에도 예측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당연히 주가 예측은 신의 영역이다. 관련 투자자들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ELS란 지수·채권·주식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구조화증권의 일종이다. 투자수익이 특정 주권의 가격 또는 주가지수의 변동에 연계돼 결정된다. 기초자산 가격이 미리 정한 하한선을 뚫고 내려가지만 않으면 일정 수익률을 챙길 수 있다.

반면 계약기간 동안 기초자산 가격이 기준점 아래로 1번이라도 떨어질 경우 손실이 난다. 손실 한도는 무한대다. 확률상 희박하나 원금을 100% 다 잃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제법 간단히 설명되지만, 실상 그 설계 공식은 금융공학에 능통한 전문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어렵다고 한다.

"6개월만 넣어 두시면 8% 수익률을 얹어 드려요. 원금손실 위험도 없고요."

ELS를 판매하는 증권사 직원들의 얘기는 달랐다. 직원들은 주식형펀드보다 안전하고 채권보다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달콤한 말로 초고위험 상품을 포장했다.

그렇게 복잡하고 위험한 상품이 '초저금리 시대에 안성맞춤인 중위험∙중수익' 투자상품으로 둔갑하고 있었다.

"원금을 못 돌려받을 수도 있다고요? 몰랐어요."

원금손실 가능성을 모르고 ELS를 샀다고 주장하는 투자자가 속출하고 있다.

작년 발행된 ELS 10개 중 8개는 원금비보장형이었다. 원금보장 옵션을 넣으면 기대수익률이 2~3%대로 떨어져 매력이 없어진단다.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상품은 일단 위험 상품이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금융투자상품을 판매하는 직원은 투자자의 성향을 평가한 이후에 상품을 권유해야 한다. 위험을 기피하려는 성향의 투자자를 위험상품에 가입시키면 안 된다. 단 투자자로부터 '부적합 금융상품 거래확인서'를 받으면 해당 투자자 성향에 안 맞는 상품도 판매할 수 있다.

그러나 불완전판매 논란이 일면 이 확인서는 상품을 판 직원들의 '면죄부'로 전락한다.

창구 직원들은 계좌를 만들러 온 사회초년생부터 연금상품 문의하러 온 어르신까지 모든 방문객을 대상으로 쉴새 없이 영업한다. 계좌 개설하러 온 방문객한테 펀드도 팔고 이것저것 가입시켜야 실적이 쌓인다. 추정컨대 열심히 ELS를 판매했을 것이다.

주위만 봐도 ELS 투자자는 다른 일 보러 갔다가 의도치 않게 상품 설명을 듣고 가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투자자가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가 뒤늦게 이를 인지하고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피해 구제는 어렵다. 소비자가 스스로 불완전판매 사실을 입증하는 험난한 길을 가야 한다. 판매한 쪽은 가입당시 투자자가 작성한 확인서를 앞세워 빠져나간다.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 몫이다.

작년 ELS 발행액은 76조9499억원에 달했다. 지난 2003년 국내에서 처음 ELS가 발행된 이래 가장 많은 액수다. 2003~2008년 5년 간 상환된 금액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고 하면 좀 더 실감날까.

2008년 금융위기로 발행액이 급감한 것도 잠시, 2011년 처음 30조원대를 돌파하고는 꾸준히 규모를 키워 2014년 70조원을 넘어섰다.

"안 팔리면 안 만들죠"

취재하면서 업계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들은 얘기다.

ELS를 붕어빵 찍어내듯 만들어 내 영업직원에게 할당하는 회사. 맡은 판매량을 채우려고 '사탕발림'으로 투자자를 꾀는 지점 직원. 팔짱 끼고 앉아있다가 솜방망이 처벌만 가끔 하는 당국.

모두 문제다.

그러나 이들의 직업윤리와 도덕성에 혀를 차봤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안 나온다. 답은 스스로가 똑똑한 금융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똑똑한 소비자가 기업들을 긴장시킨다는 당연한 논리, 투자상품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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