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에 갇힌 금융인들
상태바
탐욕에 갇힌 금융인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http://www.cstimes.com
2012.07.25

 

탐욕에 갇힌 금융인들

 

 

신뢰를 먹고 살아야 할 금융권이 내놓고 서민들 뒤통수를 치다가 들통이 났다. 멋대로 금리를 주물러 이익을 부풀리고 자기들끼리 배를 채웠다. 비난이 쏟아지자 온갖 변명에 억울하다는 하소연이 난무한다. 그런데 왜 억울할 짓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금리 바가지로 21조원의 이익금을 챙긴 행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것도 서민들의 지갑을 털어내서 올린 실적이라니. 이런데도 금융당국은 회초리를 든 공정거래위원회나 감사원에 대고 삿대질을 하는 판국이니 국민들은 도대체 누구를 믿어야 하나.

소득이 높은 사회일수록 신뢰라는 연결고리가 단단하다. 범죄나 남 뒤통수 치는 수법들이 훨씬 적다. 목숨 걸고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개발연대를 살아온 우리 같은 세대들에게는 신뢰 없는 세월이 많았다. 정책과 제도라는 이름의 폭력에 당하지 않으려다 보니 유난히 현금 선호하고 장롱에 감춰두던 습관에 익숙하다. 난척하고 있는 거 소문나면 다친다는 생각 때문에. 하다못해 동네 이장 줄이라도 쥐고 있어야 안심이었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조심스럽게 지나온 과거사가 그리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다.

기를 쓰고 압축, 단축, 초고속 성장을 외치다 보니 이제 먹고 살만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숫자로만 보면"이라는 단서가 붙어야 맞다. 세계 최단기간 성장기록 경신에 모두의 시선이 쏠려 있었던 탓에 선진사회가 오면 그 속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 소프트웨어 준비가 미진했다. 글로벌 톱 10의 경제대국이나 소득 선진국이라는 포장이 무색하다. 정치의 부패 고리는 20년, 10년 전이나 그대로이고 정책사기는 여전하다. G20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우리끼리 선진국 되었다고 자위하면 뭐 하나. 바탕은 옛날이나 똑 같은데.

이 사기극의 주인공이 4대 은행이라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런 은행의 금융지주사 수장들을 특정지역 인사들이 싹쓸이하고 공정경쟁과 정의를 외친다. 어느 은행은 학력에 따라 차등 금리를 매겨왔다니 이러고도 대한민국이 선진국이고 수준 있는 나라인지가 의심스럽다. 금융감독원은 어떤 기능을 하는 기관인지 이 기회에 국민 앞에 소상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적당하게 눈감아 주고 때가 되면 퇴직동료 감사자리 내보내고 이런 식의 짜고 치는 판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산업경제는 세계를 호령하는데 금융의 후진성은 패를 보이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이미 죽고 없어진 1400명에게 카드를 발급해 200억 원을 대출해주고도 몰랐다"
"벌써 문 닫았어야 할 저축은행을 살려줘 화를 키웠다"
"변액보험 수익률을 조작해 고객을 조직적으로 속였다"

이 같은 행위들이 국가의 명령을 빙자해 백주에 벌어진 금융편법 수법 들이다. 은행은 하수인 역할만 해서 잘 모른다고 발뺌하고 있고 눈감아준 금융당국은 꿀 먹은 벙어리다. 국가가 모든 것을 독점하는 반자유주의식 금융제도가 가져오는 총체적 난맥상을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

몇 년 전 독립된 금융소비자 보호원을 만든다고 호들갑을 떨던 때가 있었다. 온 동네 소문과 생색은 다 내더니 '금융소비자 보호처'로 가위질 해 금감원 내부 부서로 조용히 눌러 앉혔다. 이러면 금융사의 수많은 농간에 당한 소비자들은 대체 어디 가서 하소연 하란 말인가. 집단소송제도 없고 금융소비자 보호법도 만들어 지지 않은 현실에서 소비자들은 방어권을 행사할 수가 없다. 그래도 못 참겠으면 개별적으로 소송하라는 얘기인데. 개인적으로 금리 손해 몇 십 만원 때문에 변호사 사고 소장 만들어 재판하라면 누가 그 짓을 감당할 수 있겠나. 이러니 금융권 전체가 소비자들을 우습게 알고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금리 담합에 대항해 소송하면 뭐하나. 결과는 과징금 몇 푼으로 끝나고 소비자들만 또 거덜 나게 돼있다. 문서를 남기지 않고 교묘하게 진행되는 당국의 창구지도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문제가 터져도 증거가 없고 "그런 적이 없다"가 답이다. 금융 사기에는 국가가 광범위하게 개입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금융업이 국가의 엄격한 면허사업이기 때문이다. 리보금리를 조작한 바클레이즈나 CD금리를 속인 국내 은행들이나 또 별다른 처벌 받지 않고 잘 넘어갈 것이다.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돌풍에는 이유가 있다. 미국에서는 몇 만부도 안 나간 책이 우리나라로 건너와 100만부가 넘었고 그의 다른 저서까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정의에 목마른 대학생 수 천 명이 지난 달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저자의 특강을 듣는 장면은 해외토픽으로 세계의 매스컴을 달궜다. 따지면 당사자만 피곤한 절차 때문에 우리에게 정의는 아직 먼 나라 이야기다. 당국자들은 정책이라는 명분으로 마음껏 휘두르고 떠나면 그만이다. 정책실패를 제대로 심판한 적이 없다. 이런 국가의 사기를 정당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트러스트로 촘촘히 엮인 세상을 바랐던 선진화는 아직도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틈만 나면 자신과 집단의 이익 챙기기에 빠져 상대를 기만하려는 불공정이 온존하고 있다. 탐욕에 빠진 금융권의 이런 못 믿을 사람들을 이제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 금융정책의 낡은 패러다임을 확 바꾸고 금융소비자 피해를 막는 다양한 프로그램 구상이 시급하다. '트러스트 소사이어티'를 앞당기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수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목 놓아 경제 정의를 외치는지 진지하게 경청할 때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