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을 부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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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함을 부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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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7

 

당연함을 부정하라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진다. 그러면 무엇이 연상되나? 가을이 왔구나. 그렇게 느끼면 당연함에 갇혀 있는 사람이다. 아무런 발전이 없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의문을 가지면서 집요한 추적끝에 만유인력을 알아낸 사나이가 있었다. 당연함을 부정했던 뉴톤이 없었다면 오늘날 지구상의 모든 과학기술들은 대부분 원시로 돌아가고 만다.

카카오톡 신화를 창조한 김범수는 영화 '올드보이'에서 죽비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충격을 받았다. 퇴근하는 남자를 이유없이 잡아다가 15년 동안 가두고 집요하게 질문하는 내용의 박찬욱 걸작영화. 주인공 오대수에게 원하는 답을 들어야 하는데 엉뚱한 질문만 계속되는 공방전에서 그는 비로소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깨달음을 체험한다. "당신의 진짜 실수는 대답을 못 찾는 게 아니라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답이 안 나오는 거야". 이 화두에서 탄생한 열매가 '국민 카카오톡'이었다.

뉴욕의 거지이야기 하나 더. 누구나 "한 푼 줍쇼"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하면 그저 평범한 거지일수밖에 없다. 평소 장님 거지를 눈 여겨 보던 행인이 어느 날 종이에 몇 자 적어 구걸 통 앞에 놓고 사라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날마다 구걸해도 빵 한 조각 사먹기 어려운 날의 연속이었던 구걸통에 잠깐동안 넘치도록 돈이 쌓였다. 사람들의 관점을 바꾸고 감성에 호소한 팻말의 내용은 "아름다운 날입니다. 그런데 난 그걸 볼 수가 없네요"

지난 연말 명동의 백화점에 들렀다. 고객과 중국 관광객까지 엉클어져 혼잡 그 자체였다. 물건을 사고 싶은 생각에 앞서 짜증이 나고 혈압이 먼저 올랐다. 탁한 공기에 이리저리 떠밀리는 손님들, 아르바이트 학생들까지 겹쳐 식품매장은 그야말로 시장바닥이었다. 이러한 불편을 일본의 이세탄 백화점은 소비자 관점에서 극복해냈다. "백화점은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고객이 물건을 사는 곳"이라는 관점의 전환. 그래서 일정 숫자의 고객만 매장에 들어가게 하는 서비스를 생각해냈다. 마케팅은 짧고 서비스는 길다는 정신이 프리미엄 백화점 이세탄을 만들었다.

오늘날 세상은 당연함을 부정하면서 새로움을 찾아가는 트렌드가 대세다. 그 새로움은 융합에서 출발한다. 전쟁과 디자인, 농사와 음악, 과학과 만화, 항공우주와 조선공학, 패션과 생태환경이론, 쇼핑과 인터넷, 중매회사의 주식시장 상장 등 모든 분야가 대융합의 시대다. 그 융합은 당연함을 부정해야 비로소 얻어진다. 우리가 다빈치를 주목하는 이유는 절대로 과학과 예술은 별개가 아니라는 것, 다빈치는 위대한 예술가이자 과학자라는 것이다. 해킹으로 험한 꼴을 당했던 컴도사가 대그룹의 해킹방지 담당임원으로 올라서고 하루 종일 남의 말만 들어주는 심리치료사가 새로운 유망직군으로 뜨고 있다.

지식과 기술의 창작적인 융합이야말로 미래의 성장 동력이다. 최근 기술인문융합창작소 방문은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 '창의융합 콘서트'에는 이미 참가자들이 빼곡하다. 주제가 융합이어서 진중한 강의인줄 알았는데 신나는 탭댄스가 시작이다. 어깨가 들썩여지는 영락없는 공연장 분위기다. 이어진 두 편의 강의와 무대 토크쇼, 모든 것이 새로운 접근이다. 강사와 청중의 수동적 관계가 여기서는 함께 즐기는 수평적 콘서트로 지식을 논하고 생각을 함께 공유한다.

   
 

기술인문융합창작소는 입식 사무실이 운영되고 있었다. 서서 일하고 스텐딩 상태로 세미나도 연다. 앉아서 이벤트를 하는 것보다 참가자들 사이를 쉽게 오가며 인사도 하고 대화할 수 있어 좋았다. 다수를 친근하게 사귀고 컨퍼런스도 듣는다. 말하는 이와 듣는 사람들의 소통이 평평하다. 융합은 수직이 아니라 수평적 관계임을 보여준다. 확실히 세상은 첨단 기술만을 강조하던 과거와 달리 인문학, 예술, 디자인 등 다양한 지식이 융합된 제품을 중심으로 시장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기술과 인문의 단절현상을 극복해 내는 것. 이것이 우리세대의 숙제라고 기술인문융합창작소 이남식 소장은 강조한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지식경제부가 사람중심의 따뜻하고 창조적인 기술개발을 위한 'R&D 36.5 전략'으로 문화의 메카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옆에 설립한 새로운 공간이다. 세종대왕과 다빈치, 스티브 잡스 같은 창조적 인재들을 육성해보자는 취지니까 발상의 전환이 모처럼 신선하다. '산수(山水)'라는 주제로 선보인 미술과 디지털의 융합전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작가 최병권이 출품한 '마네킹'은 그림 속 마네킹이 디지털로 살아 움직이고 말을 건다. 디지털족이 산수를 즐기는 삶을 구상화한 것이다.

"나는 디지털 위를 걷고 있다.
 디지털은 빠름이다.
 작고 가볍지만 무한히 크다.
 작은 힘으로 무한한 것을 움직일 수 있다.
 이들에게 산수는 이미지로 존재한다.
 폭포는 디지털의 흐름이다.
 빠른 떨어짐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폭포가 산에 있지 않고 산도 자연 속에 있지 않다.
 폭포도 산도 자연도 모니터 속에 있다.
 디지털족에게는 가상산수가 실제 산수보다 아름답다.
 나도 가상산수가 더 화려해 보인다.
 실제 산수는 이방의 것이다.
 나는 실존하지 않는다.
 고로 존재한다."

융합의 힘으로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나를 새롭게 발견하고 창작소 문을 나섰다. 우리는 소니가 망하고 그 자리를 삼성과 애플이 차지하는 시대의 증인이었다. 잡스가 전혀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컴퓨터와 카메라와 MP3를 연결해 '아이폰'이라는 대작을 만들어 낸 융합의 현장을 목격했다. 새로운 연결로, 새로운 관점으로, 새로운 재해석으로 승리하고 영면한 위대한 기업인을 보았다. 에어컨을 천정에 매달고, 물을 사먹고,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업무를 보는 세상이 오는 데는 10년이면 충분했다.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 당연해지고 세상은 바뀌었다.

창의와 융합에 길이 있고 답이 있다. 100년 동안 사용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시작한 카카오톡의 2013년 예상매출은 1조원이다. 당연함을 부정하면서 올 한 해를 살아보자. 인문과 기술이 융합해 새로운 창조가 이뤄지듯이 계층도 융합하고 세대도, 지역도, 남북도 한 솥에 넣고 펄펄 끓여내 창의의 실마리를 찾아보면서 말이다.

몇 번이나 바라본 기술인문융합창작소의 슬로건이 오랫동안 머리에 남는다.
"예상치 못한 미래를 예상하라(Expect the Unexpected)"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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