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남한산성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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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남한산성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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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에 올랐다. 세월에 무너지고 퇴색된 성곽을 따라 겨울이 두껍게 스며들어 있었다. 눈보라 속에 쌓인 서설은 발목의 깊이를 덮었다. 멀리 보이는 남쪽 봉우리들은 몇 겹으로 포개져 엷어지거나 혹은 보랏빛으로 프리즘을 이루고 골짜기에 내려앉은 겨울안개가 아득하다. 청나라의 세력을 온몸으로 막아선 산줄기, 그 엄동설한의 겨울 한 가운데 남한산성이 있었다.

하남에서 오르는 고갯길은 가파르고 숨이 차오른다. 하지만 싸늘한 냉기 때문에 머리는 더 맑아져 왔다. 계곡에서 올라오는 왕성한 기운이 동장군을 가둬버렸나. 높아질수록 바람이 그치고 천지가 고요하다. 오르고 숨 고르고 다시 오르는 산길이 사납다. 사방에서 올라본 경험이 있지만 산 동쪽 마방집 앞에서 시작되는 길은 늘 새롭다. 땀을 훔쳐내니 어느덧 동장대와 망월사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이다. 망월사는 산성을 쌓기 이전에 지어졌다. 내성에 있었다던 9개 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행궁에 갖힌 인조를 잡기 위해 청군이 포대를 옮겨다 놓은 망월대가 바로 보인다.

조선의 운명은 항상 대륙의 바람이 지배했다. 여진의 부족을 합쳐 후금을 세우고 명나라를 요절낸 누르하치의 아들 홍타이지는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1636년 병자년 12월 14일 모진 추위속에 폭설이 쏟아지던 겨울, 용골대의 청군은 국경을 넘어 진격해왔다. 인조는 적병이 송도를 지나자 파천하기로 결심하고 종묘사직의 신주와 함께 빈궁을 강화도로 보냈다. 최명길을 적진에 보내 강화를 청하면서 진격을 늦추도록 한 뒤 수구문으로 빠져나가 남한산성에 피난했다. 그로부터 46일 동안 싸우자는 신하와 항복하자는 신하 사이에서 임금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이듬해 1월30일 삼전도에 나와 얼음 땅에 머리를 찧으며 굴욕적인 항복의 예를 갖췄다

내성을 지나 외성으로 빠져 나오는 봉암성 길을 따라 묵묵히 걸었다. 행궁을 향해 청나라 군사들이 홍의포를 쏜 곳이다. 전란이 지나고 숙종은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산성의 비밀통로와 연결되는 지점에서 외성을 쌓았다. 내려다 보이는 본성에서 줄기가 뻗어나간 나뭇가지 모양으로 동쪽과 남쪽을 견고하게 잇고 있었다. 이 고을 책임자 이유가 3년에 걸쳐 백성들과 함께 피 땀 흘린 역사의 증거물이다. 그렇게 성이라도 쌓아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은 당시의 궁여지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싸우자던 김상헌도 항복하자던 최명길도 모두 심양으로 끌려가 갇힌 뒤였다.

눈 덮인 산하에 뚜렷하게 일어서는 산성의 외줄기 회색곡선은 거침이 없다. 봉우리와 골짜기를 지나 능선으로 연결점이 끈질기다. 검단산에서 이배재 고개까지 이배재 고개에서 갈마치 고개를 지나 판교까지 능선 아래로 가늘게 이어지는 길은 겹친 산줄기에 막혀 마침내 보라색으로 흐려졌다. 일곱 개의 등성이가 포개졌다 엎어지고 갈라지는 남쪽의 풍경은 400 년의 세월을 견디고 그려낸 한 폭의 걸작이었다. 때 이른 폭설에 갇혔다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거뭇한 대지가 흑백의 수묵화로 살아난 듯 하다.

▲ 남한산성 내성에서 이어진 외성 성곽 앞에서 바라본 남쪽 풍경.

하남과 광주벌에 솟아오른 봉우리들을 접고 반대로 시선을 돌리니 흰 눈 천지 송파나루가 한눈에 들어온다. 힘없던 나라 그 임금의 우유부단함 때문에 항복하지도 싸워보지도 못하고 중간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있던 백성들은 어둠을 틈타 성을 넘나들었다고 기록돼 있다. 미끄럽고 험한 이 길을 그 시절 짚신으로 이겨내기는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용골대가 에워싼 산성은 독 안에 든 쥐 신세였을 텐데 그 엄청난 공포를 뚫고 백성들은 비밀통로로 살길을 찾아 나섰던 것이리라.

병사들이 수어장대와 사방 방어대열에 정신 없던 순간에도 최고 의결기구인 임금의 어전회의는 남한산성 초라한 피난처에서 끝까지 우왕좌왕 했다. 그리하여 종국에는 삼전도 항복이라는 치욕을 역사에 남긴 안타까운 임금 인조. 이마가 피투성이 된 채 조아리고 엎드려 세자와 백성들이 볼모로 잡혀가는 쓰라린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상처는 어쩌면 당파싸움과 세력대결로 세월을 보낸 조선사회의 예고된 비극이었다.

역사는 다시 되풀이 된다. 중국대륙의 육중한 무게와 해양 일본의 두려운 행보가 21세기에 재현되고 있다. 얼마 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압승이 그저 놀랄 뿐이다. 3년 3개월 전 민주당에 참패했던 세력이 재무장을 마케팅 하면서 우뚝 일어섰다. 강력한 일본을 외치는 아베 신조의 보수 세력이 압도한 선거였다. 시진핑 지도부의 등장으로 새롭게 날개를 단 중국과 일본의 보수결집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지키지 못할 약속과 말의 성찬이 가득했던 대립의 꼭지점에서 선거가 끝났다. 우리들끼리 싸우고 대권을 갈망하는 동안 주변 세상은 빠르게 변해버렸다. 승리를 거머쥔 대통령 당선인에게 남은 숙제를 질문해본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떤 지혜가 필요한 시점인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이 싸움터에서 어떤 시각으로 외교와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 그나마 견디어 낼 수 있을까. 봉암성을 내려와 다시 산성 북쪽 외벽을 끼고 가파른 길을 재촉했다

이나라 지도자들에게 병자년 겨울 송파나루를 가득 메운 청군의 깃발을 생각하면서 인조가 나라를 내어준 때와 똑같은 겨울산성에 한번 올라보라고 권하고 싶다. 불린 콩 몇 알로 버티며 임금과 백성을 지키고자 한 고단한 조선병사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통치의 학습이 될 것이다.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된 것만 뺀다면 조선의 그들과 오늘의 우리가 무엇이 다른지를 고민해보면서 말이다.

짧은 겨울 해는 어느새 기울어 산을 내려왔을 때에는 제법 한기가 느껴졌다. 베스트셀러가 된 산성의 역사소설을 끼고 몇 번이나 올랐던 길이지만 항복의 겨울과 같은 시간에 올라보기는 처음이었다. 화친과 전쟁의 외나무 다리에서 행동보다 말의 성찬이 난무했던 산성의 겨울은 그대로 살아있는 역사다. 그 무익한 성찬에 증발해버린 백성들의 피땀은 간 곳이 없고 임금의 모양만 '행궁'에 남아있다. 그런 것이다. 세상의 이치다. 그것을 상식처럼 배웠고 비껴갈 수 없음에 목이 메인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아래에서 위를 걱정하고 살았지 위가 아래를 걱정하는 세월은 드물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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