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의 스즈끼 씨와 마미야 린조
상태바
삿포로의 스즈끼 씨와 마미야 린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http://www.cstimes.com
2012.08.31

 

삿포로의 스즈끼 씨와 마미야 린조

 

 

 

나도 그를 만난 적이 없고 그도 나를 알아온 사이가 아니다. 기차는 미나미 삿포로를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서둘러 내리는 사람들 사이로 유서 깊은 북해도의 중심지 삿포로 시내가 시야에 들어왔다. 영토문제가 부각되는 마당에 홋카이도 청사를 방문해볼 생각으로 두리번거리며 역광장으로 나섰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쳤다. 돌아보니 기차에서 말을 걸었던 노신사. 스즈끼 씨는 올해 일흔 살이다. 요코하마에 살다가 도큐백화점 책임자로 이곳에 온지 21년째. 아팠던 허리 탓에 걸음걸이가 조금 불편하다. 그가 낯선 땅에 내려 고생할 이 나그네를 생각하니 차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더란다. 삿포로에서 네 정거장을 지나야 하는 귀가 길을 반납하고 길동무가 되어준 것이다.

130년 전 메이지시대에 지어진 양식 건물은 이제 새로 지어진 도청에 밀려 북해도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었다. 서양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던 시기. 미국 메사추세츠 주 의회 건물을 그대로 모방했다는 아카렌가(붉은 벽돌)건축기법이 이국적이다. 가파른 목조계단을 올라 2층에 들어서니 마미야 린조 룸이 정면에 배치돼 있다.  마미야 린조(間宮林藏). 그는 일본인 최초로 사할린을 탐험한 지도 제작자다. 1806년 걸어서 가라후토(樺太. 사할린의 일본명. 홋카이도 원주민의 언어 아이누어로 자작나무 섬)를 샅샅이 뒤지고 육지로 이어진 연해주를 지나 송화강변까지 다녀왔으니 당시로서는 대단한 일이었다. 그로부터 한때나마 일본은 사할린을 지배하고 60만 명의 자국민을 이주시켜 본격적인 개발을 했던 때가 있었다.

일본역사에서 린조는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에 비교할만한 인물로 존경 받고 있다. 홋카이도 최북단 도시 와카나이 해변에 보부상 차림의 동상을 세워 사할린을 개척한 그의 공로를 기리고 있다. 삿포로의 역사를 간직한 건물의 중심공간을 '마미야 린조실'로 꾸며 방문객들에게 정성스런 설명을 쏟아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린조를 앞세워 역사적으로 쿠릴열도 북방4개 섬은 일본 영토였으므로 당연히 반환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에토로후, 시코탄, 하보마이, 쿠나시리. 합치면 제주도의 3배를 넘는 면적이다. 규모나 지정학적 가치로 볼 때 러시아에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매력적인 카드다. 하지만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은 이곳을 두 번이나 방문해 자국 영토임을 확인하면서 일본에 찬물을 끼얹고 돌아갔다.

 

   
 ▲사할린 탐험가 마미야 린조 기념관을 돌아보고 홋카이도 청사 앞에서.

댜오위다오(釣魚臺)는 중국과 불을 붙이고 있는 남방영토분쟁의 현장이다. 일본 명 센카쿠 열도에서 아시아 두 강대국이 서로 주먹질에 멱살잡이가 한창이다. 양국이 번갈아 가며 깃발 꽂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바다 위 보잘것없는 돌 화산섬 하나가 사각의 링으로 변한 것이다. 삿포로를 돌아보는 날 홍콩과 광저우 텐진 등 중국 도시에서는 격렬한 반일데모가 이어졌다. 그들이 말하는 탈 아시아 친 유럽(脫亞入歐)은 적어도 이 시대에는 그저 희미한 역사적 그림자 정도로 퇴색해 가는 느낌이다. 아시아적 가치와 선린관계를 외면했다가 단단히 발목이 잡혀 매우 어려운 형편으로 몰려가는 현실이 이를 반증해주고 있다.

한류 덕분에 우리 드라마를 모조리 복사해 집에서 즐겨 보고 있다는 스즈끼 씨의 이야기를 끓을 수가 없었다. 독도를 말하고 싶었지만 참고 참다가 그와 헤어질 때쯤 살짝 걸쳤다. 그런데 스즈끼 씨의 반응은 예외였다. 정치는 정치, 국민은 국민이므로 우리끼리 적대시하고 싸울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며 손을 내민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독도가 일본 땅 이거나 한국 땅 이거나 별로 관심 없다는 점을 알아달라는 말과 함께. 정치가들은 늘 독도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유리할 때 꺼내 흔들지만 정작 시민들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한해 천억 달러가 넘어선 교역 액과 5백 만 명이 오가는 한일관계. 한류를 즐기는 오빠부대와 일본 경제를 배워가는 발걸음으로 분주한 국경선을 애써 높이고 가로막을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는 스즈끼 씨의 이야기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임진왜란 7년과 일제 식민지 36년을 합쳐 43년의 과거 때문에 2천년 이웃을 져 버릴 수는 없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본의회 연설이 다시 떠올랐다. 가깝기 때문에 부대끼고 그러다 보니 서로 고운 정 미운 정이 쌓여서 물고 물리는 사이가 되었던 것 아닌가. 언제까지나 서로에게 이렇게 삿대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제4의 물결에 실려 가는 지금 세상에 내셔널리즘 경쟁으로 문제를 풀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민족주의가 충돌하면 그들끼리의 파국만이 기다릴 뿐이다. 민족주의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민족주의란 한 나라가 세계화로 나아가는 사닥다리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는 역사학자 탁석산 교수의 지적을 새겨봐야 한다. 한일양국이 세계의 선진대열에 서서 비전을 함께 도모해나가는 이 시대에 민족주의 그물을 잘라버리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세계화를 주도하는 두 나라에게 민족주의는 걷어 차버려야 할 낡은 사닥다리여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사방으로 영토욕을 불사르는 일본이 사실 밉기는 하다. 몇 번이나 지적했듯이 옹졸하고 알 수 없는 태도에 화가 치밀지만 알고 보면 소수의 지도자와 정치인들의 전략에 모두가 분개하고 열 받으면서 끌려가는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제 한일관계는 우리가 먼저 대범해져야 진정으로 이기는 길이다. 일본은 러시아 중국 한국을 저버리고 이웃들의 미움 속에 홀로 살아갈 수는 없다. 유럽을 흉내 내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던 시대는 서서히 지나고 있다. 아시아적 가치를 깊이 돌아봐야 한다. 일본은 아시아를 껴안아야 국제사적 두께가 더 깊어진다.

스즈끼 씨는 연말쯤 서울에 오겠단다. 그 동안에도 명동과 제주도를 서 너 번 다녀갔는데 일본과 같은 분위기, 편안한 한국 사람들 표정이 너무 좋다고 털어놓는다. 국가적 충돌과 갈등을 뛰어넘는 우정은 민초들 사이에서 돋아나는 법인가. 그들을 미워하지 않으려면 과거의 잘못은 준엄하게 따지되 감정적으로 넘치지 않도록 추스르는 지혜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다. 그가 서울에 오면 따뜻했던 삿포로의 기억을 안주 삼아 한잔 질펀하게 마시고 싶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