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롯데 ①] 투자도 전략도 성과 부진…'정체의 늪'

화학·유통 흔들리고 바이오는 미완…리더십·지배구조 개선 과제 주력 사업 개선 추진 속 신유열 부사장 등판…리더십 '시험대'

2025-06-20     김유영 기자
롯데

컨슈머타임스=김유영 기자 | 2025년 롯데그룹을 둘러싼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공격적인 투자와 신사업 진출을 이어왔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구조적 정체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통 주력 부문인 화학과 유통 실적이 부진하고, 신성장 동력으로 지목한 바이오·헬스케어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리더십과 지배구조 문제 역시 장기 과제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롯데는 2021년을 기점으로 공격적인 투자 기조로 전환했다.

화학 분야와 관련해 롯데케미칼은 2022년 일진머티리얼즈를 약 2조7000억 원에 인수하며 이차전지 소재 분야에 뛰어들었고, 동남아시아에서는 약 5조 원 규모의 고순도 에틸렌 생산시설(LINE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유통 부문에서도 지분 인수를 통해 외형 확장을 시도했다. 롯데쇼핑은 IMM프라이빗에쿼티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한샘 지분 인수에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했고, 코리아세븐은 2022년 한국미니스톱을 약 3100억 원에 인수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이 인수한 일진머티리얼즈(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운영하는 동박 부문은 이미 지난해 적자로 전환됐으며, 올 1분기에도 460억 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전체 롯데케미칼 연결 기준 영업손실은 2023년 3477억 원에서 2024년 8941억 원으로 더욱 확대됐다. 이는 석유화학 업황 부진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해상 운임 상승 △설비 보수에 따른 생산 차질 △신사업 부문 수익성 악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롯데그룹의 유통 부문은 '전통 강자'라는 이미지와 달리, 디지털 전환과 소비 트렌드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수년째 부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커머스 시장의 급성장 흐름에 맞춰 2020년 출범시킨 통합 플랫폼 '롯데온'은 5년간 누적된 적자만 약 5600억 원에 달한다. 쿠팡·네이버·무신사 등 경쟁 플랫폼에 비해 차별화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지 못했고, 브랜드와 판매자 확보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에 롯데의 온라인 유통 전략은 여전히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편의점 사업에서도 기대했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코리아세븐은 한국미니스톱 지분 100%를 인수하며 업계 1~2위 사업자들과의 점포 수 격차를 줄이려 했지만, 기대와 달리 미니스톱 점포 통합 과정에서 비용 부담만 커졌고 오히려 전체 점포수는 줄어들었다. 내부에서는 "미니스톱 인수가 실질적 성과 없이 재무 부담만 키운 결정이었다"는 자조 섞인 평가가 나온다.

이처럼 오프라인과 온라인 양축에서 모두 뚜렷한 반등을 만들어내지 못한 롯데 유통 부문은 결국 외형 성장 중심의 전략이 시장과 소비자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정체된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또한 롯데그룹은 수익 창출보다 대규모 차입과 고정적인 자금 유출 구조에 따른 재무 리스크 해소를 급선무로 삼아야 할 상황이다. 실제로 그룹의 순차입금은 2020년 약 28조 원에서 2024년 말 40조 원으로 급증했으며, 순차입금/EBITDA 배율도 4.0배에서 7.7배로 급등했다. 

롯데지주는 롯데바이오로직스에 대한 대규모 출자, 롯데글로벌로지스 풋옵션 이행 의무 등 향후 고정적 유동성 부담 요인을 안고 있다. 자체 현금 흐름으로 감당하기 벅찬 가운데 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NICE신용평가 등 주요 신평기관은 롯데지주·롯데건설·롯데케미칼 등에 여전히 '부정적(Outlook Negative)' 등급 전망을 부여하고 있다.

보유 중인 자기주식과 부동산, 일부 계열사 지분 등을 통한 유동성 확보 가능성은 있지만, 구체적인 매각 성과는 미지수다. 그룹 전략 측면에서 '선택과 집중'이 절실한 시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화학 부문에서는 사업개편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으며, 유통 부문에서는 비효율 점포 및 부진 자산의 정리가 지속되고 있다.

또한 롯데는 바이오 부문에 1조 원 이상을 투자하며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2022년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에 위치한 BMS 공장을 인수한 데 이어, 인천 송도에 약 1조 원 규모의 바이오의약품 CDMO 생산시설 신설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글로벌 CDMO 시장을 선점한 상황에서 SK바이오사이언스도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어 롯데는 '후발주자'로서 존재감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전환기에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부사장(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이 등장했다. 2020년 일본 롯데에 입사한 그는 매년 승진을 거쳐 2024년 부사장에 올랐고, 최근 주요 산업 현장과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며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현재 그룹이 신성장 축으로 삼고 있는 바이오 사업을 총괄하며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유일한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2022년 야심차게 출범한 롯데헬스케어가 지난해 청산된 전례처럼 실질적인 성과가 뒤따르지 못할 경우 신유열 부사장의 리더십 역시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그룹 내부에서는 "바이오 부문이 신 부사장의 첫 성과이자 평가 기준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배구조 개편 역시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2015년 경영권 분쟁 당시 신동빈 회장은 호텔롯데 상장을 통한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를 약속했지만, 2025년 현재까지도 구체적인 상장 일정은 발표되지 않았다. 호텔롯데는 일본 롯데 계열 법인들이 주요 주주로 포진해 있어 상장이 지연될 경우 국내 지주사 중심의 단일 지배체제 구축에도 구조적인 한계가 따를 수 있다. 일본 롯데와의 복잡한 출자 구조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만큼, 글로벌 투자자 신뢰를 위한 중장기적인 지배구조 정비가 필요하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롯데는 지난 10년 동안 결정보다 보류를 택했고, 그 전략이 위기 상황에서는 오히려 굼뜬 대응과 기회 상실로 이어졌다"며 "바이오 진출도 경쟁사보다 5년 이상 늦었고, 그나마도 아직 성과로 이어진 건 없다. 이제는 새로운 투자보다 리더십과 전략 체계 전반을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