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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의 '맛있는 두유 GT 고칼슘, 검은콩∙깨'에 들어간 검은콩의 양을 직접 콩으로 수치화해 촬영한 것. 검은콩의 함유량은 0.18%로 극히 미미하다. |
[컨슈머타임스 김태환 유현석 기자] "베이컨 0.0013% 넣고 '베이컨칩'? 소비자 현혹이나 다름없죠."
롯데제과, 해태제과, CJ제일제당, 남양유업, 정식품, 빙그레, 농심 등 국내 식음료업체들의 '원재료 미끼' 상술이 도마 위에 올랐다.
1%도 채 넣지 않은 원재료를 상품명이나 이미지로 크게 부각시켜 소비자들의 혼란을 야기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제품 포장이나 광고에 활용 가능한 원재료 함량 최소기준이 제도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 '컨디션 헛개수' 알고 보니 헛개나무열매 추출농축액 고작 0.2%?
21일 식음료업계에 따르면 '헛개수', '메로나', '베이컨칩' 등 사용된 재료를 상품명이나 포장 이미지를 통해 강조하는 제품이 상당수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에는 원재료 함량이 0.1% 미만인 제품도 있었다.
본보는 서울 주요지역 대형마트를 직접 방문해 실태파악에 나섰다. 재료를 극소량만 넣고도 마치 다량 함유한 듯한 인상을 주는 제품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CJ제일제당의 숙취해소 음료 '컨디션 헛개수'의 헛개나무열매 추출농축액 함유량은 0.2% 수준이었다.
남양유업의 '맛있는 두유 GT 고칼슘, 검은콩∙깨'도 제품명으로 검은콩과 검은깨를 사용했지만 함유량은 각각 0.18%, 0.5% 안팎에 그쳤다.
정식품 '베지밀 검은콩&16곡'의 포장 전면에는 검은콩과 갖가지 곡물이 그려져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지만 실제 검은콩추출물은 0.1%, 곡물 총 양은 1.1%다.

광동제약의 'V라인 얼굴 옥수수 수염차'와 웅진식품의 '맑은땅 옥수수 수염차'의 옥수수수염추출액 함량은 각각 0.07%, 0.05%에 그쳤다. 1%에도 못 미치는 양이다.
한국인삼공사가 출시한 '정관장 홍삼꿀물'의 경우 홍삼 이미지가 제품명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눈에 띄지만 실제 홍삼농축액 함량은 0.05%뿐이었다. 이 곳에서 출시한 '헛개 홍삼수' 역시 헛개나무열매추출농축액은 0.23%, 홍삼농축액은 0.03%였다.
과자 및 빙과류 제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해태제과에서 출시한 '오예스 고구마'는 '해남 땅끝마을 고구마'로 만들었다는 점을 제품 전면에 표기했지만 고구마 함량은 0.5%다.
농심 '자갈치' 제품 포장 하단에는 문어 그림이 상당 크기로 삽입돼 있지만 함량은 0.11%였다. 빙그레 '스모키 베이컨칩'은 제품명을 통해 베이컨을 강조했지만 함량은 0.0013%에 불과했다.
롯데제과에서 나온 롯데샌드에는 '파인애플'이라는 명칭은 안들어갔지만 이미지로 그 맛이 들어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파인애플과즙분말은 단지 0.07%가 들어갔을 뿐이다.

빙그레 '메로나'에 들어가 있는 메론은 0.1% 수준이다. 롯데제과의 발렌시아 오렌지 죠스도 마찬가지다. 발렌시아 오렌지의 함유량은 0.2%다. 제품의 왼쪽에 발렌시아 오렌지 이미지가 '떡'하니 들어간 것 치곤 너무나도 적은 수치다.
눈에 쉽게 띄는 대표 이미지는 인지 효과가 커 상품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재료 함량이 미미한 수준임에도 제품명이나 이미지를 통해 광고 효과를 극대화 하는 경우 과장광고 논란의 소지가 될 수 있지만 업체 측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1% 미만의 함량 만으로도 맛과 영양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컨디션 헛개수에 함유된 헛개수 농축액 0.2%로 맛은 물론 갈증해소 효과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맛있는 두유 GT는 검은콩이 테마가 아니라 여러 가지 맛 중 '검은콩의 고소한 맛'이라는 것 뿐"이라며 "맛 음료의 경우 원재료 함량이 적어도 법률상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 "최소한의 함량 기준 법으로 설정해야"
관리감독 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입장도 비슷했다.
식약청 관계자는 "맛은 굉장히 주관적이고 들어간 성분이 그 제품에서 어떤 맛으로 표현되는지는 소비자가 판단할 몫"이라며 "표시되는 양의 정확성은 따질 수 있으나 법적 하자는 없다"고 말했다.
식품위생법 시행령에는 원재료 함량 표시에 대한 내용만 있을 뿐 제품명 또는 이미지로 사용할 수 있는 원재료 함량 기준 등에 대한 명시는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느슨한 감독을 틈타 일종의 과장광고가 판을 치고 있다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법률상 원재료를 제품명의 일부로 사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함량 기준을 설정해 과장광고를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