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타임스 김재훈 기자] "보험금 지급이 '10영업일'을 넘기면, 회사는 '이자'를 물어야 합니다."
일부 보험사들이 의도적으로 보험금 지급을 미룬 사례가 포착되고 있어 소비자 주의가 요구된다.
기회비용과 같은 피해 소비자들의 전체 손실비용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돼 정부차원의 대책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 "왜 약관을 어기면서까지 지급하지 않는 것인지……"
A씨는 최근 법원으로부터 배우자의 실종선고확정 판결을 받았다. 실종된 이씨의 아내는 ING생명에 가입돼 있었고, 이 경우 사망으로 간주돼 사망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었다.
이씨는 보험금을 지급받기 위한 제반 절차를 이행했다. 하지만 열흘이나 지나도록 보험금이 지급되기는커녕 ING생명 측으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
보험약관을 살펴보던 이씨는 '보험사고 발생시 보험수익자가 보험금을 청구하면 보험회사는 3영업일이내에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고와 관련된 추가조사가 필요할 경우에도 10영업일 이내에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문구도 눈에 띄었다.
이씨는 약관이 강제성을 띄고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었으나, 업체 측이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 만은 분명했다.
이씨는 "ING생명은 보험금 지금과 관련된 서류를 모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약관을 어기면서까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내가 청구한 보험금을 어떻게 하면 빨리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동부생명 계약자인 B씨의 사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병원 측으로부터 뇌경색 진단을 받은 뒤 보험금을 요구한 B씨에게 동부생명 측은 '보험금 지급지연 안내서'를 발송한 뒤 연락을 끊었다.
한달 여 정도가 지났을 무렵, 동부생명 측은 의료자문기관의 소견을 앞세워 B씨의 질병이 보험금 지급대상 범주에 들지 않는다고 통보해왔다.
법적으로 해결해야 하는지, 아니면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어야 하는지 B씨는 근심에 잠겼다.
보험소비자연맹과 녹색소비자연대, 한국소비자원과 같은 소비자 관련 단체에는 A씨와 B씨의 사례와 유사한 불만 글들이 적지 않다.
◆ "정부, 팔짱만 끼고 있나"
보험사의 보험금지급과 관련한 강제적 규정이 없어 소비자들의 피해가 늘고 있다는 데에 관련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보험소비자연맹 관계자는 "근래 들어 이런 소비자 피해상황이 많이 접수되고 있다"며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미루면 딱히 강제적인 조치를 취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보험사들 별로 보험금 지급에 대한 약관을 정해놓고 있지만 강제규정이 아니다"라며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 건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를 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계약자는 기다리고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계약자의 보험금 청구일로부터 보험사가 10영업일을 초과하면 그때부터 보험금에 따르는 이자를 보험사가 부담해야 한다"며 "때문에 보험금을 늦게 지급받은 계약자는 '보험금내역서'를 보험사에 요구한 뒤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녹색소비자연대 관계자는 "보험청구와 관련한 민원에 대한 책임을 보험사의 귀책사유로만 돌릴 수는 없다"면서도 "불필요한 소송제기로 인한 사회적 비용 등을 고려해 볼 때 보험소비자권익보호에 대한 종합적인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정부당국에 주문했다.
정책의 허점을 노린 보험사들의 소비자 '등치기'가 성행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소비자 개인이 주의의무에 충실 하는 것 외에 이렇다 할 해결책이 사실상 없는 셈이다.
한 소비자는 "보험사의 횡포가 극에 달하고 있는 분위기지만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는 것 같다"며 "민생을 입으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정부는 이 같은 보험사의 횡포를 뿌리뽑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금융분쟁 총 2만8988건 중 74%가 보험으로 인한 분쟁이 차지했다. 생명보험이 1만1193건(38.6%)으로 가장 많았고, 손해보험이 1만 349건(35.7%)으로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