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경 1대 더 만들면 정년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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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 1대 더 만들면 정년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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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출고 2009년 07월 13일 0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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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의 연구용 망원경이 만들어지면 청춘이 가고 또 1대가 완성되면 중년이 되고 1대 더 만들면 벌써 정년을 준비해야 합니다."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연구부장인 김봉규(50) 박사는 13일 올해 '세계 천문의 해'를 맞아 한국천문연구원의 성과가 무엇인지를 묻자 느닷없이 이같이 말했다.

1987년부터 천문연구원 생활을 시작해 지금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운영될 전파망원경 설치 및 운영을 총괄하고 있는 그를 만나보면 천문과학자라기 보다는 흡사 플랜트 건설현장의 기술자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실제로 그의 설명을 들으면 망원경 1대의 설치 과정이 큰 공장 하나 짓는 것과 비교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 박사는 "한국천문연구원 35년 역사 동안 국가 예산 면에서 큰 망원경의 설치를 요구했던 것은 지금까지 5건에 불과하니 적게 잡아도 대략 7년에 한 번꼴로 요구한 것에 불과하다"고 전제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망원경은 가격이 비싸기도 하지만 설치하는 데도 길게는 10년 이상 걸린다. 먼저 망원경 설치 장소는 맑은 날이 많고 주변 도시 불빛이 없는 산 정상이어야 하는데, 몇 년 걸쳐 100개 이상의 산을 조사해야 하고 최종 후보지는 작은 망원경을 직접 들고가서 1주일 이상 텐트를 치고 관측을 수행해야 한다."

최종 후보지가 결정되면 이제는 산 정상까지 새로 길을 닦아야 하는데 그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라고 김 박사는 말했다.

지난 95년 1.8m 광학망원경이 설치된 보현산 천문대의 경우 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의 땅 주인이 1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김 박사는 "그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땅을 팔라고 설득을 한다"며 " 땅 주인이 어디 있는지 경찰도 모르는 경우도 있고, 자신이 땅 주인이라 주장하며 오랫동안 그 곳에서 경작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주인이 따로 있는 경우도 있고, 자신이 그 땅의 주인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고 실제 경험담을 전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땅 사이로 길이 나면 맥이 끊긴다고 생각해서 절대 팔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려 돼지를 몇 마리 잡아 동네 유지들을 모시고 잔치를 하면서 설득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천문연구용 망원경의 또 다른 문제는 그 가격이 정말 '천문학적'이라는 데 있다.

김 박사는 "지난해 설치가 완료된 한국우주전파관측망은 3대의 전파망원경으로 구성되는데 가격이 150억원을 호가한다"며 "거기에 카메라에 해당하는 수신기, 관측자료를 분석하는 상관기 등의 장비는 자체 개발인데도 200억원 이상 들고 3대의 동시 측정을 위한 원자시계까지 필요해 총가격은 400억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적 상황에서 이런 엄청난 '시간과 돈'에도 망원경 사업이 가능했던 것은 문화민족의 긍지를 느끼게 한다고 자평했다.

김 박사는 특히 천문학의 연구의의를 묻는 질문에 "기초과학이 다 그렇지만 천문학도 우주에 대해 인간이 궁금해하는 것을 밝혀 지식을 넓히고자 할 뿐"이라며 "지금 우리 과학기술계는 산업과 실용기술에 접목되지는 않더라도 '지식' 그 자체의 추구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서울대 천문학과에서 석사학위, 일본 나고야대학교 천체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천문학회 교육홍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천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많은 글을 써온 천문학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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