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지 증명제 아직도 미룰 것인가
상태바
차고지 증명제 아직도 미룰 것인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http://www.cstimes.com
2012.08.08

 

차고지 증명제 아직도 미룰 것인가

 

 

먼지 쌓인 스크랩 북, 91년 가을의 어느 일간지 기사를 다시 꺼내 보았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에 1가구 2차량 보유가구에 취득세와 등록세를 중과세하고 차고지 증명제를 실시할 예정이다. 경제기획원은 교통부 등 관계부처 협의를 마무리하고 구체적인 실시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21년 전 발표된 '차고지 증명제' 실시 계획은 아직도 준비가 덜 되었는지 감감 무소식이다.

자동차 등록 2천만대 시대를 눈앞에 두고 전국이 주차지옥으로 변해가고 있다. 차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너도나도 타는데 정신이 팔리다 보니 이제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까지 와버린 느낌이다. 어지간한 골목길은 소방차 진입이 불가능한 지 오래됐고 인도변 '개다리 주차'에 간선도로 바깥차선까지 모든 공간은 불법 주차로 꽉 차있다. 이쯤 되면 주차 무질서가 아니라 '주차난장판시대'다. 우리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대도시는 물론이고 어지간한 읍내 이상 전국 도로는 이미 그 기능을 상실했다. 아무리 단속해봐야 그때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다. 아파트 단지의 삼중주차, 이면도로 통행기능 마비, 야간 대로변 점거 주차, 도심 상가 앞 차선점거주차, 트럭과 버스의 간선도로 주차까지. 차량은 편리한 도구이기에 앞서 모든 이에게 가장 원성이 높은 민원대상이 되고 말았다. 차고지 확보 없이 건물을 짓게 하고 차량소유를 인정해 준 원죄를 이제야 되돌려 받고 있는 셈이다.

주차시비로 이웃끼리 삿대질 주먹질 하는 것은 뉴스거리도 아니다. 심지어는 칼부림까지 벌어지는 판국이니까. 소방차와 응급차량들이 통행할 수 없게 된 도시의 뒷길들은 일상의 풍경이다. 이대로 모두 혈압이 올라 한꺼번에 터질 것 같다고 고개를 흔드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91년, 93년, 97년 줄기차게 요구하던 정부의 차고지 증명제는 국회에서 번번이 저지당했다. "차량을 생계수단으로 삼고 있는 저소득층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가 명분이지만 실은 표 떨어지는 소리를 두려워한 정치인들의 반대를 넘지 못한 때문이다.

자동차가 신분차이를 상징하는 시대가 이제는 지났다. 차는 평범한 시민들의 생활필수품이다. 차별이나 정치적 접근이 아닌 보편적 질서차원의 설득이 요청되는 문제다. 차고지 증명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치고 선진국의 품격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세상일은 다 절차와 단계가 있는 법이다. 내용이 정제되지 않았는데 포장만 요란하게 한다고 국가의 수준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이미 1962년부터 차고지 증명제를 실시한 일본을 보자. 도시는 물론 농촌주택까지 차고지 설치는 그야말로 기본의무다. 이면도로에 불법 주차된 차량은 아예 상상할 수 없다. 미국이나 유럽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이런 일로 열 받으면 할 수 없이 자주 일본을 비교하게 되는데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타이밍을 맞춘 제도와 이를 지키기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이 선진 자동차 문화를 뿌리 내리도록 한 일본의 비결이었다. 차고지 증명제를 미루면 무조건 서민들의 이익이 보호되는 것 일까. 여기에 드는 경제적 비용과 희생이 너무 크다는 점이 간과되고 있다. 차고지 증명을 위반한 범칙금으로 소수의 약자를 지원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 볼만 하다.

올림픽을 앞두고 범정부적으로 나선 국가적 대사는 다름 아닌 화장실 청결운동이었다. 86 아시안 게임 직전 기자는 당시 전국의 수많은 화장실을 순례했다. '푸세식'은 기본이고 악취와 불결의 대명사였던 한국화장실은 단기간에 놀랄 만큼 빠르게 바뀌었다. 화장실이 변하자 그 다음해에는 안전벨트를 캠페인하고, 음주단속과 교통경찰의 뇌물비리를 막기 위한 몰래 카메라 취재경쟁이 불붙었다. 정부와 언론이 합동으로 기초질서 개혁목표를 정하고 독하게 밀어 붙였던 기억이 새롭다. 그나마 우리가 이 정도 수준으로 올라온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자고 나면 깨진 소주병이 널려있는 살벌한 공원과 유원지, 주차방지 말뚝까지 뽑아내고 통행로에 올려 세워놓은 승용차, 아직도 달리는 도로에서 담배꽁초를 서슴없이 날리는 운전자들. 그런 일에 참견하면 "당신이 내 꽁초 버리는데 보태준 것 있느냐"며 엉기는 시민의식으로는 유감스럽지만 국가의 품격을 논할 자격이 없다. 상생의 이유와 공동체의 질서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

금메달 따고 소득 2만 달러 기록했다고 자동적으로 선진국 되는 것은 아니다. 수없이 많은 기초문제를 풀어야 조금씩 격이 올라간다. 수준은 높이고 싶은데 서로의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미루고 실기하면 상황은 다시 도로아미타불이다. 표 떨어지는 소리를 감수해야 모두의 주차피로지수가 내려갈 것이다. 나와 타인의 '삶의 질'이 향상되어야 세상이 편안해지는 것은 기본이치 아닌가. 그러려면 인기 없는 정책을 용기 있게 펼칠 수 있는 리더를 골라내야 한다. 진정성이 담긴 고민과 결단을 내릴 줄 아는 지도자를 가려내는 지혜 말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