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강성의 이력은 조금 독특하다. 드라마 '야인시대'의 주제가를 부른 가수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의 첫 데뷔는 MBC 청소년 드라마 '나'였다. 엄밀히 말하면 가수보다 배우가 먼저였던 셈이다. 이후 드라마 '괜찮아, 아빠딸'의 정진구 역으로 주목받았고,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달고나', '김종욱찾기' 등에서 뮤지컬배우로 활동했다. 그런 그가 이번엔 연극 무대에 도전을 선언했다. 작품은 작가 '마이클 쿠니' 희곡을 원작으로 한 창작 초연 연극 '퍼즐'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형의 죽음과 사라진 2년간의 기억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사이먼' 역을 맡아 선 굵은 연기로 담아낼 예정이다.
연극 '퍼즐' 포스터 속 그의 얼굴은 이전과 확실히 달랐다. 주로 부드러운 남성상을 주로 연기했던 서글서글한 눈매는 온데간데없었다. 싸늘한 눈매에 긴장감이 서려있는 턱과 입 매무새는 틈 없이 단단했다. '강성의 어디에 이런 얼굴이 숨어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8월 마지막 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성은 밝은 미소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이런 연기를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며 거듭 말하는 그의 눈은 기분 좋은 설렘과 극도의 긴장 속에서 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9월 8일 연극 '퍼즐'의 첫 무대를 앞두고 있는 배우 강성, 그를 만났다.
"연기, 진지하게 하고 싶습니다"
- 연극 '퍼즐'엔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건가요?
작년에 연극 '퍼즐'의 이현규 연출님께서 먼저 제안해주셨어요. 본인이 생각하고 있는 연극이 하나 있는데 스릴러라고 하시더라고요. 만약 그 작품을 하게 되면 같이 작업해보자고 하셨어요. 저도 '꼭 하고 싶어요'라고 말씀드렸죠. 예전에 이런 장르의 작품을 꼭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었는데, 마침 기회가 주어졌어요.
- 포스터를 보고 놀랐어요. 배우 강성에게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얼굴이더라고요.
저도 놀랐어요. 누구지? 할 정도로.(웃음) 사진 찍을 때는 스릴러 장르라 무게를 많이 잡았어요. 사실 이번 역할은 굉장히 갈망했었던 역이에요. '사이먼'은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계속 흔들려요. 그래서 눈빛으로 감정을 충분히 전달해야 하고요. 그래야 더 소름이 끼치거든요. 창작 초연이라 시도할 것도 많아요. 이런 연기는 꼭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 뮤지컬 '김종욱찾기'와 '영웅을 기다리며'에 출연하면서 연극 '퍼즐'을 연습했어요. 체력적인 부담이 있을 것 같은데.
체력적으로는 많이 힘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정신적으로 좀 힘들었죠.(웃음) 뮤지컬 '김종욱찾기'와 '영웅을 기다리며'도 굉장히 상반된 캐릭터인데, 연극 '퍼즐'은 또 이들과 더 많이 다른 캐릭터거든요. '사이먼'을 연기하면서 실제로도 피폐해진 느낌을 받곤 해요.
- 연극 '퍼즐'은 창작 초연이에요. 그리고 배우 강성의 첫 연극이기도 하고요.
연극을 굉장히 하고 싶었어요. 제가 '노다가세'라는 극단에 잠깐 있었어요. 제가 다니던 연기학원의 강사님이 창단하신 신생 극단이었는데 준비하던 작품이 돈 문제 때문에 못 올라갔었어요. 그러면서 연극에 대한 갈증이 더 심해졌어요. 그때 기회가 왔고, 도전해 볼 수 있게 된 거죠. 그래서 연극을 하고 있는 지금이 정말 좋아요.
- 연기 욕심이 상당히 많아 보여요.
좀 있어요.(웃음) 제 이름 앞에 항상 수식어처럼 붙는 게 '야인시대'예요. 이런 수식어 때문에 제가 가볍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어요. 극단에서 활동한 것도 연기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싶어서였고요.
- 연기 욕심이 생긴 건 언제부터였나요?
전 좀 독특한 경우예요. 연기자로 먼저 데뷔를 했다가 가수로 데뷔하게 됐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가수를 할 때도, 연기자 데뷔를 했을 때도 크게 연기 욕심이 없었어요.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에 출연하면서 정말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 정말 연기에 대해서 많이 느끼고 얻었어요. '결코 가볍게 생각해선 안되겠구나'하고요.
- 뮤지컬은 음악이 많은 부분을 보완해주잖아요. 하지만 연극은 정말 피할 곳이 없는 장르에요.
그나마 다행인 건 제가 소극장 뮤지컬을 많이 했다는 거예요. 소극장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물론 대극장이 싫다는 건 아닙니다.(웃음) 소극장은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아요. 소극장 작품을 오래 하다 보니 연극의 흐름을 익히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하지만 연극은 더 디테일하고, 호흡을 끝까지 갖고 가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이번 작품은 그러한 부분에 초점을 많이 두고 연습했어요.
- 첫 연극이 정극이에요. 부담감이 클 것 같은데.
소극장 연극에 대한 부담감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 작품에 대한 부담감이 정말 장난 아니에요. 하면 할수록 어렵고요. 자칫 잘못해 저 혼자의 생각에 빠지면 작품이 설명도 안 되고, 관객의 재미를 놓칠 수도 있어요. 끊임없이 저와 관객에게 질문하고, 관객이 저에게 던지는 질문을 받아서 연기해야 하는 작품이에요.

"연극 '퍼즐', 잠 못 들게 하는 작품"
- 맡은 역할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사이먼'이라는 역을 맡았어요. 기억을 잃고 2000년과 2002년을 오가면서 혼란스러워하는 인물이에요. 그러면서 점점 미쳐가고요. 제목이 '퍼즐'이잖아요. '사이먼'은 끊임없이 자신의 과거를 추리해 나가요. '형'이 죽었다는 충격적인 사실과 범인, 이유를 찾으려고요. 반전도 반전이지만 그 과정에서 놀랄 만한 부분이 많아요.
- 이번 작품에서 중점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있나요?
'사이먼'은 선 굵은 연기를 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에요. 계속 미쳐가고, 진실이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것의 연속이거든요. 중점을 둬야 하는 것은 정말 디테일한 것들인 것 같아요. 제가 어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디에 숨을 어떻게 쉬느냐 같은 것들이요. 요즘도 이러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있어요.
- 이번에 홍우진 배우와 더블캐스팅 됐어요. 홍우진 배우를 보면서 생각하게 되는 부분도 있을 텐데.
우진이 형은 연극을 많이 하셔서 배울 점이 많아요. 뻔한 대답이지만 진심으로 정말 많이 도와주시고요. 이야기도 많이 나누는 데 여러 가지 길들을 열어줘요. 우진이 형이 연기하는 걸 보면서 찾는 것도 많고요.
이번 공연은 정말 좋은 동료들을 만난 것 같아요. 장르는 스릴러인데, 이상할 정도로 팀 분위기가 좋아요. 누구 하나 모난 사람이 없어요. 함께하는 사람들이 정말 좋아서 연습 땐 다들 계속 웃고 있어요. 무대 위에 올라갔을 때 웃음이 터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물론 다들 작품에 굉장히 진지하게 임하고 있습니다. (웃음)
- 사이가 좋아서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아요.
다들 정신세계가 비슷해요.(웃음) 얼마 전에 MT를 다녀왔어요. 보통 MT를 가면 술을 마시게 되잖아요. 무게가 있는 작품은 술과 함께 진지한 이야기도 많이 하고요. 그런데 저희는 정말 초등학교 운동회처럼 놀았어요. 이 사람들이 정말 해맑게 계속 게임만 하더라고요. 게임도 정말 건전해요. 달리기, 뒤로 달리기, 기마전 그런 게임이요. 평균 나이가 서른이 넘어가는 사람들인데도요.(웃음)
- 배우 강성이 생각하는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가능성을 많이 열어둔 작품이고,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 정말 많은 작품이에요. 보통 스릴러는 결말이 딱하고 나오잖아요. '아~ 됐다! 끝났어! 쟤가 범인!'(웃음) 이렇게요. 이 작품도 분명히 결말이 있어요. 하지만 '혹시 다른 일들이 벌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요. 저희가 원하는 방향도 그것이고요. 관객분들이 조금 더 많은 생각을 하실 수 있었으면 하고, 더 찝찝했으면 좋겠어요. '뭐지? 한 번 더 볼까?' 그런 느낌?(웃음)
- 관객과의 대화를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질문이 굉장히 많이 나올 거예요. 배우들이 답변을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요. 이 작품은 배우들의 몫이 정해져 있어요. 오히려 관객분들의 몫이 크죠. 배우들이 펼쳐놓을 것을 추리하고 생각하는 것은 관객분들이잖아요. 관객과의 대화를 하면 극 시간보다 길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웃음)
- 이번 공연을 통해 배우로서 얻은 것이 있다면?
가장 큰 것은 '깊이'에요.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들도 물론 많은 고민을 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정말 수없이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어요. 혼란도 오고요. 밤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정신적으로 힘들어요. PD님께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어요.(웃음) 그런데 그런 부분이 배우로서 정말 좋아요. 제가 언제 다시 이런 '날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 배우 강성을 잠 못 들게 하는 이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제목이 연극 '퍼즐'이잖아요.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여러분이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마지막 조각을 끼워 넣는 건 관객들의 몫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