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강민정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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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강민정 화백
  • 민경갑 기자 mingg@cstimes.com
  • 기사출고 2012년 12월 03일 0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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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집 있고 못생긴 과일 화폭에 담아…"겉모습보다 내적 가치 중시"
  ▲ 강민정 화백과 작품 '버라이어티(Variety)'

[컨슈머타임스] 미술시장은 어느 업계보다 승자독식이 팽배한 곳이다. 대규모 홍보전에 밀려 정당한 평가조차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작품이 적지 않다. 비수도권의 화가들은 대중에게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기 조차 쉽지 않다.

작품 본연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재야의 고수들을 만날 때마다 숨은 보물을 발견한 것 같다. 이들은 유명세를 신경 쓸 시간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소재를 찾고 작품을 구상하고 깊이 있는 그림을 그리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이다.

경북 대구를 주요 무대로 활동하며 정물화를 그리고 있는 강민정 화가를 만나 작품세계와 미술시장의 홍보전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Q. 최근 '중견작가 프로젝트'란 타이틀로 '대구아트페스티발'에 참여했다고 들었습니다. 테마가 무엇이었나요?

==대구아트페스티발은 미술을 통해 세대와 장르의 벽을 허물고 지역 간의 경계를 넘는 축제입니다. 작품만 전시하는 일반 페어와 달리 작가가 현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직접 프로모션 할 수 있는 작가중심의 전시입니다.

저는 '버라이어티(Variety)', '하모니(Harmony)', '어 그레이스풀 스틸라이프(A gracefull still-life)'라는 세 가지 타이틀로 20여 점의 시리즈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Q. 작품들을 처음 접했을 때 '사물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관찰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하모니'는 정직함을 넘어 묵직한 분위기까지 느껴집니다.

==제가 추구하는 화풍의 특징입니다. 저는 채색할 때 물감을 일정한 두께로 여러 번 덧칠하고 건조 기간을 중시합니다. 때문에 다른 작가들에 비해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입니다. 이 같은 과정은 시간이 지나도 작품이 갈라지거나 변색 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유화는 시간에 따라 색이 달라지고 칠한 물감이 갈라지기도 합니다. 이런 까닭에 유명 유화 작품일수록 보수작업과 보관 환경에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정물 하나를 그릴 때마다 최소한 10번 이상 손이 갑니다. 채도를 높이지 않고 처음부터 절제된 색감으로 겹치고 겹쳐서 채색을 해 묵직한 분위기가 나는 것 같습니다. 소재뿐만 아니라 색감에서도 중후한 멋과 절제된 이미지를 주기 위해 고심하고 있습니다.

  ▲ 강민정 화가의 '하모니(harmony)'

Q. 화가들을 가장 괴롭히는 단계가 '작품 구상'입니다. 작품을 그리기 전 정물의 선택과 배치에 얼마의 시간을 할애하시나요?

==그림에 담을 정물은 일상에서 늘 찾고 있습니다. 중심 소재가 선정되면 그에 맞는 부소재 역시 특정 콘셉트에 맞춰 인위적으로 계산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아이템이 마음에 들어오면 영감에 의지해 정물을 선택하고 배치하는 편입니다.

작품에 따라 정물 선택과 배치에 할애되는 시간은 천차만별입니다. 언제나 사물을 보면 기능보다는 그림 속의 이미지와 연관성을 따지며 습관적으로 구도를 구상합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들을 스케치로 하고 그에 맞춰 정물을 배치한 뒤 채색작업을 시작합니다.

Q. 그동안 다양한 정물을 그려왔을 텐데 사물에 관련된 특별한 사연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물화를 그리다 보면 적합한 소재를 위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사람인지라 고가의 제품 앞에 서면 망설이곤 합니다. 3년 전 앤티크 가구를 그릴 때가 생각 납니다. 작품소재로 활용하기 위해 고가의 영국 앤티크 가구를 한두 차례 구매했습니다. 그러나 고가의 가격이 부담스러워 더 이상 구매할 수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가구점 사장님께 대여를 부탁했는데 흔쾌히 무료로 허락해주셨습니다.

대여한 가구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던 중 사진을 촬영하다 고가의 소품을 깨뜨렸습니다. 해당 소품은 세트 상품의 구성품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제 경제수준 이상의 가구를 구입했고 1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 매고 살았습니다. 물건을 작품소재로 잠시 빌렸다가 파손한 일은 빈번합니다.

또 한번은 길거리에 버려져 있는 고가구를 발견하고 소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집으로 들고 왔습니다. 그날 밤 꿈속에서 울고 있는 아기와 긴 머리의 창백한 여자가 주워온 가구에서 연기처럼 아른거리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잠에서 깨자마자 두려운 마음에 고가구를 곧바로 버린 일도 있습니다.

Q. 작품 속 정물의 모습이 하나 같이 말끔하지 않습니다. 귀퉁이가 나간 사발이나 흠집 난 과실 등이 대부분 입니다. 이런 정물만을 선택하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설 익은 과일이나 흉이 난 야채에서 더 생생하고 자연스러운 에너지를 느낍니다. 겉모양이 말끔하지 않은 과실일수록 영양과 당도가 풍부합니다. 흠집이 있다는 것은 그 만큼 비, 바람, 무더위 등 자연이 주는 시련을 견뎌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고 잘생긴 과일과 채소는 시련을 겪기 전에 상품화 되기 위해 잘려나갑니다.

거친 질감의 분청사기 막사발을 즐겨 그리는 것도 비슷합니다. 외모로만 평가되고 인정받는 사회 분위기, 성형이 만연된 외적인 것만 채우려 하는 현대인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Q. 상처 난 겉모습과 달리 작품 속 정물들은 생동감이 넘칩니다. '버라이어티' 속 과실은 맛과 향이 난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 입니다.

==제가 추구하는 극사실주의는 주관을 배재한 채 대상자체를 생생하고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우선 상품성이 떨어지는 사물을 다른 사물과 조화롭게 배치하는데 노력합니다. 채색 과정에서 사물의 본성을 표현하기 위해 초점을 맞추다 보니 생생한 느낌이 배가되는 것 같습니다.

골동품이나 앤티크 가구의 경우 퇴화된 겉모습보다는 사물에 내재돼 있는 세월의 흔적이나 추억을 그림으로 되살리는 게 묘미입니다. 물론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지만 의도대로 표현됐을 때 성취감을 느낍니다.

   
 

Q. 홍보 활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흔한 블로그나 홍보사이트도 찾을 수 없습니다. 화가라는 직업도 프로모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과 거리낌 없이 섞이는 외향적인 성격이 아닙니다. 대구아트페스티발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자신의 그림을 홍보하는 작가들도 있더군요. 그 작가들의 친화력에 감탄했지만 저는 끝까지 자리에만 앉아있었습니다. 실력이 일정 수준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알려질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아직까지 그 믿음을 고수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홍보의 중요성도 체감하고 있습니다.

홍보활동을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합니다. 소수의 화가만 수익을 올리는 미술계 현실은 평소 미술을 접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소위 잘 나가는 작가일수록 홍보전에 강합니다. 경제력을 기반으로 홍보를 벌이고 수익을 창출합니다.

작품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서 공격적인 프로모션은 어렵지만 저도 앞으로는 조금씩 신경을 써볼까 합니다.

Q. 앞으로 꼭 한번 그려보고 싶은 정물 있나요?

==돈을 그리고 싶습니다. 물질 만능시대, 돈이면 다 해결된다는 현실의 무지함을 꼬집어 주고 싶습니다. 저 역시 돈 때문에 행복했고 돈을 최상위 가치로 생각해왔습니다. 돈에서 벗어난 제 모습을 삼자의 입장에서 고찰해보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이달에 '공익과 예술전'이라는 공익 전시회가 열립니다. 판매수익의 50%를 비영리 단체나 저소득층 자녀들의 교육사업에 기부하는 행사입니다. 이후에는 내년 4월 대구 DGB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준비 작업에 매진할 계획입니다.

늘 그래왔듯이 수익을 창출하는 마케팅에 치중하기보다는 작품 본질에 충실 하려고 합니다. 스스로 내공을 쌓아가다 좋은 기회가 생길 때 당당히 실력으로 쟁취하고 싶습니다.

◆ 강민정 화백은?

강민정 화가는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학과를 졸업, 보문미술대전최우수상, 신라미술대전 우수상, 한국미술국제공모전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매년 다양한 초대전, 개인전 등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대한민국 선정작가전, 메트로 봄맞이 대축제 부스개인전, 대구 아트페스티발 부스개인전 등에 참여했다.

컨슈머타임스 민경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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