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 50년' 회현제2시민아파트..."남은 주민들의 안전이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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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 50년' 회현제2시민아파트..."남은 주민들의 안전이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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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서울시, 보상합의 못본 거주자 대책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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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김수정 기자] 국내 최고령 아파트이자 서울 마지막 시민아파트인 회현제2시민아파트. 안전 위험 건물로 판명돼 철거계획까지 세워졌던 이 아파트를 서울시가 청년 예술인 마을로 리모델링 하기로 했다. 내년까지 총 158억원을 투입, 회현동 일대 5대 거점을 명소로 개발하는 '남촌재생플랜'의 핵심이다.

그러나 아파트 곳곳에 남은 흔적들은 보상 문제를 둘러싼 서울시와 주민 간 갈등이 여전히 진행중임을 말해주고 있다. 서울시가 남촌재생플랜을 체계적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모습이다.

9일 오전 회현제2시민아파트를 찾아갔다. 을지로를 지나 북적북적한 명동을 뚫고 회현사거리 방향으로 걸었다. 소공로 신세계백화점 본점을 뒤로한 채 회현사거리 길을 건너 우리은행 본점과 SK리더스뷰 사이로 난 길로 들어섰다. 길 하나 건넜을 뿐인데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화려하게 솟은 32층짜리 롯데캐슬 주상복합을 지나자 눈앞에 수선집과 중국음식점, 대리점, 게스트하우스 등 크고 작은 가게들이 빼곡하게 펼쳐졌다. 정면 꼭대기에 회현체육센터가, 그 뒤로 남산 위에 지어진 교육연구정보원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제2시민아파트의 낡은 외벽 귀퉁이도 살짝 보였다.

회현체육센터에 다다르자 길이 둘로 갈렸다. 인적이 급격히 드물어졌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가파른 언덕과 계단을 5분 정도 올라 아파트에 도착했다. 외벽에 금이 가고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ㄷ'자 모양 건물이었다.

아파트 6층으로 이어지는 구름다리 너머로 제일 먼저 보이는 집은 추진위원회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초입에 마련된 관리사무소에 누군가 있었다. 관리사무소 직원인 이모씨였다.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직 다 살고 있다. 보상 합의는 아직 70여집 정도가 해결 못 하고 있다. 자가 거주자도 있고 보증금 3000만원에 전세 사는 사람도 있다. 들어가서 한 번 만나보라. 낮이라 누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 아파트는 2004년 안전등급 'D'판정을 받아 철거 결정이 났다가 리모델링으로 처리 방식이 바뀌었다. 시는 이 곳을 리모델링해 청년 예술인을 위한 복합 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세부계획 관련 용역도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재까지 352가구 중 275가구만이 서울시 보상 조건에 합의한 상태다. 나머지 70여 집은 보상 받고 나가길 거부하고 있다.

안쪽으로 들어갔다. 'ㄷ'자 모양 아파트의 중정으로 통하는 계단이 있었다. 내려가는 계단과 1층 바닥에 작은 화분과 항아리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 2층의 어느 집 창문엔 '영어'라는 글자와 전화번호 2개가 큼직하게 쓰여 있었다.

계단 난간에 붙은 경고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무단으로 촬영하면 사생활침해로 고발 조치한다는 내용이었다. 2010년 전후로 사진 찍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아파트 출사가 유행처럼 번졌던 시기가 있는데 그 때 붙은 모양이다.

계단을 다시 올라 6층 복도로 들어갔다. 활짝 열린 철문 사이로 정면은 복도, 오른쪽은 계단이었다. 왼쪽 벽에는 보상 조건과 신청방법 등이 적힌 큼직한 서울시 공문 2장이 붙어 있었다. 벽 한켠에 버려진 냉장고 뒤로 주민들이 붙인 '반박문'도 보였다. 나무로 된 문은 모두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집집마다 붙은 옛날식 방범창에는 녹이 슬어 있었다.

복도부터 정원까지 어디에서도 인기척이 없었다.

다시 찾은 관리사무소에서 이씨는 "철거 발표 직후인 2006년 9월7일 이 아파트 거래가 정지됐다. 철거 발표 바로 전에 매매가가 2억5000만원에서 2억9000만원까지 갔었던 적도 있다. 2006년 부동산 경기가 워낙 좋았던 것도 있지만 SH공사 아파트 입주권을 준다는 얘기도 나오고 해서 가격이 많이 올랐다"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보상 합의를 못 본 거주자들을 위한 대책을 아직 안 내놓고 있다. 주민들의 보상 조건 상향 요구를 '관련 법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하면서 뾰족한 대안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최초 철거발표 이후 11년이 속수무책으로 흐른 가운데 회현동 제2시민아파트 나이는 47세로 작년 철거된 정릉동 스카이아파트와 동갑이 됐다. 남은 주민들의 안전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씨는 "작년 11월 공문 이후로 감감 무소식이다. 가끔 와서 눈으로 보고 가긴 하는데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진 않고 있다. 대책을 내놔야 주민들도 반응을 할 텐데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냥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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