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준공형' 부메랑 효과에 무너지는 부동산 신탁사
컨슈머타임스=김동현 기자 | 지난해 4분기 국내 부동산 신탁사의 순손실이 4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자산신탁, 대한토지신탁, 하나자산신탁, 신영부동산신탁만 흑자를 낸 가운데 나머지 10곳은 적자에 허덕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2022년을 중심으로 확산된 '책임준공형' 사업장의 부실 여파로 인한 부메랑 효과가 일어나고 있다는 게 건설·부동산 업계의 설명이다.
27일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국내 부동산 신탁사 14곳의 합산 순손실은 4055억원으로 집계됐다.
한국자산신탁, 대한토지신탁, 하나자산신탁, 신영부동산신탁 등 4곳만 순이익을 기록한 가운데 나머지 10곳은 순손실을 기록했다.
신한자산신탁, 무궁화신탁, 교보자산신탁, KB부동산신탁, 대신자산신탁, 코리아신탁, 우리자산신탁, 코람코자산신탁, 한국투자부동산신탁, 한국토지신탁 등 10곳은 순손실을 기록했다.
특히 교보자산신탁은 지난해 연간 영업수익 1218억원, 영업손실 3120억원, 순손실 2409억원을 각각 기록하며 최악의 실적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선 이 같은 대형 적자를 기록한 이유가 '대규모 충당금 적립'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충당금 적립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책임준공형 신탁방식' 재건축, 이른바 '책준형'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준형 토지신탁 사업은 건설사가 약속한 기한 내에 공사를 마치지 못하면 일종의 보증을 선 신탁사가 금융비용 등 모든 책임을 떠안는 방식의 사업구조다. 공기를 맞추면 높은 수익이 보장되는 반면, 하루라도 공사가 늦춰지면 엄청난 손실을 부담해야 하는 '하이리턴 하이리스크' 방식으로 꼽힌다.
금융계열 신탁사들은 과거 건설경기가 좋을 때 책준형 신탁 영업을 확대해 고액의 수수료를 챙기면서 몸집을 불려 왔다. 건설업계의 후발주자로서 입지를 다지는 데 큰 몫을 한 사업방식으로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건설경기가 급격하게 위축되면서 이런 책준형 리스크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모양새다. 시공을 책임지는 건설사들의 부도와 외형 축소가 이어지면서 이러한 부담이 고스란히 신탁사에 전이됐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고금리와 공사비 상승이 이어지면서 분양시장도 서울 내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완판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면서 "과거 신탁형 방식은 재건축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각광받았으나, 업황 침체로 인한 리스크가 더욱 부각되면서 최근에는 신탁사들이 설 곳을 잃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책준형 리스크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신탁업계의 실적 회복은 당장은 어렵다는 게 건설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미 각 신탁사별로 신탁계정대가 급증하면서 자기자본을 넘어선 경우가 많고, 책임을 떠안은 부실사업장을 마무리하기 위해 차입조달을 늘려가며 부채비율까지 높아지고 있어서다.
정부가 책임준공 계약 유연화 등을 추진해 천재지변 등으로 인한 공기 연장 등을 허용하느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논의 중이지만, 업계에서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각 신탁사들이 과거 펼친 사업장들에서의 소송이 이어지면서 법률리스크까지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당분간 신탁사들의 실적 회복이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최근 신용평가사들 역시 신탁사들에 대한 신용등급을 강등하며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해 하반기 정기평가에서 신한자산신탁의 단기신용등급을 A2에서 A2-로 하향했고, 코리아신탁 역시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다시 평가했다.
신용평가 업계 한 관계자는 "책준형 리스크에 따른 신탁사들의 신규 수주 활동이 사실상 중단된 상황인데다, 과거 수주했던 사업장에서의 비용발생도 늘어나고 있다"며 "다수 사업장에서의 우발 채무가 꾸준히 발생하고, 법률 리스크까지 이어지면서 자산건전성에 대해 물음표가 붙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