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고 끊이지 않아도'…4대 지주 사외이사 '거수기' 전락
컨슈머타임스=김하은 기자 |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이 지난해 이사회 및 위원회 회의에서 반대 의견을 표명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 경영의 견제와 감시자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사외이사의 책무를 다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4대 금융가 공시한 '2024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주별로 개최된 이사회 결의안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낸 사외이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지주별로 살펴보면 지난해 금융지주 사외이사 이사회가 공식 회의를 열고 결의한 안건은 161회였으며 하나금융지주(46건), 우리금융지주(42건), 신한지주(39건), KB금융지주(34건) 순이었다. 그러나 부결된 안건은 0건으로 가결률 100%를 기록했다.
통상 사외이사들은 금융지주 회장 등 내부 고위직의 추천을 받아 임명된다. 이 같은 관례 때문에 내부통제 등 안건 상 면밀한 점검이 필요한 경우에도 반대표를 던지지 못하고 '거수기' 역할만 수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이들은 작년 한 해 동안 최고 1억원에 육박하는 보수를 챙겨 받았음에도 제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난세례가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해 각 사 보고서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가 사외이사 32명에서 지급한 보수는 24억6865억원으로, 1인당 평균 7715만원을 받았다. 최대 수령 금액은 1억266만원이었다.
금융당국이 금융지주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표면적으로는 변화를 감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금융 관계부처 관료 출신이나 정치 활동 경험이 있는 이사들도 상당한 탓에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기 사실상 힘든 구조다.
당국은 금융지주를 향해 소유분산 기업 특성상 이사회 역할이 더욱 공고해져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실효성엔 의문이 생긴다. 또 금융시장의 다변화에 따라 이사진의 다양성도 보장돼야 하지만, 사외이사 후보군의 주요 경력은 여전히 금융·경영 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10월말 기준 국내 108개 금융회사에 재직 중인 사외이사 456명 중 108명은 이해관계자(59명), 계열사 사외이사 경력자(34명), 고위공직 및 금융연구원 출신자(31명), 친(親) 정권 정치활동 경력자(20명) 등이었다.
다만, 일부 영역에선 변화가 감지됐다. 지난해 은행권에서 잇따라 발생한 대규모 금융사고 탓에 내부통제 중요성이 커지자 KB·하나·우리금융은 법률 전문가를 후보군 중 12~16%대로 높였다. 또 디지털금융 서비스가 확산되자 우리금융은 관련 전문가를 25%, 신한금융은 21.2%를 후보군에 포진시켰다.
하지만 금융지주 이사회의 내부통제 기능 강화와 독립성 확보 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사외이사로 선임할 인재에 한정돼 있을 뿐만 아니라 이사진들의 일정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같은 문제 개선에 한계가 있다는 게 금융권 안팎의 목소리다.
실제 금융사 지배구조법 시행령에 따라 겸직이 금지돼있어 사회적 평판과 전문성을 고려한 인재를 찾기 어려운 구조인데다, 다수 사외이사들의 일정을 맞추기가 힘들어 통과되는 안건 위주로 결의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지주 사외이사가 거수기 논란에서 벗어나 신뢰를 회복하려면 이사회의 독립적인 선임 과정, 전문성 강화, 다양한 의견 제시 등을 장려하는 문화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