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은 예외지만'…韓 제약·바이오, '미국發 관세'에 촉각
컨슈머타임스=김예령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 주요국을 대상으로 25% 상호 관세 부과 방침을 전격 발표한 가운데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도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의약품은 이번 관세 적용 리스트에서 제외됐지만, 향후 품목별 관세 확대 가능성과 공급망 재편 압력이 현실화될 경우 국내 기업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백악관은 2일(현지시간) 발표문을 통해 "공중 보건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필수 의약품과 의료 물품은 관세 정책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를 일시적 예외로 보고 있다. 품목별 관세 확대나 미국 내 생산 유도 등 후속 조치가 뒤따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관련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해외에서 원료의약품을 조달해 온 미국 대형 제약사들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특히 미국 바이오 기업의 90%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의약품의 절반 이상을 수입하고 있어 공급망 재편 압박은 미국 기업에도 예외가 아니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미국바이오협회(BIO)가 발표한 회원사 대상 조사에서도 유럽·중국·캐나다산 의약품에 관세가 부과될 경우 제조비용 상승, 환자 접근성 저하, 연구개발(R&D) 지연 등 전방위적 피해가 우려된다는 응답이 나왔다.
이에 따라 일라이 릴리, 머크, 존슨앤드존슨 등 주요 글로벌 경쟁사들은 이미 미국 내 생산시설 확대에 나서는 등 '리쇼어링'(해외로 이전했던 생산 시설을 다시 자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정책)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 역시 품목별 관세 도입 가능성에 대비해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시장 매출 비중이 높은 만큼, 품목별 관세가 도입될 경우 수주 경쟁력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체 매출의 약 33.8%는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통한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부문에서 발생하며, 이 중 최대 40%가 미국 시장에서 나오는 것으로 추정된다. CDMO(위탁개발생산) 부문도 단일국가 기준 미국 매출 비중이 25.8%에 달한다.
더불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전 생산은 국내 인천 송도 공장에서 이뤄지고 있어 향후 고객사의 미국 현지 생산 요구가 커질 경우 생산 거점 다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미국 현지 생산 시설 확대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 중인 단계"라며 "현재로서는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안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품목별 관세 적용이 아직 구체화하지 않은 만큼, 향후 영향에 대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전문가 분석도 있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관세 영향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높지만, 개별 고객사 계약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난 1월 유럽 소재 제약사와 2조원 규모의 대형 수주를 따낸 것처럼 향후 추가 수주 성과가 이어진다면 관세 리스크는 충분히 상쇄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셀트리온도 선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셀트리온은 약 9개월분의 재고를 사전에 현지로 이전해 관세 영향 최소화에 나섰으며, 관세 부담이 낮은 원료의약품(DS) 수출에 집중하고 있다. 완제의약품(DP)은 현지 생산 확대 방안을 검토 중이다.
최근에는 관세 정책 발표 이전부터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 실행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2일 자사주 소각에 이어 1000억원 규모의 추가 자사주 매입을 결정했으며, 올해 들어 누적 자사주 매입액은 약 3500억원, 자사주 소각 규모는 8000억원을 넘어섰다.
셀트리온은 향후 국내외 시장의 불확실성 확대에 대비해 다양한 주주 친화 정책을 적극 전개하겠다는 방침이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최근 커지는 국내외 불확실성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성장을 이어가며 주주 이익과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