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적 혁신만이 살길이다
상태바
파괴적 혁신만이 살길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http://www.cstimes.com
2012.11.26

 

파괴적 혁신만이 살길이다

 

 

 

도쿄의 아키하바라는 성지순례 코스였다. 일본에 가면 소니 워크맨을 사러 반드시 들러야 하는 필수장소였다. 가방만한 녹음기를 밀어내고 한 손에 들고 다니는 기막힌 레코더가 나왔으니 모든 미디어의 눈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사실. 음악은 실내에서만 듣는다는 고정관념을 깨버린 것이다. 세계의 유행을 선도하던 도쿄의 소니 전자상가는 각국에서 온 방문객들로 항상 초만원이었다. 워크맨 신형을 사 들고 돌아오는 길에 나리타 공항에서 이리 저리 만져보고 혼자서 흐뭇했던 추억이 새롭다. 소니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의 자서전을 밑줄 그어가며 읽었다. 이 책은 몇 달째 베스트셀러였다. 일본의 경영과 기술저력이 영원히 세계를 제패할 것 같아 부러움과 경계심이 교차했던 시간들이었다.

그 소니가 내리막길을 걷다가 지난해에는 4500억 엔의 최대 적자를 냈다. 감원과 라인감축으로 힘겹게 버텨왔지만 역부족이었다. 참담한 경영실적을 받아 든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소니 회사채를 투기등급으로 낮췄다. 한마디로 쇼크다. 소니와 쌍벽을 이루던 파나소닉도 같은 신세가 되었다. 전자왕국 일본이 침몰하는 순간이다. 80년대의 '아이폰'이었던 소니는 더 이상 동력을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가전제품과 플로피 디스크에서 절대강자였던 공룡회사가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가 국제시장의 반응이다. 소니신화 따라 하기, 소니 노하우 배우기가 경영계의 화두였는데 그 태양이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소니의 첨단 기술을 배우겠다고 구걸해가면서 회로도를 그려 몰래 들여다가 초기 제품을 만들던 삼성전자는 올해 매출 300조를 바라보고 있다. 소니, 파나소닉, 마쓰시다, 산요 등 4대 메이커를 다 합쳐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아니 상대는커녕 그들은 지금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고 이병철 회장은 소니 같은 회사를 만들어 보는 것이 생전의 소원이었다. 연초마다 도쿄에 머물면서 전자업체들을 집요하게 연구했다. 혁신의 방법을 놓고 제품과 사람에 대한 고민을 거듭했다. 아버지의 집념은 아들로 이어졌다. 삼성은 구미공장에서 초기의 불량 휴대폰 수십만 대를 쌓아놓고 화형식을 가졌다. 일등이 아니면 망할 수밖에 없는 시장의 흐름을 각인시키기 위함이었다. 마누라 빼고는 다 바꿔야 산다는 회장의 선창에 직원들은 일등제품으로 화답했다. 불과 20여 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다.

기업혁신 연구로 유명한 미국 하버드대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교수는 창조적 에너지의 상실을 기업의 참패원인으로 꼽았다. 80년대까지 소니는 12가지의 파괴적인 창조 상품을 선보였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 이후 단 한 건의 혁신제품도 선보이지 못했다. 기업 대표선수들의 몰락과 감원쇼크가 일상화된 요즘 일본은 뒤숭숭하다. 80년대 후반까지 세상을 주름잡던 일본식 카이젠(改善)경영은 이제 교과서와 현장에서 서서히 모습을 지워가고 있다.

성공한 기업이 보수적으로 흐를 수는 있지만 소니처럼 극단적 몰락은 일찍이 사례가 없었다는 분석이다. 한번 크게 성공을 맛보면 창업세대들이 가졌던 도전정신이 현저히 쇠퇴한다. 달콤한 과실을 따먹고 싶은 현실적 유혹을 견디기 힘들다. 목표를 정하고 그 정상을 향해서 뛰던 일본이 패망 40년 만에 미국을 따라잡고 경제대국을 이루면서 더 이상 달려야 할 이유를 상실한 것이다. 긴장이 풀리고 안주하다 보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창의성 상실로 이어진다는 것이 크리스텐슨 교수의 진단이다.

장난감 같은 차를 만든다고 조롱 받던 현대자동차가 드디어 세계 자동차 시장 점유율 8%를 넘어섰다. 불황에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에서는 10%대의 시장증가를 기록했다. 기적 같은 일이다. 그것도 자동차 산업 역사상 최단기간에 이룬 성과다. 코리아는 몰라도 현대차는 알아주는 기업제국을 이뤘다. 선진국들이 부쩍 커진 한국차 때리기에 나선 모습은 그만큼 우리의 위상이 커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대륙마다 자동차 생산공장이 힘차게 돌아가고 글로벌 시장상황을 관장하는 현대차 본부에는 지구촌 정보가 집중된다. 선진국 거리 곳곳에 내걸린 삼성과 현대의 광고판은 늘 가슴을 벅차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성공의 스포트라이트는 여기까지. 현대차를 견제하려는 통상압력과 국내 인재만으로 감당하기 힘든 세계시장 관리는 적지 않은 고민거리다. 최근 발생한 연비문제 해결과 지속적 품질관리 역시 머리가 아프다. 관료화되는 조직의 동맥경화증 치료에, 경제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내적 환경은 또 다른 도전이다. 특허전쟁과 끝없는 신제품 개발 작업은 삼성의 피를 말리고 있다. 언제까지 매출액 상승을 이어갈지 불안한 1등이 위태로워 삼성그룹 전체가 비상경영에 나섰다. 애플같은 새로운 강자는 항상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화가 토마스 콜(Thomas Cole)은 1833년 제국의 과정(The Course of Empire)이라는 연작을 화폭에 남겼다. 한 국가의 운명이 야만적 상태(The Savage State)-전원적 상태(The Pastoral State)-제국의 완성(Consummation of Empire)-제국의 파괴(Destruction)-제국의 폐허(Desolation)로 단계적 절차를 거치면서 생성 소멸하는 과정을 그렸다. 국가뿐이겠는가. 집단을 이루는 모든 기업이 이 과정을 겪는다. 제국의 완성 뒤에는 무사안일과 나태함이 기다리고 그 끝자락에 파괴가 다가온다. 영광이 지나고 혼란을 거쳐 무너지면 폐허만이 남는 것임을 역사는 진리처럼 보여주고 있다. 무서운 시대의 예언이 이 그림 속에 상징적으로 녹아있다.

완성단계를 오래 이어가는 길은 이미 알고 있다. 조직과 구성원들이 그 방향으로 한 몸처럼 움직여주느냐가 관건이다. LG가 2차전지를 개발하지 않았더라면, P&G나 3M이 쉬지 않고 수천 가지 새로운 제품을 만들지 않았다면, 애플이 기막힌 상상력으로 아이폰이라는 시대의 걸작을 출시하지 못했더라면,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파괴적 혁신 없이 이들의 번영이 보장될 수 있었을까. 모두가 비슷한 경쟁상태를 유지하고 가는 현실에서 수퍼기술과 경이적 아이디어는 초우량 기업과 국가를 선도하는 에너지다.

아이폰과 같은 소프트웨어의 부상이 경제를 좌우한다는 논리가 일본에서는 먹히지 않았다. 성공에 취해 변화에 둔감했던 탓이다. 우리의 1등 기업들도 이점을 경계해야 한다. 한번 성공해본 사람들은 또 다시 파괴적 혁신을 하지 않아도 갈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져들기 쉽다. 결국 방법은 '절대혁신' 밖에 없음을 기업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모든 역량을 집중시켜 미래로 새롭게 달려나가야 한다. 계속 달리려면 보폭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내려놓고 가야 하는지를 치열하게 찾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혁신의 새로운 DNA가 형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