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간에서 만난 클레오파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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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간에서 만난 클레오파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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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5

 

마구간에서 만난 클레오파트라

   

 

600년 전에 지어진 수도원 건물이 찬란한 축제극장으로 돌아왔다. 신성로마제국 시절 이곳을 호령하던 대주교가 말을 기르고 헛간으로 썼다는 음침한 사암 건물. 말들이 여물을 먹도록 고개를 내밀게 설계된 사각공간들이 아직도 무대전면에 그대로 간직돼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 유럽으로 초대된 느낌이다. 성대했던 오스트리아 역사속으로 들어온 1400명의 관객들은 곧 막이 오를 오페라 '클레오파트라'를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다.

오늘 지휘봉을 잡은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의 손끝이 가늘게 떨린다. 하지만 레닌그라드 출신의 이 거장은 82세의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양손으로 힘차게 오케스트라를 리드해 나갔다. 금관악기로 시작되는 서정성 짙은 연주. 메조소프라노 소피 코흐의 감미로운 노래가 버무려져 클레오파트라의 사랑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짤츠부르크 음악축제를 보기 위해 '마구간 성지'로 모여든 세계의 음악 팬들은 쉼 없는 박수갈채에 즐거운 함성이다.

그녀가 사랑한 로마의 장군 케사르가 죽고 범인 부르투스를 잡으러 이집트에 온 안토니우스와 다시 사랑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사랑가는 남녀 성악가 6명의 소리로 완벽하게 재현되었다. 이집트 사막과 천상을 오르내리는 러브스토리. 그러나 끝내 주인공 클레오파트라가 독사에 물려 죽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한국에서는 아직 공연되지 않았던 작품이다. 오랜만에 신선한 감동이었다. 30년 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추억이 겹쳐온다. 본 트랩 대령 가족이 합창을 끝으로 탈출했던 마구간 극장무대. 언제 저곳을 한번 가보나 하는 꿈은 어느덧 흰머리가 섞여가는 나이에 다시 클레오파트라로 현실이 되었다.

   

  ▲짤츠부르크 축제극장에서 '베토벤 바이러스'의 예술감독 서희태 지휘자와 함께

극장을 나서자 거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9월까지 이어지는 축제에 매년 2천 만 명이 방문한다니 기가 질린다. 인구 12만의 소도시에 200배의 방문객들이 몰린다는 얘기다. 안내소에서 받아든 팸플릿은 320개의 음악공연들로 빼곡하다. 1920년 시작된 짤츠부르크 음악축제는 빈 출신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아버지와 작곡가 리하르트 스트라우스 등이 닻을 올렸다. 2차 대전으로 한때 침체되기도 했지만 거장 카라얀이 중흥의 고삐를 당겼고 오늘의 성공을 가져왔다. 모차르트 고향이라는 스토리 외에도 미라벨 궁전, 호헨성, 볼프강 호수로 이어지는 자연은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여름한철 벌어서 먹고 산다더니 오스트리아는 1인당 소득은 5만 달러에 육박한다. 물론 인스부르크 겨울스키와 린츠의 기계공업, 빈의 첨단 기술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정받는다. 하지만 금고는 주로 관광이 채워준다. 호텔과 여행사 예약이 불티나고 공연 티켓은 몇 달 전 이미 매진이다.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베토벤 특별 음악제, 카라얀 레퍼토리로 지속되는 바람몰이는 해마다 세계음악시장을 달군다. 올해도 호세 카레라스와 아바도가 공연 대기 중이다.

아우디와 지멘스, 로렉스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앞 다퉈 공연을 후원한다. 공짜표는 상상 할 수 없다. 잘 차려 입은 연미복에 아끼던 드레스와 핸드백을 들고 음악제 나들이 하는 행복감을 짤츠부르크가 선사해준다. 문명사를 주도했던 역사가 원인이지만 쉬지 않고 만들어내는 축제의 상상력이 성공의 비결이다. 간판 하나 지붕 한쪽도 디자인과 미관심사를 거치는 정성, 유네스코 지정문화제로 세계인의 주머니를 털어다 복원해내는 중세의 건축물들이 지금의 국부를 창출해낸다.

얼마 후면 용평 음악제와 남이섬 재즈 페스티벌이 기다리고 있다. 21세기 진정한 축제 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이 짤츠부르크의 노력을 눈 여겨 봐야 한다. 비록 콘텐츠는 약하지만 우리는 세계적인 음악연주자들을 배출한 나라다. 음악의 본고장 오스트리아가 인정해주는 국보급 지휘자 정명훈이나 러시아 미국이 알아주는 사라 장(장한나)등이 우리의 무기다. 명품 '코리아 써머 축제'는 꿈이 아니다. 한류스타들과 클래식 음악이 접목되는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내면 뭔가 있을법하지 않은가. 무인도에 미술관을 짓고 잡초 무성한 기차역에 예술마을을 만들어 수백만의 관광객을 모으는 나라들도 있다.

역사가 없다고 해보지도 않고 자포자기 하기는 아직 이르다. 이태리와 독일 프랑스에서 음악공부에 열중하는 수 천 명의 젊은이들이 자산이다. 지금부터는 재창조가 답이다. 동방에서 만나는 모짜르트나 클레오파트라는 어떤 모습으로 세계인들에게 다가설 수 있을까. 오페라 극장 복도에서 만난 일본인 고치씨 부부는 벌써 15년째 짤츠부르크를 찾는단다. 중국과 일본의 잠재적 시장을 우리가 흔들어 깨워보자. 생각하기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어쩌면 한국은 미래 음악시장의 숨겨진 곡창지대일 수 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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