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금융권 '악성민원인' 횡포에 상담직원 '멍'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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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금융권 '악성민원인' 횡포에 상담직원 '멍'든다
  • 이화연 기자 hylee@cstimes.com
  • 기사출고 2015년 10월 26일 07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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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이화연 기자] 수화기 사이로 거친 욕설이 오간다. 반말은 예삿일이다. "너 나이가 몇 살이야?" "아가씨 시간 있어?" 등 모욕적인 언사도 감내해야 한다.

은행∙카드∙보험 등 금융권 콜센터 상담직원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악성민원인'들에게 시달린다. 이들은 상담이 뜻대로 안 풀리면 '버럭' 화를 내는가 하면 업무와 무관한 이야기를 들먹이거나 성희롱을 일삼는다.

사정은 창구직원들도 마찬가지다. 면전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은 물론, 손이 먼저 나가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금융권 상담직원은 '감정노동자'로 분류돼왔다.

지난해 12월 금융경제연구소가 은행권 영업창구 근무자 38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5.6%가 악성민원인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응답자의 50% 이상이 우울증 의심자였고, 20%는 실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업무 중 겪는 고충 1순위로는 '민원인의 과도하고 부당한 언행이나 요구'가 꼽혔다.

업계 안팎에서는 상담직원을 보호하는 법적 장치 역시 미흡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욕설이나 성희롱을 일삼는 악성민원인에게 '업무방해' 혐의로 벌금형이 내려지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솜방망이' 처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하지만 최근 금융당국과 금융업권 협회가 악성민원인 근절을 위해 팔을 걷어 부치는 등, 강경대응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초 전국은행연합회와 생명·손해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금융투자협회, 저축은행중앙회 등 6대 금융업권 협회와 함께 악성 민원인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개설했다.

TF는 이른바 '악성민원인 블랙리스트'를 운영할 방침이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악성민원인이 전화를 걸면 이 분야 '베테랑'인 전담 관리자에게 자동으로 돌려진다. 악성민원인이 욕설∙성희롱 등 불법적인 행동을 하면 '모욕적인 표현을 사용했으므로 전화를 끊는다'는 녹음 메시지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끊기로 했다.

금융당국뿐 아니라 업계에서도 칼을 뽑아 드는 모습이다. 최근 KB국민카드는 창사 이래 최초로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상담직원에게 욕설을 퍼부은 악성민원인을 형사고발한 것이다.

국민카드 관계자는 "해당 소비자는 설명하기 곤란할 정도의 욕설과 성적 발언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지금까지도 콜센터 상담직원들의 고충은 있었지만 이번 사례는 더욱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고발 배경을 설명했다.

금융회사들은 그간 상담직원의 '고충해결'보다 금융소비자의 '민원해결'에 무게를 뒀던 것이 사실이다. '민원건수'가 금융사 평가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묵인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었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범 금융권에서 힘을 모아 악성민원인 근절에 나섰다는 소식이 더욱 반갑게 들리는 이유다.

이같은 움직임이 상담직원들에게 건전한 '일터'를 가져다 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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