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솔지의 잇사이트]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약속한 SPC…현실은 달랐다

2025-05-23     안솔지 기자

컨슈머타임스=안솔지 기자 | 죽음이 또다시 일터를 덮쳤다.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길에 오른 노동자는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번엔 시흥 SPC삼립 공장이다. 

반복되는 사고와 반복되는 사과, 그러나 바뀐 것은 없었다. SPC 노동자들에게 '일터'란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하는 공간이었다. 

지난 19일 경기 시흥시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일하던 50대 여성 노동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윤활유를 뿌리는 작업 중 상반신이 끼어 사망했다. 지난 2022년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소스 배합기계에 끼어 사망한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참사다. 

당시 허영인 SPC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1000억원 규모의 안전 투자 계획도 내놨다. 고강도 위험 작업 자동화, 설비 교체, 작업환경 개선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를 위해 현재까지 약 835억원의 비용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에도 평택 SPL 공장, 성남 샤니 공장 등 계열사 공장에서 사고는 반복됐다. 

이번 사고에서도 '안전수칙 미준수' 정황이 드러났다. 경찰은 기계 작동 중 윤활 작업이 이뤄졌고, 현장에서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공장 센터장을 포함한 관계자 7명이 22일 형사 입건됐다. 

무려 1000억원을 투자했다는 사업장에서조차 기본적인 안전 수칙 하나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SPC의 안일한 안전 의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실제로 최근 5년간 주요 계열사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승인 건수는 총 572건에 달한다. 월 평균 10건 이상이다. 손가락 절단, 골절, 사망까지 사고 유형도 다양하다. 이쯤되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안전 관리 시스템의 '구조적 실패'다.

SPC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같은 말만 반복한다. "책임을 통감한다", "유족과 직원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그러나 이 문장들에서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식상할 정도다. 

반복되는 사고 앞에서 말뿐인 사과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SPC는 국민과 소비자, 무엇보다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책임 있는 태도로 답해야 한다. 책임은 단순히 말이 아니라, 구조와 시스템을 고치는 실천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정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넘었지만, SPC 사례는 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던진다. 수차례 법 위반에도 경영진은 그대로고, 과태료와 시정명령 같은 솜방망이 처벌은 아무런 억제력도 갖지 못했다. 무책임한 기업과 정부의 느슨한 관리·감독이 노동자들을 또다시 벼랑 끝으로 내몬 셈이다. 

지난 2023년 사고 당시 칼럼에서 "일터는 죽음이 아닌 생업의 공간이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2025년에 이른 지금에도 똑같은 문장을 써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게 다가온다. 

반복되는 사고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SPC는 안전 앞에 타협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에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일터에서 사그라든 생명들이 더 이상 숫자로만 남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