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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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8

 

오래된 미래

 

 

 

 

해마다 허리케인으로 수많은 상처를 받고 사는 뉴욕주의 역발상이 화제거리다. 앤드류쿠오모 주지사가 재해에 맞서지 말고 차라리 허리케인에 땅을 내주자고 선언한 것이다. 클린턴 정부에서 주택도시개발부 장 차관을 지낸 전문가가 이른바 '무(無)개발'이 최대의 방어정책임을 자인했다. 지난해 대형 허리케인 '샌디'는 320억 달러의 피해를 냈다. 재난지역의 해안 주택을 대거 매입해 노지상태로 보존해서 태풍이 오면 내륙을 보호하는 자연 완충재로 쓰겠다는 계획이다. 지금까지 들어 보지 못한 신선한 정책이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주 예산으로 사들이는 곳은 모래언덕이나 습지, 조류 보호구역이다. 개발되지 않은 자연상태의 대지들이 엄청난 허리케인을 막아 줄 것이라는 진단이다. 개발 때문에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기후변화 피해에는 개발을 중단하고 순응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게 그의 지론. "지구상의 어떤 지역은 분명 대자연의 소유다. 어느 순간 대자연이 당신이 이곳에 살기를 원치 않는다고 느끼는 때가 온 다". 쿠오모는 시정연설을 통해 이같이 강조하고 기존의 접근방법을 완전히 바꾸자고 제안했다. 20대부터 도시와 주택 전문가로 인생을 살아온 쿠오모의 발표인 만큼 미국인들은 실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여기에 장단이라도 맞추듯 이번에는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플라스틱 폼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올해로 3선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은 마이클 불룸버그는 스티로폼과 비슷한 재질인 플라스틱 폼(plastic foam)퇴출을 뉴욕시장 재직 마지막 목표로 지목했다. 우선 공립학교부터 플라스틱 식품 용기를 퇴출시키고 레스토랑과 커피점등에서 플라스틱을 몰아낼 방침이다. 블룸버그는 시장취임 이후 지난 11년 동안 담배와 트랜스 지방, 소금, 탄산음료 같은 물질을 몰아내기 위해 끓임 없이 싸워왔다.

27조원의 재산가로 미국 내 10위권 부자인 그가 업계의 로비나 반대론자들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을 관철해온 행적 때문에 시민들은 신뢰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블룸버그 환경정책이 플라스틱 퇴출 프로그램으로 완결될 전망이다. 플라스틱 폼은 폴리우레탄, 폴리스틸렌, 폴리염화비닐 등의 재료에 거품을 일으키는 약품을 섞어 말랑말랑하게 만든 물질이다. 단열재, 완충재, 방음재, 포장재로 인기가 높다. 뉴욕시에서만 연간 2만 톤의 플라스틱 폼 쓰레기가 쏟아진다. "그것 없이도 살 수 있고 그것 없이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블룸버그 시장의 주먹에 희망이 보인다.

세계가 다시 과거를 되돌아보며 달라지고 있다. 개발만이 지상명제였던 시대가 가고 '오래된 과거가 내일의 미래' 임을 깨닫기 시작한 것일까. 자연을 거스르며 살아온 지난 몇 십 년의 세월 때문에 피폐해지고 있는 우리들의 삶을 어떻게든 개선할 필요가 있음에 압도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콘크리트 구조물이면 영원할 줄 알았던 전남 신안 앞바다 방파제가 태풍에 벌써 세 번째 날아갔다. 충남 해안은 모래언덕이 무너져 내려 이제 마을의 주택까지 쓰러트리는 상황이다. 근처를 마구 개발하고 엉뚱한 곳에 방파제를 쌓으면서 무리하게 물길을 돌린 업보다.

지난주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 Hodge. 스웨덴의 언어학자이자 작가 사회운동가)의 '오래된 미래'를 만났다. 인도 카슈미르와 히말라야 카라코람 하부지역으로 2천 피트 고봉들이 넓고 깊은 불모지 계곡을 형성하는 외딴지역 라다크. 그 곳에서 지낸 16년 경험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그녀의 미래설계는 아주 흥미로웠다. 다수의 불교도와 소수의 이슬람교도가 600년간 공존했던 라다크는 개발에 휩쓸려 평화가 깨지고 서로를 반목하는 갈등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10년을 싸우며 지낸 그들은 다시 정신문화 공유와 소통으로 다수와 소수가 공존하는 시스템을 회복해 냈다. 라다크의 자립정신과 검약, 환경을 지속시키려는 노력, 내면의 풍요 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또 하나 이들을 하나로 묶어낸 기폭제는 인간정신의 회복이다. 인간정신은 폭력을 넘어 평화로운 상호공존을 선택하게 해주는 비타민이다. 적대감과 전쟁이 아닌 상호존중의 토양에서 꽃을 피워 내는 신비로운 힘이다. 이런 경험 위에 생태계와의 조화가 더해지는 라다크 문화는 존경심에 저절로 가슴이 숙연해짐을 장문으로 고백하고 있다.

자본과 에너지 집약적 경제성장은 위로부터 아래로 향하는 획일 문화를 강요한다. 대량소비와 단기오염으로 세상을 몰아간다. 지역문화와 생물학적 요구를 무시하고 갈등의 원인들을 수없이 만들어 낸다. 이런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고 일어선 이들이 라다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노르베리 호지를 비롯한 사회운동가들이 히말라야 오지에서 라다크 공동체 회복을 위해 기울이는 눈물겨운 노력은 고스란히 감동을 선사한다. 부적절한 개발에 맞서 건전한 시민운동으로 공동체 정신을 회복해가는 모델로 전 세계 모든 마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개발은 지구를 병들게 한다. 저명한 생물학자 E.O 윌슨의 지적대로 1950년 이래 참치, 황새치, 대구, 가자미, 가오리 같은 어종은 개체수가 90%나 감소했다. 산호초의 3할이 죽었고 나머지도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에만 9400만 헥타르의 삼림이 사라져 버렸다. 지금 이대로 가면 다음세기까지 지구상 모든 동식물의 절반이 멸종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도 소수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개발은 멈추지 않고 있다. 멜버른에서 서울, 뉴욕까지 전 세계 수백만 어린이들이 끓임 없이 소비주의 문화 속으로 내몰리면서 광적인 켐페인의 표적이 되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과학의 발달로 어떻게 편리하고 기막힌 세상이 온다고만 주장하지 말고 자연과 공존하는 방법연구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개발되지 않은 라다크 사람들이 개발된 세계를 향해 배려하는 정신을 배우고 함께 고민하는 자세에 문명사회 지식인들이 동참해야 한다. 인간으로 돌아가는 정신의 회복만이 죽어가는 지구를 살릴 수 있는 진단서임을 주목하면서 말이다.

기술개발과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세상은 끝없이 전진해왔다. 하지만 자연 상태로 남아있는 모든 것들, 그 공동체가 지금 오히려 미래의 희망으로 떠오른다. 공장이 적은 강원도와 전라도가 사람들의 쉼터로 각광을 받고 생태의 비전으로 회자된다. 미래는 기술과 효율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풍요로운 우리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라타크나 지리산의 작은 마을들, 평창의 산간동네. 그 오래된 과거에서 우리의 미래를 본다.

가공된 문화로는 다 함께 더 멀리 더 오래 가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 차츰 드러나고 있다. 느리게 꺼내보는 과거와 따뜻한 인간성에서 신선한 미래를 캐내는 역발상이 이 시대의 돌파구다. 뒤집혀져 걸려있는 풍경화가 때로는 아름답다. 물구나무로 보는 세상이 오히려 훨씬 경이롭다는 사실은 유년의 경험이 가르쳐준 지혜다. 이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돈이나 기술의 힘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며 자연 그 자체의 힘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지금 자신과 지구의 오래된 연결 관계 속으로 회귀 중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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