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밖으로 나온 '사찰食'…K-푸드 '새 주인공' 꿈 꾼다

CJ제일제당·신세계·오뚜기 등 사찰食 라인업 확대 '가치소비' 확대 속 국내외 시장 '잠재력'에 주목

2024-05-22     안솔지 기자

컨슈머타임스=안솔지 기자 | 사찰에서 스님들이 먹는 수행식으로 여겨졌던 '사찰음식'이 '일상음식'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 등 특별한 날이나 사찰을 찾아야만 즐길 수 있는 음식에서 언제 어디서든 맛 볼 수 있는 생활식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사찰음식의 존재감이 확대되면서 업계에서도 사찰음식 제품화에 속도를 내며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 사찰식 제품 잇따라 출시…채식 일상화 탄력
CJ제일제당은 대한불교조계종 사업지주회사인 '도반HC'와 손잡고 사찰식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사찰식 팥죽', '꽈리고추 식물성 장조림' 등 신제품 2종을 선보였다. 

사찰식 팥죽은 일반 팥죽과 달리 오곡(팥·현미·수수·찰보리쌀·차좁쌀)을 담은 사찰식 죽이다. 불교에서 복을 부르고 액운을 물리치는 팥의 문화적 의미는 물론 스님들의 조언을 받아 곡물 본연의 고소한 맛과 팥의 향, 다채로운 식감까지 살렸다. 설탕을 넣지 않아 슴슴하고 담백한 맛으로 건강하게 즐길 수 있다.

꽈리고추 식물성 장조림은 식물성 원료로 만든 콩고기 장조림으로, 불교의 생명 존중 정신을 담아 CJ제일제당의 독자 개발 식물성 단백질을 활용해 고기 맛과 탄력 있는 식감을 구현했다.

CJ제일제당은 신제품 출시를 기념해 지난 12일 조계사 일대에서 사찰식 팥죽 론칭 행사를 진행했다. 행사 당일 준비한 수량 2000개 전량이 판매되는 등 신자와 방문객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달지 않고 고급스러운 맛'이라는 소비자 평가도 이어졌다.

CJ제일제당

CJ제일제당이 지난해 선보인 '사찰식 왕교자'도 여전히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제품은 사찰음식 원형에 충실한 조리법과 맛이 돋보이는 제품으로, 사찰음식 전문가 스님들의 조언을 받아 2년여의 연구 끝에 탄생한 제품이다. 승소몰과 공식몰 'CJ더마켓'에서만 판매되고 있지만, 매출 실적도 긍정적이다.

당초 사찰 및 스님, 불교 신자를 타깃으로 한 B2B(기업 간 거래) 제품으로 출시됐으나,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반응을 얻으면서 매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으로 일상에서도 사찰음식과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긍정적인 시그널로 분석된다.  

CJ제일제당은 올해 다과류를 선물세트형으로 선보이며 사찰식 라인업을 지속 확대하고, 불교의 공양 문화 및 템플스테이 굿즈 등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채널을 다양화할 예정이다. 사찰식을 찾는 일반 소비자들과의 접점을 확대해 사찰식 대중화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오뚜기는 지난 2022년 전통 채식 레스토랑 '두수고방'과 손잡고 한국형 채식 일상화의 포문을 열었다. 두수고방은 사찰음식의 대가 정관스님의 제자인 오경순 셰프가 운영하는 전통 채식 레스토랑으로 한국의 채식 먹거리와 식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오뚜기와 두수고방은 1년여의 개발 과정을 거쳐 컵밥 4종과 죽 4종 등으로 구성된 채식 간편식을 선보였다. 사찰음식 중 선호도가 높은 '산채나물비빔밥'이 대표 제품이다. 해당 제품들은 한국인에게 친숙한 식재료로 한식의 장점을 살린 '한국형 채식' 간편식으로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덕분에 오뚜기 두수고방 제품 매출도 지속 호조를 보이고 있다.

신세계푸드도 박성희 사찰음식 연구가와 손잡고 부처님 오신 날에 맞춰 사찰식 베이커리 '연잎찰파이'를 출시했다. 지난해 선보여 완판을 기록했던 '연꽃단팥빵'도 함께 재출시했다.

◆ 건강·채식 트렌드 확산에 '사찰식' 잠재력 주목
이처럼 업계에서 '사찰음식'의 제품화가 이어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소비 트렌드의 변화 때문이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 채식인구는 지난 2019년 150만명에서 올해 250만명으로 추정된다. 완전한 채식주의자는 아니더라도 채식을 좋아하거나 채식위주로 식사하는 등 채식 선호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 이상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가치소비'의 확산으로 친환경, 동물복지 등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채식에 대한 관심과 선호도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게다가 사찰음식은 '채식의 정수'로 일컬어지며 채식자들을 위한 최고의 음식으로 손꼽히고 있다. 업계에서도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사찰음식이 새로운 K-푸드 카테고리로 각광받는 등 잠재력이 높게 평가받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지점이다.

지난해 사찰음식 체험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에릭 브리파 르 꼬르동 블루 학과장은 "사찰음식에는 단순한 자연주의 채식이 아닌 불교 철학과 문화가 담겨있으며, 세계적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며 "사찰음식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르꼬르동 블루는 세계 3대 명문 요리학교로 손꼽히며, 채소를 재료로 한 '플렌트 베이스' 수업의 정규과정으로 1년에 2번씩 사찰음식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EMR에 따르면 글로벌 비건 식품 시장 규모는 2022년 246억 달러(약 32조원)에서 2028년 38억 달러(약 57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추측된다. 사찰음식은 '수행식'이라는 불교적 색채를 넘어 건강식, 채식으로도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상품성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채식의 입지는 더욱 확대되는 추세"라며 "건강과 환경, 동물복지 등의 가치가 세계적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는 만큼, 사찰음식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할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