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토익·HSK 응시료 또 인상, 소비자는 '호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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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토익·HSK 응시료 또 인상, 소비자는 '호구'인가
  • 이화연 기자 hylee@cstimes.com
  • 기사출고 2015년 03월 23일 07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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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토익·HSK 응시료 또 인상, 소비자는 '호구'인가

 

[컨슈머타임스 이화연 기자] "서울 소재 사립대, HSK 5급, 토익 795점, 인턴경험 없음, 공모전 1회 수상, 00그룹 서류 합격 가능할까요?"

취업 커뮤니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구직자들의 글이다. 답답한 마음에 '스펙(SPEC)'을 공개하며 합격 가능성을 점쳐보려는 글이 하루에도 수 백 개씩 올라오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영어능력평가시험 토익(TOEIC)과 중국어능력시험 HSK 등은 스펙의 필수요소로 여겨져 왔다.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는 '문과생은 토익 900점을 넘겨야 한다', 'HSK는 최소 5급은 받아야 한다'는 등의 소문이 정설처럼 떠돌고 있다.

그러나 이들 어학시험의 응시료가 잇따라 인상되면서 취업 준비생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

주범은 HSK. HSK는 오는 5월16일 정기시험부터 응시료가 최대 36%나 올라간다. 최고 등급인 6급 시험은 1만3000원 오른 9만8000원에 달한다.

토익은 2012년 응시료를 단번에 7.7%나 올려 비난을 샀었다. 토익스피킹 응시료도 7만2600원에서 7만7000원으로 6% 인상됐다. 한번 올라간 가격은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구직자들은 사교육을 찾고 있다. 실력을 쌓은 뒤 신중하게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다. 방학만 되면 해커스와 YBM, 파고다 같은 유명 어학학원은 대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취업 때문에 졸업을 미루는 '대학 5학년'이 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학시험 성적은 채용에서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실제 기업가에서는 '스펙' 보다는 '경험'을 중요시한다"며 "지원 분야와 어울리는 다양한 경험을 가진 지원자를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달라진 채용 트렌드는 상반기 채용공고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삼성그룹은 지원자들에게 토익 점수를 요구하지 않는다. 토익스피킹이나 오픽(OPIC)의 하한선만 충족하면 된다.

CJ그룹도 마찬가지. 토익스피킹과 오픽 점수 하한선은 각각 110점(5급)과 IL(4급)이다. 삼성그룹보다도 더 낮은 수준이다.

SK그룹은 이번 상반기 공채부터 외국어 능력, 정보기술(IT) 자격증, 해외 연수, 수상경력, 논문 등의 기재란을 없앴다. 이름, 학력 등 기본 정보만 요구한다.

대기업에서 시작된 '탈스펙' 열풍은 금융권으로 확대되고 있다. 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 주택금융공사는 어학성적을 요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때문에 어학시험의 수요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구직자들 입장에서 보면 각 기업들의 평가잣대에 어학점수가 사라진 것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요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어학시험 응시료가 올라야 될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구직자들의 불안감을 노린 모종의 담합이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최근 조사결과 취업 준비생들은 공인어학시험을 위해 1달 평균 32만9000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스펙 쌓기에 내몰리는 대학생들이 쌈짓돈을 갈취 당하고 있는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다.

지성의 요람인 캠퍼스가 취업의 창구로 전락한지 오래다. 기업도 학생도 원하지 않는 어학시험 비용은 누구를 위해서 올라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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