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레더=친환경?" 패션업계 그린워싱 주의보

PU·PVC 소재 비건레더로 표기 대부분

2022-04-11     박현정 기자
온라인

[컨슈머타임스 박현정 기자] A씨(26세)는 코로나19로 일회용품 사용이 늘면서 환경 파괴가 심각해졌다는 뉴스를 접한 후 비건 지향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이후 간헐적 채식과 비건 패션 등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쇼핑몰에서 판매 중인 '비건 레더(비건 가죽)' 상품의 성분표에 'PU(폴리우레탄) 100%'로 돼 있어 비건 레더가 친환경적인지 의문을 갖게 됐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친환경 기반 '가치소비'가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국내외 전반으로 비건에 대한 수요가 소수의 채식주의자에서 대중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수요 증가에 합성피혁 등 인조가죽을 '비건 레더', '에코 레더'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는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도 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비거니즘(Veganism)은 동물에서 나오거나 동물 실험을 거친 모든 제품과 서비스를 거부해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동물권을 옹호하며 종 차별에 반대하는 사상과 철학을 말한다.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사람을 '비건(vegan)'이라고 하며 의식주·생활용품 등 일상 모든 영역에 적용된다.

비건은 상품서비스 구매 시 모든 과정을 윤리적으로 판단하는 '윤리적 소비'와 연관돼 환경에 도움되는 소비를 지향하기도 한다. 윤리적 소비는 '제로웨이스트(쓰레기를 전혀 만들지 않는 삶)', '미니멀 라이프' 등으로 확장되기도 하며 이 때문에 비건은 친환경과 비동물성 두 가지 차원을 모두 포괄하는 용어로 혼용되고 있다.

전 세계 채식인구는 2001년 1억8000만명에서 2017년 2억3400만으로 늘었다. 한국채식비건협회는 국내 채식 인구가 2008년 15만명 수준에서 2020년 250만명으로 증가했다는 결과를 낸 바 있다. 지난해 11월 대홍기획이 발표한 리포트에 따르면 '비거니즘'의 검색량과 소셜 언급량은 2019년 말 코로나 발생 시점 이후 급증했으며 2021년부터 '성분', '화장품', '환경' 등 다양한 주제와 같이 언급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확장됐다.

가죽은 소, 양, 악어 등 동물의 피부를 벗겨 낸 껍질을 가공한 것으로 예부터 고급 소재로 인식돼 왔다. 특히 가방, 구두 등에 사용되는 송치 가죽은 생후 1년 미만의 송아지에게서 얻은 가죽으로 촉감이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동물성 가죽을 대체하기 위해 '비건 레더'가 각광받고 있으며 패션업계에서도 비건이 마케팅 전략으로 등장해 택갈이(라벨갈이)를 하고 있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서 '비건 레더'를 검색하면 총 792개(4월 8일 기준)의 상품이 검색된다. W컨셉은 649개, 지그재그는 901개 상품이 검색된다. 이 중 PU(폴리우레탄), PVC(염화비닐수지)로 제작된 합성피혁이 비건 레더, FUAX(인조) 가죽 등으로 표기되는 것이 대부분이며 선인장・한지 등을 이용한 인조가죽이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폴리우레탄은 플라스틱 중에서도 재활용하기 까다로운 성분이며 PVC는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 또한 PVC는 프탈레이트 등 가소제가 사용돼 내분비계 교란물질(환경호르몬)을 배출하고 소각 시 염화수소 가스가 발생해 다른 플라스틱 소재 대비 유해성이 크다고 평가받는다.

다만 국내에는 비건 인증을 받거나 PU, PVC 등 플라스틱 소재 표기에 대한 구체적인 법제화가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EU(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유럽 내 패스트패션을 2030년까지 종식시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2030년까지 재활용 섬유의 일정 비율 이상 사용을 의무화하고 패션업체에게 환경 관련 정보 제공을 요구할 방침이다.

한 패션업계 종사자는 "친환경·비건이란 단어의 범위가 워낙 넓어서 자율적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면서 "동물 피혁을 쓰지 않으면 비건이 아니냐는 논리는 아직 친환경에 대한 개념 확립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