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시대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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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 시대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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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8

 

불공정 시대를 넘어서

 

 

 

라면회사들이 지난 9년 동안 가격을 담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가 장기간 다양한 조사를 통해 밝혀낸 내용이다. 이렇게 해서 올린 매출은 무려 13조원이 넘는다. 편의점에 가보면 브랜드를 막론하고 값이 비슷비슷하다. 기술개발과 생산비용, 유통환경이 각각 다를 텐데 어떻게 가격이 비슷한지가 항상 의문이었다. 이런 비밀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올해 초 휴대폰 과다 보조금 지금을 막기 위해 이통 3사에게 66일간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아무리 타이르고 말려도 휴대폰 고객을 끌어 모으기 위한 진흙탕 싸움이 멈추지 않자 공권력이 동원된 것이다. 영업 정지 중에도 서로는 상대사가 휴대폰을 팔고 있다고 '밀고전'을 벌이는 추태를 보였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면면이 한국의 대표 기업들이어서 실망이 크다. 소비자들에게 단단히 망신당하고 신뢰가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앞으로 정부 말을 잘 들을지는 모를 일이다.

타당성을 두고 이명박 정권 내내 지루한 논쟁을 펼쳤던 4대강 사업도 알고 보니 대형 건설사들이 적당히 가격을 담합했다. 업무협의회나 정보교환을 핑계로 모여 '그들만의 이익 챙기기' 전략을 짜고 이를 은밀하게 처리해오다가 들통이 났다. 과거 정유사 담합을 비롯해 밀가루, 설탕, 교복, 전자제품, 농산물까지 우리경제의 불공정 행위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은 지 오래다. 이러니 중소기업들이 창의적인 제품으로 본선리그에 올라오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대주주 주가조작도 심각하다. 최근 푸르밀 신준호 회장은 계열사 주식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800억 원의 불로소득을 챙겨 아들, 딸, 손자들에게 나눠주고 증여시키려다 꼬리가 잡혔다. 대기업 오너 일가의 비상장 주식을 이용한 편법 상속, 증여는 세무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절세'와 '합리적 상속'을 명분으로 전문가들이 밀착해 '화끈한 배팅'과 '용의주도한 빠지기'를 코치 중이다. 주가를 조작해서라도 남이 하는 방법대로 흐름을 타지 못하는 기업주는 앉아서 손해를 보는 느낌이라고 고백하니 낭패다.

방법은 불공정 행위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일 텐데. 새로 출범한 정부는 어느 정도로 기업들을 혼낼 지 지금 매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과징금 폭탄을 때리거나 기업주를 혼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훈수를 하자면 커진 기업규모에 엄청난 매출, 달라진 돈 가치를 고려할 때 지금의 과징금과 벌금은 너무 약하다. 소비자를 우롱하고 불법을 저지른 이통3사 과징금이 고작 50억 원이었다. 13조원의 담합매출을 올린 라면회사 과징금 1300억 원, 20조원대의 사업을 벌인 4대강 건설사 과징금은 1100억 원, 주가조작 벌금은 불과 수 십 억 원 정도다.

버는 돈에 비해 토해내는 액수가 적으면 당연히 남는 장사다. 이런 땅 짚고 헤엄치기를 포기할 기업은 없다. 이윤추구는 속성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쉽게 챙겨서 사회적 책임과 자선에 생색내고도 두둑하게 남는 길을 마다 할 리가 있겠는가. 담을 쌓고 외양간을 고쳐야 나쁜 손 타지 않은 건강한 소가 자라난다. 일어서지 못하도록 과징금을 무겁게 물리거나 기업주를 엄하게 다스려야 건강한 시장이 사수됨은 기본이다.

현행법상 과징금은 매출의 2-10%까지 가능하다. 라면 회사들이 13조원의 담합 매출을 올렸으면 1조원 이상 과징금을 매길 수 있다. 그런데 대개 1%를 넘지 않았다. 그것마저 단순가담 여부, 업황, 기업 실적을 고려해 이런저런 이유로 시간을 끌다가 슬그머니 깎아줘 왔다. 지금까지 과징금 최고액은 3년 전 6개 LPG사에서 받아 낸 6700억 원이 기록이었다. 불공정 행위 적발은 요란하게 소문 내놓고 처벌은 솜방망이로. 이런 이상한 커넥션 뒤에는 '전직'의 고리가 엮여있다.

기업들은 걸리면 적당히 연줄 동원해 막고 깎고 타협한다. 그래도 안되면 대형 로펌, 회계법인에 이익 나눠주고 맡기면 그만이다. 정부에서 권한을 휘두르던 '전직'들이 '해결사'로 기꺼이 몸을 팔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사정이 이러니 기업들은 정부를 겁내지 않는다. 재직 때는 정부에서 특혜 받고 퇴직해서는 전관예우에 젖어 산다. 재경부,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금융감독원, 국세청, 공정위, 검찰, 법원 할 것 없이 힘깨나 쓴다는 기관출신 '고문단' 병력이 곳곳에 포진 중이다. 월급 1억 원, 연봉 몇 십억이라는 청문회 소식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렇게 돈맛을 한껏 즐긴 전직들이 다시 국무총리로 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공정한 경쟁을 책임져야 할 공정거래위원장에도 바로 그 문제의 대형 로펌출신 변호사가 임명되었다. 기업이익 방어에 23년 세월을 보낸 사람을 공정거래정책의 수장으로 전선에 내세운 셈이다. 경제민주화 공약과 건강한 자본주의 실천이라는 숙제를 안고 출범시켰다는 새 정부 인사의 민낯이다. 이제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관청의 후배들은 '전직'이 언제 '현직'으로 살아올지 모르니 청탁을 들어 줄 수밖에. 이런 고리가 끓기지 않는 한 불공정 시대를 넘어서는 길은 그야말로 '도로아미타불'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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