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의 늦가을은 눈이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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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의 늦가을은 눈이 부시다
  • 김초록 여행작가 admin@cstimes.com
  • 기사출고 2019년 11월 08일 0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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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막바지, 산과 들은 진갈색 세상이다. 생명력을 다해가는 자연은 차분히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총천연색의 산이 있는 경북 청송은 청송(靑松)이라는 지명이 말해주듯 어디를 가든 푸른 솔과 맑은 물을 만날 수 있으니 하늘이 내린 땅임에 틀림없다.

주왕산은 청송의 얼굴이다. 주왕산(해발 720미터)이 간직한 매력은 우뚝우뚝 솟은 기암(旗岩)과 때 묻지 않은 천혜의 생태계에서 찾을 수 있다. 돌산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거칠거칠한 바위들이 하늘로 치솟아 있는 모습이 가히 압권이다. 바위를 병풍처럼 둘러 세웠다는 석병산(石竝山)은 주왕산의 옛 이름이다.

그렇다면 석병산이란 그럴 듯한 이름을 놔두고 왜 주왕산으로 바꿔 부르는 것일까? 여기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신라 선덕왕 때 김주원이라는 사람이 임금 자리를 버리고 이 산에 들어와 수도를 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고려 초 중국에서 당나라에 반기를 들었던 진(晋)의 후손 후주천왕(後周天王)이 당나라 군사에게 잡혀 일생을 마쳤기에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도 한다. 주왕산은 사계(四季)의 경관이 금강산에 버금간다 하여 소금강으로도 불린다.

등산로는 대원사에서 출발해 제3폭포에 이르는 코스가 가장 인기 있다. 주방천 계곡을 끼고 이어지는 산길이 넓고 편안한 데다 계류와 폭포,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주왕산의 비경 대부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주왕산 단풍빛이 곱다

주왕산은 크게 내주왕과 외주왕으로 갈라진다. 산 들머리에 있는 대전사와 그 위쪽 계곡(주방천) 일대를 외주왕, 반대편 남쪽의 인적이 뜸한 절골 일대를 내주왕이라 부른다. 대전사 마당에서 올려다 보이는 주왕산은 큰 바위 얼굴로 솟아 있다. 온갖 활엽수들이 빽빽이 들어찬 푸른 숲은 청신하기 이를 데 없고, 자갈과 바위를 더듬고 흐르는 물소리는 길손의 마음을 한없이 가라앉게 만든다.

일찍이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주왕산을 일러 '모두 돌로써 골짜기 동네를 이루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는 산'이라고 했다. 또한 우리 선조들은 그리 높지도 않은 이 산(해발 720미터)을 조선팔경의 하나로 꼽았는데, 이 산이 간직한 미덕을 높이 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널찍이 뚫린 산길을 따라 오르노라면 보이는 모든 게 신비롭다. 주왕산 깊숙이 숨어 있는 주왕암과 주왕굴은 이 산의 위엄을 한층 높여준다. 산행 기점인 대전사에서 산길을 따라 20여 분 오르면 자하교가 나타난다. 신라 군대를 피해 숨어 있던 주왕이 어느 날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로 세수를 하다 화살에 맞아 숨을 거뒀다는 곳이다.

▲ 전설을 간직한 주왕굴

주왕굴에서 내려와 청학과 백학이 어울려 살았다는 학소대에서 길손은 잠시 심호흡을 한다. 학소대 왼쪽으로 보이는 병풍바위는 이름 그대로 병풍을 세운 듯한 모습이다. 생김새가 떡 시루 같다는 시루바위도 보인다. 학소대를 지나 커다란 동굴 같은 산모롱이를 돌면 비 온 다음날 무지개를 볼 수 있다는 제1폭포(용추폭포)가 나타난다. 1폭포 바로 위에는 그림 같은 선녀탕과 구룡소가 굽어보고 있다. 1폭포에서 500m쯤 더 올라가면 오른쪽 협곡 안으로 제2폭포가 있고, 조금 더 오르면 용연폭포라 불리는 제3폭포가 위용을 드러낸다. 구름 몇 점이 그대로 담긴 폭포는 명경지수란 말이 딱 어울린다.

이곳 용연폭포에서 10분 정도 더 오르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가 펼쳐진다. 오지마을 내원동이다. 내원동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십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모두 떠나 적요함만 감돌고 있다.

주왕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절골계곡 어귀에는 계절과 시간에 따라 독특한 풍광을 선보이는 주산지(注山池)가 있다. 이 연못은 둘레 1㎞, 길이 100m 정도로 사람이 만든 저수지이지만 태고 적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주산지는 조선 경종 때(1721년) 마을 주민들이 농업용수와 식수로 쓰려고 주산계곡에 제방을 쌓아 물을 가둔 것이 그 시초이다. 주산지 아래의 60여 가구는 아직도 이 물로 농사를 짓는다. 주산지는 아무리 가물어도 지금까지 바닥을 드러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주산지에 얽힌 전설 또한 흥미롭다. 계곡 안쪽으로 높이 솟아있는 별바위에 단풍이 들 때면 이곳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얘기도 있고, 일제시대 때는 청송사람들이 이 저수지를 지나 80리 밖 영덕시장에 다녀오곤 했는데 가끔 이곳에서 이무기를 봤다는 소문이 들렸다는 것이다. 해마다 봄이 오면 주민들은 연못가에서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린다.

▲ 6개의 약수탕이 있는 달기약수

물과 공기가 청정한 청송은 맛(특산물)에서도 뒤지지 않는다. 요즘 한창 출하되는 사과와 각종 성인병에 효과가 있다는 달기약수가 그것이다. 청송읍에서 동북쪽으로 3km 거리에 있는 달기약수는 여느 약수와는 달리 하탕, 신탕, 성지탕, 중탕, 천탕, 상탕 등 6개의 약수탕이 7백여 미터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달기약수는 위장병, 빈혈, 신경통, 부인병 등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송 사과는 '꿀 사과'라고 불릴만큼 당도가 뛰어나고 육질이 단단한 것이 특징이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큰 일교차는 사과를 재배하는데 최적의 조건이다. 청송은 이런 기후 조건이 잘 맞아떨어지는 고장이다. 청송사과는 1924년 독립운동가이며 농촌운동가인 박치환 장로가 사과 묘목을 가져와 현서면 덕계리에 심은 게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김초록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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