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실적 탓에" 정유사, '횡재세' 논쟁 재점화
[컨슈머타임스 장용준 기자] 최근 유가 상승으로 정유사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고 성과금 잔치를 벌이면서 정치권과 환경단체 등을 중심으로 횡재세를 거둬야 한다는 주장이 재점화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으로 인해 유가가 급등하면서 재고분 판매를 통해 수익이 높아진 정유사를 대상으로 세금을 부과해 환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유업계는 유가 급락 시에는 정유사의 고통에 무감하다가 유가 상승에만 세금을 내라는 것은 형평성에서 어긋난다고 항변한다. 아울러 최근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친환경 부문에 투자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횡재세가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 국내 4대 정유사의 상반기 실적 발표가 이어진 가운데 SK이노베이션(3조9783억원), GS칼텍스(3조2133억원), 에쓰오일(3조539억원)은 각각 3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고, 현대오일뱅크도 2조748억원을 기록했다. 4대 정유사의 전체 상반기 영업이익을 더하면 총 12조3203억원으로 전년 같은기간(3조8995억원)보다 무려 215.9% 급증했다. 이는 기존 연간 최대 영업이익인 2016년의 7조8736억원마저 초과 달성한 것이다.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에도 정유사들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거둔 것이다. 이는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이 급등한 것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유가 등 비용을 제외한 수치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이에 대한 경제 제재로 러시아산 원유 공급 차질이 장기화되자 정제마진도 급등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정유사의 '초과 이득'에 대해 법인세를 추가로 물리는 초과이윤세(횡재세법) 적용 논의가 다시 불거져 나오고 있다. 국회에서는 횡재세를 도입해 정유사의 초과이득을 활용해 취약계층을 비롯한 서민들의 고통 분담에 활용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이달 초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정유4사와 16개 은행에 대해 초과이득세를 부과하는 일명 한국판 횡재세 법안 발의를 추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2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우리나라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고유가로 이익을 낸 정유사들이 특별기금으로 에너지 취약계층에 환원했던 사례가 있는데 이를 다시 적용할 계획이 없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의도 나왔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이창양 산업통상부 장관은 "2008년 이후 기금을 출연했지만 그때와 지금의 석유 가격에 대한 정부 규제가 많이 바뀌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정유사를 대상으로 한 '횡재세' 도입 논의에 대해 "직접적으로 검토하거나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국내 석유사업법이 지나치게 많은 이윤을 얻게 되는 정유사 등에 부과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 아니냐는 질의에는 "석유 가격 고시제도를 운영할 때 도입된 규정으로 지금은 정부가 석유 가격을 고시하지 않아 당시 규정이 지금도 적용되냐에 대해 논란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횡재세 도입이나 기금 출연, 부과금 등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면서도 "취지는 동의하고 현재 제도 하에서 어떤 방안이 있는지 검토해보겠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정치권의 지적에 정유사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할 당시 유가 급락으로 인해 5조원대 적자에 허덕이 바 있는데, 당시 정부로부터 어떤 대책이나 지원도 받지 못했다"면서 "이제서야 유가가 회복돼 수익이 난 것을 두고 세금을 매긴다면 시장 논리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 논의되고 있는 횡재세의 도입 근거가 영국과 미국의 사례인데 그들은 원유 시추와 생산을 직접 할 수 있는 구조이기에 유가가 급등해 수익이 오르는 것이 맞다"면서도 "하지만 국내 정유사들은 원유를 수입해 와야 하는 1차적인 과정에서 비용이 나가는 데다 석유제품을 만드는 정제마진이 수익구조이기에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세법을 적용하겠다는 것은 좀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유사들이 지속가능한 탈탄소 등 친환경 사업에 투자를 강화하면서 초과이윤이 발생할 시 친환경 사업에 투자하는 비율이 높아지게 되는데 횡재세가 도입될 경우 자칫 투자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당장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것도 횡재세 도입을 반대하는 이유다.
국내 신용평가사인 한국기업평가는 정유 4사가 상반기에는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지만 하반기부터는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확대되면서 정유업계의 실적 악화가 본격화될 수 있다는 것으로 국제 유가가 하락세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지난 6월 넷째주 배럴당 29.5달러까지 치솟은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이달 초 6달러 수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다만 최근 들어 정제마진이 다시 반등하면서 하반기 정유사들의 실적을 가늠하기 힘들게 됐다는 전망도 나오면서 횡재세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