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가깝게 보고 느끼는 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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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깝게 보고 느끼는 경산
  • 김초록 여행작가 admin@cstimes.com
  • 기사출고 2019년 10월 07일 11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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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은 하루하루 바삐 사는 사람들에겐 다소 생소한 고장이다. 하지만 여행 좀 한다하는 사람들에겐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고장이다. 특히 사진 애호가나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한번쯤 가볼만한 곳이다.

경산 하면 먼저 떠오르는 반곡지(경산시 남산면 반곡리)는 사철 독특한 서정을 풍기는 곳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사진 찍기 좋은 녹색 명소'로 지정하면서 사철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반곡지는 우리나라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그마한 저수지이지만 풍광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저수지 가로 둘러선 아름드리 왕버드나무들이 저수지 물빛과 너무나 잘 어울려 한 장의 그림엽서를 보는 듯하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이파리는 자연 순환의 고귀함을 한껏 보여주니 발길이 쉬 떨어지지 않는다. 이곳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강태공들이 붕어를 낚기 위해 심심찮게 찾는 낚시터로 더 유명했지만 경산 지역에 연고를 둔 사진작가들이 반곡지를 인터넷에 올리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반곡지를 보면 저 청송의 주산지를 떠올리게 된다. 넓은 저수지에 나무들이 뿌리를 내린 주산지가 광활한 멋으로 여행자들을 유혹한다면 반곡지는 작지만 동화 같은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둑에 일렬로 늘어선 왕버드나무는 수령이 300년을 훌쩍 넘었다. 두 아름이 족히 됨직한 나무둥치는 세월의 두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 사철 독특한 모습으로 여행객들을 반기는 반곡지

반곡지는 어느 때이고 독특한 모습이다. 왕버드나무의 잎은 5월부터 제법 무성해지기 시작해 11월부터 점차 시들어간다. 녹색이 갈색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저수지를 향해 길게 팔을 뻗은 가지는 거울처럼 맑은 물에 닿을 듯 말듯한데 물에 비친 잎 그림자의 운치가 그럴 듯하다. 반곡지가 감춰 놓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시간이 맞는다면 수면 위로 물안개가 어른거리는 이른 아침에 찾아보는 것도 좋다. 어둠이 물러가고 여명이 트면서 저수지는 새옷으로 갈아입는다. 이때부터 낮에는 볼 수 없었던 신비로

움을 드러내는데 자연의 반란이다. 경산에는 반곡지 말고도 자그마한 저수지가 몇 개 있는데 영남대학교 앞의 남매지도 그 중의 하나다. 저수지를 따라 나무데크가 놓여 있어 산책 삼아 걷기에 좋다. 때는 바야흐로 만물이 시들어가는 상강 절기다.

반곡지 가까이 계정숲(자인면 서부리)이 있다. 구릉지에 남아있는 천연 숲으로 수령 200-300년 된 이팝나무를 비롯해 말채나무, 느티나무, 참느릅나무 등이 빼곡해 생태관찰지로 아주 좋다. 이 숲은 계정(桂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평지에 펼쳐진 천연림이다.

▲ 계정숲 오솔길

숲 안에는 조선시대의 관아(자인현청)를 비롯해 왜적을 물리친 한장군의 묘와 사당이 남아 있다. 한장군은 자인 지역의 단오놀이에 등장하는 여원무의 주인공으로, 옛날 여자로 변장해 왜적을 유인, 크게 무찔렀다고 전한다. 계정숲이 끊어지는 곳에는 삼정지(새못)가 있으며, 그 가운데 한장군의 말 무덤이라 불리는 봉분이 남아 있다.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경산에는 고분군도 널려 있다. 고분들이 있는 곳은 금호강 남쪽(남천)과 오목천 사이의 들판으로 주로 동서로 뻗은 구릉지대에서 볼 수 있는데 임당동 고분군, 조영동고분군, 부적리고분군, 신상리고분군이 그것들이다. 이들 고분군은 과거 경산이 정치 경제적으로 중심을 이루었음을 의미한다.

그 중 임당동 고분군(사적 제300호)은 경산 지역에서 발굴된 것으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 1987년 발굴 당시 금동관, 금귀고리, 금동신발 장신구, 은허리띠 등등 50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때 발굴된 유물들은 현재 영남대학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경산 여행에서 팔공산(갓바위) 산행은 필수다. 갓바위로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지만 경산 쪽(선본사)에서 올라가면 힘도 덜 들고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선본사 옆으로 난 길을 따라 20-30분 정도 올라가면 커다란 불상이 있는 갓바위 정상에 닿는다. 갓바위 부처(보물 제431호)는 머리에 15㎝ 정도의 평평한 돌을 갓처럼 쓰고 있어 그렇게 부른다. 높이가 6m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으로 자연 암반 위에 올라앉아 있어 웅장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조선 사대부가의 멋을 고스란히 간직한 난포고택(용성면 곡란리, 현 소유주의 이름을 따서 최해근 가옥으로도 불린다)을 보러 간다. 이 집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난포(蘭圃) 최철견 선생이 지은 집으로 조선시대 상류층 주택의 전형을 보여준다. 원래는 정침(正寢), 아랫사랑채, 사랑채, 방아실, 행랑채, 마루, 사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정침과 행랑채, 사랑채, 사당만 남아있다. 뒤뜰에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이 놓여 있어 이채롭다. 집안으로 들어서면 안마당을 마주한 안채와 사랑채가 편안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 난포고택의 안채

마을 동쪽으로 수동산이 우뚝하고 서쪽은 용산인데 남쪽에는 운문산의 줄기인 곱돌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특히 용산(해발 435미터) 8부 능선에 걸쳐있는 용산산성(둘레 약 1.6km, 신라시대)은 경사가 완만한 동쪽과 남쪽은 돌로 성을 쌓았고, 경사가 급한 북쪽과 서쪽은 흙으로 성벽을 쌓았다./김초록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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