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시대 역행' 금융사 신입사원 '얼차려' 지양돼야
상태바
[기자수첩] '시대 역행' 금융사 신입사원 '얼차려' 지양돼야
  • 이화연 기자 hylee@cstimes.com
  • 기사출고 2015년 12월 21일 07시 48분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컨슈머타임스 이화연 기자] 기마자세, 야간산행, 해병대 훈련….

병영 프로그램이 아니다. 국내 시중은행 '새내기'들을 위한 연수 프로그램이다. 적게는 수백, 많게는 수천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금융권 취업에 성공했지만, 이런 관문을 통과해야만 구성원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

국내 시중은행들의 '신고식' 절차는 혹독하기로 악명이 자자하다. 지난해 한 시중은행의 신입사원 연수 동영상이 도화선이었다.

일명 '반도의 흔한 연수원'이라는 제목의 짧은 영상은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영상 속 남녀 신입사원들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기마자세로 '얼차려'를 받고 있다. 이들은 이 자세로 3시간 동안 '주인 정신'을 복창했다.

해당 영상을 접한 소비자들은 분노했다. 은행 측은 "3년 전 촬영된 영상이며 연수과정 중 극히 일부분"이라고 해명했지만,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군대식 얼차려 교육을 실시하는 금융사는 한두 곳이 아니다. 모 지방은행에서는 야간 산행과 해병대 극기훈련을 진행하는 등 군대식 교육을 마다하지 않는다.

20대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에게 '선망의 직장'으로 꼽히는 시중은행에서 이런 일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이 씁쓸하다.

모든 기업이 마찬가지지만, 금융권 취준생들에게는 더 큰 '열정'이 강요된다.

높은 학점은 '성실성'의 지표로, 어학성적은 '글로벌 인재'임을 입증하는 증거로 쓰인다. 여기에 각종 금융 관련 자격증과 인턴경력, 대외 활동 등의 '스펙'을 갖춰도 서류 통과조차 벅차다.

한 항목당 수 천자에 이르는 자기소개서 항목 역시 고뇌를 가중시킨다. 은행이 내세우는 인재상에 본인의 경험을 녹여내는 일은 흡사 '등단'을 연상케 한다.

안정성과 고액 연봉을 누릴 수 있는 은행권은 취준생들의 동경을 자아낸다. 하지만 자유로운 복장 등 소위 말하는 '튀는 행동'이 금기시되는 곳이다.

얼차려 교육 역시 경색된 분위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최근 은행권은 '글로벌'이라는 신 기류에 편승했다. 은행들은 앞다퉈 해외 지점을 신설하고 글로벌 기업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먹거리 발굴에 힘쓰고 있다. 창의성을 갖춘 '신 유형' 인재를 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은행이 '글로벌 인재'를 원한다면 이들을 육성할 수 있는 소양 교육이 필요하다는 소리다.

올해 채용시장 역시 '한파'가 몰아쳤다. 업종을 가릴 것 없이 채용 인원은 '신저가'를 경신했다. "얼차려를 받더라도 저 자리에 내가 있었으면…"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청년들의 열정은 순수하다. 이들의 직업정신을 일깨우는 건 얼차려가 아닌 '존중'임을 은행권이 직시해야 할 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