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놀라운 뮤지컬, '해밀턴' 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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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놀라운 뮤지컬, '해밀턴' 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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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 해 섬 출신의 마이너리티 소년 이야기로 미국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건국초기부터 평등과 자유를 기치로 내건 신생 아메리카에서 밑바닥 차별을 딛고 올라온 주인공, 촘촘한 유럽 주류사회 이민자 사이의 엄연한 격차도 피부색이 다른 섬 소년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1755-1804)을 굴복시키지는 못했다.

서인도제도 설탕 섬 세인트 크로이의 사생아라는 기구한 운명으로 태어나 13살 때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된 그는 동네 유지들이 마련해준 노자돈으로 뉴욕 유학길에 올랐다. 하지만 공부보다 정치에 관심이 더 많았다. 해밀턴은 재학 중 독립군에 입대해 미국을 위해 싸웠고 이때 조지 워싱턴 장군을 만났다. 인생의 대 반전이었다. 그의 부관으로 발탁되어 미국 독립을 보았고 초대 정부 재무장관에 발탁되어 재정시스템이 바탕이 되는 강력한 연방정부를 설계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대개 단정한 뉴잉글랜드 마을 가정에서 자랐거나 버지니아 사유지에서 애지중지 길러진 이들이다. 해밀턴만은 예외였다. 초대정부 요인가운데 신분이 가장 낮아 스코틀랜드 행상(아버지)의 사생아라는 놀림이 따라다녔다. 뛰어난 지혜와 인내, 노력, 담대함으로 조롱과 비난을 넘어섰다. 오늘날까지 미국 역사 속에 우뚝 서 있는 이유다.

해밀턴의 일생이 글로벌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뉴욕 브로드웨이 리처드 로저스 극장 앞은 줄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뮤지컬 '해밀턴'을 보기 위해서다. 100만원에 육박하는 티켓은 1년 전 매진이고 당일 암표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였지만 관객들은 로저스 근처로 몰려 움직이지 않았다.

해밀턴의 극적인 삶 못지않게 극적인 죽음이 관객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1804년 뉴욕시장을 거쳐 나중에 부통령이 된 애런 버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정이 폭발해 해밀턴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두 사람은 허드슨 강 상류의 절벽지대인 뉴저지 위호켄으로 향했다. 결투가 인정되는 곳을 찾아간 것이다.

54구경 컬리버 권총을 든 두 사나이가 대결을 벌였다. 3년 전 해밀턴의 장남 필립이 결투로 죽은 장소다. 두 자루의 총은 불을 뿜었고 엉덩이를 맞은 해밀턴은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을 거뒀다.

세계적인 전기 작가 론 처노(Ron Chernow)의 역작 '알렉산더 해밀턴(1426쪽)' 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론 처노는 미국금융의 민낯을 까발린 책 '금융제국 J.P 모건'(2007)으로 이미 익숙한 저널리스트다.

단순히 역사적 인물을 다뤘다면 그 많은 관객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열광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와 정부와 국가라는 울타리를 이어가기 위해서 어떤 희생과 타협, 양보가 있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 미국역사의 위대한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건국 영웅가운데 한사람으로 추앙받는 요소가 가득했다.

2시간 넘는 공연이 모두 랩으로 짜여 져 있을 줄은 몰랐다. 가창력 넘치는 열창은 아예 없었다. 딱딱한 건국초기의 정치 이야기를 이처럼 재미있고 어깨가 들썩거리는 랩으로 만들어낸 연출가 린 마누엘 미란다의 솜씨가 놀랍다. 론 처노의 원작을 기본으로 다양한 연출이 가미되었다. 해밀턴의 업적을 기려 미국인들은 10달러 지폐의 주인공으로 간직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해밀턴을 10달러 지폐의 인물로 존경한다.
▲미국인들은 해밀턴을 10달러 지폐의 인물로 존경한다.


랩과 힙합, 알앤비 스타일의 46개 삽입곡들은 현란했다. 주인공 해밀턴은 물론 워싱턴 대통령 역에 흑인 가수, 라파예트에 히스패닉 배우, 부인 엘리자베스 역시 흑인 연극스타로 주연 급 대부분이 유색인종이다. 아시안과 중동출신도 기용되었다. 다양한 인종이 빚어내는 에너지와 하모니는 강렬했다. 맨해튼을 걷다 만났음직한 소수인종들이 아메리카 이민사의 스펙트럼을 유감없이 선사해주는 느낌이었다.

소수자 해밀턴이 미국 주류 무대에 진출해 상생과 협력, 타협의 정치를 이끌어내고 한 여인을 사랑하고 장래가 유망했던 아들을 잃고 그자신도 정적과의 결투에서 생을 마감하는 스토리가 민주주의 역사의 무늬 사이사이에 수놓아져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당시 출연진 전원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앞뜰에서 야외공연을 가졌다. 퇴임이후에도 2번이나 이 극장을 다시 찾았다. 얼마 전에는 부인 미쉘 여사를 옆자리에 태우고 직접 운전해 다시 공연을 관람했다. 오바마 자신의 정치철학 일부는 알렉산더 해밀턴에게서 이어받은 타협과 양보였음을 몇 번이나 고백했었다.

상식을 뒤엎는 자유로운 캐스팅, 랩으로 이어지는 빠른 구성, 임팩트 넘치는 신선한 노래들, 배우들이 직접 무대를 바꿔가면서 쉴 사이 없이 전개되는 템포감, 진지함과 코믹이 적당히 버무려진 유쾌함이 관통하는 걸작이다.
 
 

▲뉴욕 리처드 로저스 극장 '해밀턴' 공연장에서
▲뉴욕 리처드 로저스 극장 '해밀턴' 공연장에서


뮤지컬 해밀턴은 3년 동안의 준비를 거쳐 2015년 브로드웨이에서 첫선을 보인이후 매년 풀 매진이다. 2016년 팬들의 열광 속에 토니상 16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작품상 등 11개 부문을 석권했다. 2017년 겨울부터는 런던의 빅토리아 팰리스 극장에서 동시 공연 중이다. 유럽관객들의 열광에 표를 구하기는 물론 하늘의 별따기다.

모든 노래가 신선하고 모던한 감각으로 채워져 있다. 그 가운데서도 나는 'My shot'에 꽂혔다. 해밀턴이 1776년 뉴욕에 도착해 라파예트나 허큘리스, 멀리건 등 젊은 청년 친구들과 함께 자신이 꿈꾼 원대한 포부를 당차게 담아낸 곡이다. 이들은 나란히 건국의 주인공들로 역사를 장식했다. 육중한 체구의 흑인 주인공 '해밀턴' 이 구성지게 불러대는 랩송은 관객들의 어깨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브로드웨이는 그 동안 수많은 뮤지컬을 쏟아냈다. 미스 사이공, 맘마미아,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등 세계적 대작부터 수천편이 무대에 올려졌다. 그 가운데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물고 있는 슈퍼 뮤지컬들의 계보를 지금 해밀턴이 바꾸는 중이다. 갈등과 대결과 음모가 춤추는 정치무대에서 양보와 화해, 타협, 희생을 이끌어내는 주인공의 사람냄새 때문에 사람들은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뮤지컬 '해밀턴'의 주요배역들
▲뮤지컬 '해밀턴'의 주요배역들


"누군가는 음모하고, 누군가는 각자도생을 향하고, 누군가는 헌신하다 죽고, 누군가는 기만하고 배신하며 한자리를 노리고, 누군가는 영향력 확대를 꿈꾸며 신의 이름으로 미래를 재단 한다"(딘 쿤츠. 어둠의 눈)

랩으로 이어지는 뮤지컬 내내 나에게 내재된 원초적 감각이 요동쳤다. 야망, 배신, 음모, 복수, 죽음의 단어들이 젊은 싱어들의 입에서 쏟아져 난무했다.

세상살이 어느 곳이나 갈등과 증오, 대립과 음모가 가득하지만 결국 스스로 극한 상황들을 긍정적으로 풀어내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다. 언제나 구성원 자신들이 마지막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나를 낮춰 희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공동체의 미래는 밝다.

이 어지러운 정치 혼란기에 미국인들은 해밀턴을 250년 만에 불러내 향수를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시대나 지금이나 인간의 권력 헤게모니 싸움, 갈등과 통합의 회전목마는 여전히 유효한 쳇바퀴다.

현직 부통령 애런 버의 총탄에 쓰러진 해밀턴은 49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미망인 엘리자베스 해밀턴은 이후 반세기를 더 살면서 7명의 자녀를 키워냈다. 오직 남편에 대한 존경심과 위대함을 가슴에 안고 버티면서 말이다. 후세인들은 꼿꼿했던 미망인의 삶에도 깊은 경의를 표하고 있다.

생전의 해밀턴은 매피스토텔레스(파우스트의 악마 역)나 오만함과 야망, 고압적 성정이 혼재된 사악한 천재라는 비난도 받았다. 하지만 대통령 출신 이상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위대하고 영속적인 영향력을 가진 지도자로 주목 받고 있다.

제헌의회의 주요 소집가로 활약하면서 연방주의와 예산제도, 조세, 중앙은행, 장기채, 세관, 연안경비대를 만든 장본인이었다. 토마스 재퍼슨을 정치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꼽는다면 경제 민주주의의 대들보로 미국역사는 해밀턴을 기억하고 있다.

오늘의 아메리카 리더들이 그의 일대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는 것은 미국자본주의의 혁명을 미리 예고했다는 점이다. 해밀턴의 유산과 생애를 외면하는 것은 곧 현대 자본주의 세계를 거부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그의 일대기에서 눈을 돌릴 수가 없는 것 아닐까.

"너그러울 때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하나 꽂을 여유조차 없다 그러한 마음을 돌이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옛사람들은 말한 것이다" (법정스님).

해밀턴이 오랫동안 미국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짧은 인생 전체를 마음의 주인으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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