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은의 금융노트] '존재감 과시'하던 이복현, 왜 소극적으로 변했나
컨슈머타임스=김하은 기자 | 을사년 새해를 맞이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다 돼 간다. 그동안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얼마 전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이 거행되며 이른바 트럼프정부 2기 정식 출범을 알렸고, 국내에선 헌정사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검찰에 구속 기소되며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재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행보에서도 발견된다. 유독 언론 노출이 잦았던 이 원장이 신년에 들어서는 언론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돼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원장은 그동안 잦은 언론 노출과 수위 센 발언으로 세간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간혹 남의 눈치 따윈 보지 않는 소신 발언으로 곤혹스러운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물론이고 관련 업계에서도 이 원장의 입을 주목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한 번 결단하면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는, 타협하지 않는 대쪽 같은 성정이 돋보이는 이 원장의 입에서 언제 어떤 말이 나올지 몰라서다.
하지만 올해 이 원장의 행보엔 묘하게 달라진 기류가 감지된다. 언론 노출을 자제하고, 소극적인 행보가 엿보인 달까.
실제 이 원장은 연초부터 예정된 공식 일정은 모두 소화했지만, 별도의 백브리핑은 생략하고 언론 노출을 자제하고 있다. 기자와의 소통에 적극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발언 자체를 삼가는 모습이다.
지난 21일 이 원장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 500억원대 부당대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데 대해 "다음에 말 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이 원장이 그동안 우리금융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면서 '매운맛'을 보여주겠다고 벼른 것에 비하면 다소 회피성 발언으로 여겨진다.
이날 이 원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대 은행장(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과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을 만나 서민금융 지원 등을 논의한 것과 관련해서도 "너무 다른 주제를 말 하셔서"라며 성급히 자리를 떴다.
어느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작심비판도 서슴지 않던 이 원장이다. 그러나 최근 180도 달라진 그의 언행은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사실 이 원장의 행보가 달라진 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급물살을 타면서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알려진 이 원장이 탄핵 정국을 맞게 되면서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임기 만료를 6개월가량 남겨둔 이 원장이 앞선 2년과 달리 존재감을 과시하기 어려워지면서 '레임덕'이 가속화하는 게 아니냐는 뒷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에 금감원 측은 "(이 원장의)업무 설명회 등 일정 변경은 앞으로도 차질 없이 진행할 예정"이라면서 "최근 백브리핑을 별도로 하지 않은 것은 타 기관과의 간담회 등 협업 일정이 다수라서 개인 의견을 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반박했다.
앞서 이 원장은 신년사에서 "금융 시스템이 정치 환경에 좌우되지 않고 독립적·체계적으로 작동하도록 관리·감독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임직원에게는 "정치 상황과 별개로 금융시장과 국민의 일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차분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원장은 어지러운 현 정국에 휘둘리지 않고 원칙적으로 엄정한 관리 감독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작심비판도 서슴치 않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민감한 질의에는 답변을 미루고, 언론과의 소통을 자제하는 모습이다.
그런 그의 행보를 보면 존재감을 피력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