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발의 아침' 같은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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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발의 아침' 같은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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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8

 

'카니발의 아침같은 가을

 

 

 

 

"차가운 새벽공기속 한껏 달아오른 밤을 지새우고 맞이한 새벽. 후회와 그리움만 가슴에 남는다. 오직 하나의 슬픔은 카니발의 밤이 다시 올 수 없다는 것. 그 격정과 환희의 밤이 지나고 우리가 아침을 함께 맞을 수 없는 것처럼. 시간은 이렇게 허무하게 흘러간다".

 

이탈리아계 브라질 작곡가 루이즈 본파(Luiz Bonfa)가 만든 '카니발의 아침(Manha de Canaval)' 선율을 타고 가을이 찾아왔다. 한없이 더울 것 같은 대지는 무정하게 식어가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폐부를 찌른다. 문학청년을 꿈꾸던 시절부터 익숙했던 노래지만 이 가을에 더 촉촉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떨던 흑인 주인공의 이슬 맺힌 눈동자가 선하다. 1959년 영화 '흑인 오르페(Black Orpheus)'로 출발해 지금까지 무던히 많은 사람들을 울려왔다. 가슴 밑바닥에 녹아있는 슬픔까지 들춰내 자극하는 멜로디 덕분인가. 인생의 허무함에 통곡하고 싶은 영혼들이 쉽게 빠져드는 리듬에 가을까지 버무려지면 그럴 수밖에.

'카니발의 아침'은 그리스 신화 오르페와 유리디체의 사랑을 바탕으로 만든 프랑스 감독 마르셀 까뮈의 작품무대가 브라질 빈민가로 옮겨진 영화다. 예기치 않은 죽음과 좌절로 이어지는 연인들의 짧은 사랑이야기. 스토리보다 주제곡이 백미다. 중독성 강한 보사노바 리듬에서 진한 애수가 뚝뚝 떨어져 나온다. 나뭇잎 사이로 스치는 조락의 소리와 함께 투스 틸레만의 하모니카 연주라도 홀로 들으면 고독에 몸부림이 쳐질 지경이다. 여가수 페라코모의 허밍은 또 어떤가. 허망한 시선으로 푸른 창공을 응시하며 인생의 초점을 잃어버린듯한 오르페의 창법. 라틴출신 세계적인 음악가 안토니오 카를로스 죠빔이 이 노래를 즐기다가 가을의 고독에 실려 생을 마감했다.

뜨겁던 여름 축제가 끝나고 태풍의 심술까지 꺾이면 계절은 어김없이 바뀐다. 속세의 인연들이 떠나고 바람 끝이 차가워지는 길목에서 사람들은 내면 속으로 돌아간다. 침묵에서 왔다가 다시 침묵 속으로 돌아가는 부고의 슬픈 소식들이 더욱 애잔해지는 가을이다. 릴케의 시처럼 들녘에는 남국의 햇빛에 마지막 과실이 익어가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숨가쁘게 달려 왔는가를 되뇌며 그 처연함에 옷깃을 여민다. 누구라도 겸허해지고 낮은 곳으로 침잠하고 싶어진다. 참지 못할 고통도 없고 넘지 못할 운명도 없으련만 사는 것은 왜 이리도 갈수록 치열하고 팍팍할까. 그래 봐야 모든 것이 다 문득 흘러가는 가을 하늘의 저 구름 같은 것 일 텐데.

당신의 지난여름은 얼마나 뜨거웠는가. 그늘도 마다하고 뙤약볕 한 뼘 가려줄 수 없는 척박한 땅에 매 먼저 나아가 오히려 그 뜨거움을 꽃으로 피운 저 해바라기의 열정을 보라.

당신의 지난여름은 얼마나 성장 했는가. 길은 나 있었지만 아무도 돌보지 않는 땅에서 최후의 물 한 방울마저 스스로 힘 자라는 데까지 끌어올린 저 해바라기의 성심을 보라.

당신의 지난여름은 얼마나 인내 했는가. 시도 때도 없던 바람과 호우에 심신이 상처투성이가 됐을지라도 끝내 세상 산 보람과 허무마저 삭이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흙으로 돌아가는 저 진퇴의 미학을 보라.

가을날의 오후 산책길에서 만난 들판의 해바라기 한 송이가 여운을 남긴다. 우리가 이루려고 했던 모든 것들, 지워버리고 싶었던 수많은 일들, 그 후회와 엉클어진 인연의 숲 속에서 해바라기는 겸허하게 나를 돌아보게 한다. 모진 풍파를 견디고 결국에는 탐스런 알곡을 가득 머금은 해바라기가 나를 성찰의 길로 이끌고 간다. 역사를 통해 위대한 시인 묵객들이 이 계절을 그냥 놓아 보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광야처럼 뜨겁고 적막한 도시의 일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그 속에서 절망과 분노를 안고 가는 수많은 영혼들에게 앞서가는 모든 이들이 손을 내밀어 보는 가을이었으면 한다. 내가 그들과 내면으로는 하나임을 알려주고 공존의 이유가 담긴 이야기를 나누면 이 가을이 조금은 덜 외롭지 않을까 싶다. 계층과 소득과 세대와 지역으로 찢겨진 공동체를 다독이고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탁월한 지도자를 갈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조용하고 소박한 성찰을 찾아가는 일들이 훨씬 커 보이는 시간이다.

하나라도 더 차지하려고 헐뜯고 할퀴는 이 세상 인심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올 수 없는 카니발의 아침을 추억해 본다. 정치도 기업도 사람 사이도 그렇게 몸부림만 치고 살아야 한다면 정녕 허무하고 덧없지 않은가. 모두 함께 카니발의 아침을 맞을 수 없는 것처럼. 비우고 돌아보면 더 견고하게 채워지고 반듯해지는 순리를 받아들이면서. 그리하여 거대한 정신병동 같은 세상에서 나와 관계되는 모든 것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기원하는 자세. 다 같이 벗어난 길을 되찾아 가는 여유로움이 있다면 이 가을이 조금은 덜 고독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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