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존 웨인의 파우마 밸리, 샌디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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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존 웨인의 파우마 밸리, 샌디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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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땅이었다. 메마른 사막 형 토질에 낮은 관목들이 간간히 점묘화처럼 수놓아져 있었다. 들판인가 싶었는데 계곡의 경사가 따라 내려왔다. 다시 평원으로 이어지는 점과 선이 반복되었다. 그 끝자락으로 수많은 봉우리들이 대오를 맞춰 이어 달리고 있었다. 하늘로 향하는 수직과 지면으로 내려앉는 수평이 만나는 접점이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샌디에고로 향하는 길은 언제 봐도 화성의 지형을 닮은 원시의 느낌이다. 로키산맥 서쪽으로 태평양을 만나는 캘리포니아 대지는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광활했다.

파우마(봄의 물이라는 인디언 언어. Spring water)계곡에는 인간의 공동체가 유목형태로 번성했던 곳이다. 무수한 산과 골짜기를 지나는 길목에는 오렌지와 아보카도 농장들이 간간히 보였다. 탐스러운 열매들이 주렁주렁 신의 선물처럼 구릉을 타고 내려간 이랑마다 출렁였다. 물이 만들어낸 녹색의 파우마 밸리(Pauma Vally)는 이제 세계적 리조트단지로 탈바꿈해 미국 상류층의 관심을 끌고 잇다.

파우마의 최초 인간출현은 9천 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미 고고학계는 7천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인디언 부족들이 생활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루이세노 인디언을 비롯해 쿠페노스, 라호야, 팔라, 린콘 족들의 유물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현재의 시설은 18-19세기 백인들의 점령이후에도 오랜 세월동안 축적된 정성과 땀으로 이뤄진 열매였다. 적절한 햇빛의 선물로 근처 테메큘라는 유명한 와인산지가 되었다.

평원에서 물은 생명이다. 오랫동안 이 땅의 주인으로 살아온 인디언들은 물을 하늘과 동격으로 여겼다. 간절한 기우제에도 불구하고 연중 비다운 비 한 번 오지 않는 원망의 땅은 오직 태양으로만 다스려져 왔다. 운명적인 척박함속에 물줄기가 솟아나는 파우마 밸리는 그야말로 영험한 절대자가 내려준 축복이 아니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웅장한 파우마밸리 모습
▲웅장한 파우마밸리 모습

미국과 멕시코 전쟁당시(1846) 11대 대통령 포크(James K. Pork 1795-1849)의 명령으로 미국 남서부 주둔 병사들에게 전투령이 내려졌다. 초기 장병모집에는 실패했고 결국 아이오와 몰몬 교도들이 나섰다. 이들이 주축을 이룬 4개 대대는 100명씩 나눠 머나먼 샌디에고까지 3200킬로미터를 마차와 행군했다. 6개월의 진군 끝에 이뤄진 병력배치였다. 먼저 애리조나가 점령되었다. 로스엔젤레스 남쪽 테메큘라의 파우마 인디언 부족들은 큰 전투 없이 미국에게 유리한 전황으로 상황이 종료되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파우마 밸리가 알려지는 순간 이었다. 장구한 세월 초원과 사막을 누볐던 라호야 부족이 파우마의 주인들이었다. 비교적 가까운 아리조나 모뉴멘트 밸리의 나바호족들과 광야를 주름잡던 이 땅의 주연들이었다. 용맹하나 영민하고 과감하나 절도 있게 부족 공동체의 가치를 최고로 알고 살아온 아메리카 대륙의 산 증인들이다.

20세기 불멸의 영화배우 존 웨인(John Wayne. 1907-1979)은 모뉴멘트 밸리에서 서부영화를 촬영하다가 이곳 파우마로 들어와 휴식을 취하곤 했다. 골프장이 들어서고 롯지에 경비행장까지 갖춰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미미했던 1960년대 개발은 시간과 노력의 기나긴 싸움이었다.
 

▲존웨인 룸에서 현지 미국인 대표와 필자 
▲존웨인 룸에서 현지 미국인 대표와 필자 

존 웨인은 기골이 장대했다. 중부 아이오와 윈체스터 출신으로 느린 말투와 낮은 목소리, 193센티미터의 큰 키 때문에 개척시대의 전형적인 카우보이 대명사였다. 역마차(1952), 알라모(1960), 마지막 총잡이(1976) 등 수많은 히트작들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1970)을 받았다. 그를 스타로 만든 이는 존 포드(John Ford. 1894-1973) 감독이었다. USC(미 서던켈리포니아 대) 럭비 팀 동료였던 두 사람은 할리우드를 뜨겁게 달궜다. 캘리포니아 영화의 상징에서 미 대륙의 우상으로 올라서기에 충분한 연기와 협업이었다.

존웨인이 명배우로 유명해진 뒤부터 파우마밸리는 골프를 즐긴 은밀한 공간이 되었다. 경비행기는 주말마다 그를 태우고 내렸다. 닉슨 전 대통령과 종교계의 거물 빌리 그래함 목사도 존 웨인의 원팀 맴버였다. 골프스타 아놀드 파머는 그 무렵 매주 토요일 아침을 파우마 밸리 컨트리클럽에서 지냈다. 산봉우리로 둘러싸인 파우마 밸리의 평온함과 아늑한 자연풍광은 그들에게 보기 드문 휴식의 파라다이스였을 것이다.

파우마 밸리에는 아직도 존 웨인의 롯지가 남아있었다. 코스 중간에 잘 보존된 하우스는 최근 리모델링 작업을 마쳐 20세기 중반의 모습으로 단장되었다. 말을 타고 직접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된 뒷마당에는 아름다운 캘리포니아 야생화들이 계절을 만끽하고 있었다. 거인의 채취가 남아있는 숲을 지나 아웃코스 10번 홀로 발길을 돌렸다. 초여름의 태양은 강렬하게 대지에 내리 꽂혔고 내 손목에 검은 흔적을 남겼다. 캘리포니아 곳곳에 남아있는 존 웨인의 인연은 대스타와의 추억으로 간직되어 있었다. 얼바인의 관문인 존 웨인 공항부터 파우마의 롯지까지 이 땅은 그의 채취가 남아있는 은둔의 영지였다.

존 웨인의 롯지 자리에 오랜 세월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한 여행자가 지나가는 길에 이 마을 현자(賢者)를 찾았다. 그런데 여행자는 인디언 현자의 초라한 행색과 보잘 것 없는 움막에 놀라 아무것도 없이 어쩌면 이렇게 살 수 있느냐고 측은하게 물었다. 인디언 현자는 잠시 침묵한 뒤 여행자에게 되물었다.

"그대의 것은 어디에 있나요"

"제 것이요? 저는 여행자 아닙니까. 그저 지나가는 존재일 뿐 이지요"

그러자 인디언 현자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요"

소유보다는 네가 이 세상에 올 때보다 죽고 떠날 때 기뻐할 수 있는 삶을 살라는 가르침.
오늘날까지 수많은 미국인들이 기억하는 라호야 인디언 부족의 아름다운 삶의 태도다. 

 

▲존웨인의 롯지에서 본 코스의 석양녘
▲존웨인의 롯지에서 본 코스의 석양녘

애리조나 모뉴멘트 밸리 사막은 솟아오른 붉은 돌기둥과 적막함 등으로 할리우드 영화제작사 들의 단골 촬영지다. 크린트 이스트우드의 '황야의 무법자' 를 비롯해 '포레스트 검프' '미션 임파서블' '백 투더 퓨처' 등이 만들어졌다. 비슷한 지형의 파우마는 유타 주나 다른 곳의 대체촬영지로도 각광을 받았다.

골프계의 전설 로버트 트랜트 존스(Robert T Johns. 1906-2000)가 설계한 코스는 18홀 내내 진한 호기심을 가득 채워줬다. 우선 거리 표시가 없어서 온전히 골퍼의 감각적 경험과 느낌으로만 거리를 가늠하도록 유지되고 있었다. 관목과 거목의 적절한 조화, 영화제 시상대의 카펫을 제칠 정도의 잔디는 밟고 지나가기 미안할 정도였다. 로스엔젤레스와 샌디에고, 뉴포트 비치의 리치맨들이 선호하는 미국 명문코스다웠다. 수준 높은 코스 디자인과 적절한 난이도의 배합은 좀처럼 정복하기 힘든 성채의 느낌 그것이었다.

주변의 황량한 풍경은 파우마의 녹색 그린 코스를 위해 일부러 장식해놓은 대형 걸개그림 같았다. 척박한 분지 한 가운데 신의 도움을 받아 물로 다스려온 오랜 위엄이 베어나는 풍요한 클럽의 모습이다. 수 만년 동안 버팔로(아메리카 들소)와 인디언이 지배했던 이 땅은 개발 60년도 되지 않아 세계 100대 골프코스로 선정되었다.
 

▲산맥과 숲이 어우러진 인코스
▲산맥과 숲이 어우러진 인코스

라호야 인디언들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보호구역에 소수가 남아 생활하고 있다. 이 아름다운 명문코스를 한국인 기업가가 사들여 캘리포니아 경제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주변의 버뮤다 듄스 등 6개 코스를 함께 경영 중이다. 높아진 국격의 자부심이 가슴 밑바닥을 채우며 올라오는 느낌이다. 이름 난 파우마 밸리 코스를 미지의 동양인이 인수해 21세기 새로운 관계가 맺어질 줄을 존 웨인의 시대에 예측한 이들이 있었을까. 알 수 없는 게 세상일이다.

인간보다는 자연의 위대함을 진중하게 관찰했던 파우마 인디언들의 사고는 아직도 유효하다.

"어떤 사람이 모두가 칭찬하는 예술작품을 만들면 우리는 훌륭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낮과 밤의 변화, 태양과 달, 하늘에 떠있는 별의 흐름, 열매를 익게 만드는 계절의 순환을 바라보면서 그것들이 인간보다 훨씬 더 큰 능력을 가진 이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예지력이 넘치는 라호야 인디언 언어들은 언제 접해도 깊고 경이롭다. 인간의 힘은 항상 절대자의 에너지 아래 자리한다. 겸허하게 그 위치를 지키며 자연의 섭리를 수용해온 자세가 파우마 사람들의 이치였다.

클럽의 가장 럭셔리한 "존 웨인 룸"에서 저녁을 즐기고 밖으로 나오니 사방은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렸다. 라운딩의 행복한 피로와 와인의 아름다운 취기가 가벼운 포옹으로 만나는 시간이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삶은 길목마다 죽음이 지키고 있다. 결과적으로 사람은 확실히 죽는다. 아메리카 이민자들이 점령했든, 인디언들이 정령 당했든, 이 땅은 남았고 훗날 반대 대륙의 머나먼 변방에서 찾아 온 나 같은 나그네도 살아서 잠시 쉬어가는 호강을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 대지의 역사란 바로 그런 것일까.

오염이라는 단어조차 허락되지 않는 맑은 밤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꽃들의 향기는 사방에서 가냘픈 나의 후각을 여지없이 흔들어대고 있었다. 파우마 밸리를 누볐던 라호야 인디언들의 함성소리가 잘 가꿔진 컨트리클럽의 평원을 메우며 달려오는 듯하다. 젊은 전사들이 수탉처럼 살기를 치장하고 깃발을 나부껴 에너지를 내뿜으며 바람을 가르는 환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사방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다. 파우마의 기나긴 역사를 어둠이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있었다. 와인 기운으로 바라보는 파우마의 밤은 그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신비로움을 안고 영원한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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