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이 흐르는 집, 훈데르트 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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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이 흐르는 집, 훈데르트 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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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2

 

곡선이 흐르는 집, 훈데르트 바서

   

 

 

거실 밖 조그만 정원에 자리한 꽃들이 계절마다 번갈아 고개를 내민다. 소나무, 앵두, 라일락, 장미, 무스카리, 개나리, 연꽃이 잘 어울려 지낸다. 나이가 들면 자연을 찾는다더니 틈날 때마다 물주고 그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게 이젠 큰 재밋거리다. 배신하지 않고 땀의 보상을 주는 식물들. 세상에 지친 몸을 이끌고 야밤에 들어와도 이들의 향기 속으로 잠깐 나서면 언제나 오감이 다시 열린다.

삭막한 아파트 옥상에 화초를 가꾸면서 이런 아이디어를 최초로 낸 건축화가 훈데르트 바서를 알게 되었다. "우리가 사는 곳의 진정한 주인은 자연이고 그들을 주인으로 모시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해 문명세계에 큰 파문을 던졌던 괴짜 예술인. 직선은 거부하고 곡선을 고집한 그의 작품세계는 오스트리아를 넘어 세계각지에서 도시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연주의와 동심을 자극하고 있다. 비엔나로 떠나는 길은 그래서 작은 기대가 있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다뉴브 강변길 초록이 짙다. 도심지가 보이기 시작하자 알록달록 색칠한 거대한 소각장이 눈에 확 들어온다. 쓰레기 처리장을 예술 건물로 바꿔놓은 훈데르트 바서의 작품이다. 전 세계 환경관련 공무원들의 순례코스 1번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역사도 팔고 현대 건축으로도 시선을 모으는 이 나라가 부럽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곧바로 비엔나 도심을 향했다. 트램(전차)과 지하철을 바꿔 타고 부지런히 걸어 라데츠키 플라츠의 훈데르트 바서 하우스를 찾았다.

벽면이 물결처럼 휘어지고 흘러 내리는 듯하다. 디자인이 독특하다. 공간이 확보된 기둥은 파스텔 톤의 원형공이 중간 중간 박혀있다. 창문모양은 제각각이다. 아파트라기보다 동화나라 판타지 랜드 같다. 네모 건축에 질린 서울을 떠나 비엔나에서 만난 곡선 예술은 신선한 충격이다. 맞은 편 칼케 빌리지에 들러 그가 남긴 흥미로운 건축 디자인과 그림들을 두 눈 속에 실컷 채워 넣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내 훈데르트 바서가 디자인한 아파트 현관에서


프리덴 슈리이히 훈데르트 바서(Friedensreich Regentag Dunkellbunt Hundert Wassre. 1928-2000)는 2차 대전 때 외가친척 69명을 잃었다. 어린 시절 전쟁으로 파괴된 건물 폐허 속에서 피어나는 새싹을 보고 자연정신주의(Natural Spirit)를 떠올렸다. 이를 테마로 평생 "건축치료의 길"을 고집했다. 집은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인간이 숨을 쉬고 살아야 하는 제3의 피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곡선으로 현대문명에 맞서려 했던 그의 생각을 이해할 것 같다.

구스타프 크림트나 에곤 쉴레와 함께 오스트리아를 세계에 알린 대표적인 화가지만 훈데르트 바서는 유럽에 머물지 않고 일본과 뉴질랜드 미국으로 글로벌 무대를 지향했다. 일본문화에 심취해 나고야에서 판화작업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고 일본인 부인과 살았다. 그래서 인지 아시아에는 일본에 많은 작품들이 남겨져 있다. 노년에는 오스트리아 국적을 버리고 자연의 나라 뉴질랜드 사람이 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환경운동가, 건축가, 화가, 평화주의자로 행동하는 예술가의 삶을 살았다. 본인이 직접 지은 이름 훈데르트 바서는 백 개의 물줄기를 뜻한다. 이름부터 자연주의 냄새가 물씬하다.

"신은 서두르지 않았다"며 80년째 시공 중인 바르셀로나 대성당의 건축가 가우디.
"신은 직선을 만들지 않았다"는 훈데르트 바서의 자연주의 건축.
이 '느림과 곡선의 미학'이 21세기 건축역사를 주도하고 있다. 반지의 제왕 호빗족 마을의 모태 블루마우 온천이 그의 대표작이다. 2200개의 창문모양 모두가 다른 것이 세계적인 화제거리다. "우리가 사는 곳은 자연이 진정한 주인이다. 인간은 그저 잠깐 들러 빌려 쓰는 것인데 우리는 그들의 터전을 뺏으려 한다". 창문에 대한 당신의 권리만큼 나무에 대한 당신의 의무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던 정신세계가 호기심 덩어리다.

훈데르트 바서가 세상을 떠난 뒤 서울에서 두어 번 전시회가 있었다. 미래에 영향을 미칠 예술가 서열 1위에 꼽히는 그의 이야기가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그가 남긴 작품세계의 진정한 정신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식기반사회에서 요구되는 창의력을 자연주의에 입혀서 잘 익혀 낸 것이 아닐까. 호모 크리에이티브(Homo Cerative. 창조적 인간)는 시대의 아이콘이다. 훈데르트 바서를 본 우리 어린이들 가운데 예술사를 새로 써내는 혁신적 아이디어가 나오기를 바란다.

훈데르트 바서는 루소를 좋아했다. 고상한 야만인 또는 순진무구한 철학자로 오늘날까지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쟝자크 루소. 오늘은 그가 태어난 지 300년이 되는 날이다. 비엔나에서 만난 유럽의 정신들은 현대인을 향해 고백한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그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인 자연으로 돌아가라".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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