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답은 현장에 있다더니…눈감고 귀막은 금융개혁 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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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답은 현장에 있다더니…눈감고 귀막은 금융개혁 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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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김수정 기자] '금융개혁,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지난달 27일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새누리당 금융개혁추진위원회가 이런 주제를 내걸고 간담회를 열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인 '4대 개혁' 중 상대적으로 부진한 금융개혁을 본격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이날 간담회는 업계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면서 진작부터 관계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해 금융당국 관계자와 각 금융권 협회·기업 수장 등 58명이 참석했다. 은행·보험·여신·증권 등 각 금융권 대표들이 당국에 전달할 '건의문'을 읽었다.

증권사들은 '금융통화위원회에 자본시장 전문가 포함' '외환업무 제약 축소' '레버리지비율 규제 완화' 등을 건의했다.

가장 '핫'한 쟁점은 단연 권용원 키움증권 사장이 대표로 제기한 레버리지비율 규제였다.

지난해 정부가 새로운 영업용순자본비율(NCR) 제도와 레버리지비율 제재를 도입하겠다고 선언, 내년으로 시행 일자를 못박은 이후 이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NCR은 증권사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파산할 경우에도 투자자나 이해관계자를 보호할만큼 '유동성'을 확충했는지 확인하는 게 목적이다.

내년부터 적용되는 '신 NCR' 산출식은 기존 '영업용순자본/총위험액'에서 '영업용순자본-총위험액 / 인가업무 단위별 법정 필요자기자본의 70%'로 다소 복잡해진다.

레버리지비율은 증권사의 부채의존도를 나타낸다. '총자산/자기자본'의 산식으로 구한다.

이때 총자산에서는 종금계정자산, 대손준비금, 투자자예치금, 일시거래미수금을 제외하고 자기자본에서는 대손준비금을 제외한다. 과도한 부채를 예방함으로써 파산을 방지하려는 목적이 강하다.

내년부터 증권사는 이 비율이 1100% 이상이면 '경영개선권고', 1300% 이상이면 '경영개선요구'의 적기시정조치를 받게 된다. 경영개선권고 조치된 증권사는 신규 업무 진출이 제한된다. 경영개선요구를 받은 증권사는 조직축소나 임원진 교체 요구 등을 받는다.

업계에선 정부 발표 직후부터 이들 건전성 규제의 도입시기 유예, 기준 완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레버리지비율 규제가 너무 팍팍해질 경우 증권사 특유의 모험적인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는 게 1차적인 이유다. 경쟁과 혁신, 과감성이라는 금융투자업 고유의 속성을 이 규제가 억누른다는 얘기다.

충분한 준비기간이 선행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날아들고 있다.

대형사를 포함해 상당수 증권사가 이미 레버리지비율 1000%를 목전에 뒀거나 넘어섰다. 대부분 환매조건부채권(RP)이나 주가연계증권(ELS) 등 파생결합증권을 적극 판매해온 회사들이다. 이들이 내년 도입되는 새 규제를 충족하려면 당장 이같은 신용담보상품 판매를 대폭 줄이든지 자본을 대거 확충해야 한다.

대형사와 중소형사 사이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신 NCR의 경우 자기자본의 절대 규모가 큰 대형 증권사일수록 기존대비 대폭 높아진다. 자본 규모가 작은 중소형 증권사에 불리하다는 얘기다.

현장의 소리를 듣겠다는 당국은 업계의 목소리를 매몰차게 외면하고 있다.

신 NCR의 경우 이미 9개사가 자발적으로 을 조기 적용 받고 있는 상황이므로 회사별 차등 조건 적용을 장기화할 수 없다며 도입 연기를 거부했다. 레버리지비율 규제에 대해선 신 NCR의 보완재 격이므로 내년 신 NCR 적용과 동시에 전면 도입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RP 등 담보부 부채는 파산해도 채무불이행 위험이 없으므로 레버리지비율 산정에서 제외해달라는 증권사들의 요구에 대해서도 '수용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개혁도 좋지만 국내 업계의 사정 봐 가면서 해야 되지 않겠냐"는 볼멘 소리가 나올법 하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 본연의 역동성을 억제하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규제 도입에 잡음이 따라붙지 않을 리 없다. 

국내 자본시장 업자가 주요국에 견줄만한 대형 시스템 리스크를 유발한 사례는 지금껏 없다. 앞으로도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시스템리스크 규제 강화'라는 선진 금융권의 움직임과 방향을 같이하되, 규제 강도와 적용 시점에 대해선 국내 사정을 고려한 신중한 결정이 요구되는 이유다.

회사 규모별 '차등 규제'라는 대안은 더 이상 국내 시장에 시기상조가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외 주요국은 대형 증권사일수록 강한 규제를 적용하는 추세다. 대형사일수록 시스템 리스크를 일으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물론 증권업의 역동성을 억제하지 않는 선에서다.

금융투자업 인가·등록 기준은 90개에 달하는 수준으로 과도하게 세분화해놓고 건전성 규제는 일률적으로 적용, 대형사의 활발한 영업을 막고 중소형사를 차별하고 있는 게 국내 금융개혁의 현주소다.

오는 30일까지 관련 작업을 마무리 짓는 게 당국의 목표다. 남은 기간 동안이라도 눈 크게 뜨고 귀 쫑긋 세우고 현장에 있는 '답'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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