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웰치, 우말라
상태바
트루먼, 웰치, 우말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http://www.cstimes.com
2012.05.22

 

트루먼, 웰치, 우말라  

 

 

2차 세계 대전 막바지인 1945년 해리 트루먼은 루즈벨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으로서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알고 있었다. 루즈벨트가 세계문제에 관심을 갖는 동안 트루먼은 부통령으로서 국내문제를 처리하는데 온 정성을 쏟아 붓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대통령이 되었으니 전쟁으로 지연된 뉴딜정책을 완수해 10년 이상 지속된 미국의 불황을 타개하고 싶었다. 실제로 그는 미국의 국내정책을 푸는 일에 평생을 바쳐왔다.

하지만 대통령직에 오른 뒤 현시점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독일이 항복하면 사후처리를 위해 포츠담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는 참모의 말은 그를 고민에 빠뜨렸다. 그러면 처칠과 스탈린을 상대해 세계 문제를 논의해야 할 텐데 막상 국제문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트루먼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해야만 하는 국제문제'를 공부하기 위해 즉시 마샬 장군과 딘 에치슨을 스승으로 초빙했다. 그 결과 공산주의를 봉쇄하면서 마샬플랜을 효과적으로 추진시켜 일본을 재건해낸 최고의 대통령으로 우뚝 섰다. 동시에 유럽을 부흥시켜 전후 50년 동안 자유세계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1981년 잭 웰치가 GE의 CEO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과제로 구조조정을 선택했다. 경제계는 화학사업 부문 책임자였던 웰치의 이력으로 볼 때 당연히 해외사업 확장을 예상했지만 전혀 다른 결단을 내렸다. 웰치는 '하고 싶은 일'을 접고 '지금 해야만 하는 일'을 찾아 고민을 거듭했다. 수많은 GE의 사업부문 가운데 현재 수익성이 높지만 그 분야에서 1등을 할 수 없는 업종을 폐기하는 완전히 새로운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경영계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결단이었다. 그래서 얻어진 별명이 '가위손 웰치'.

그 결과 GE는 전통 제조업에서 지금의 첨단 기술회사로 재탄생 했다. 20년 가까이 CEO로 재직하면서 불화도 많았지만 5년 마다 새로운 구조조정을 집행했고 그때마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6(Six)시그마와 품질개혁 운동은 당분간 넘기 어려운 경영학계의 연구모델로 손꼽힌다. 적당하게 해외사업이나 늘리고 안주했더라면 100년 기업 GE는 그 동안 지나간 몇 번의 쓰나미에 이미 흔적도 없어졌을 것이라는 게 경영그루들의 한결같은 결론이다.

13년 전 필자는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을 인터뷰하기 위해 리마를 방문했다. 페루인들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 당선된 일본계 남미 대통령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의 따뜻한 영접과 대통령 궁에서의 장시간 대담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곧 이어 터진 부정부패와 인권탄압, 여기에다 야당의원을 돈으로 매수하는 비디오 장면이 폭로되면서 권좌를 오래 지키지는 못했다. 리마에 머무는 동안 페루 언론들은 후지모리 정권에 반기를 든 육군 중령 오얀타 우말라의 쿠데타 미수 소식을 연일 대서특필 했다.

세월이 지나 후지모리는 실각하고 곧이어 사면 복권된 우말라는 2004년 주한 페루 대사관 무관으로 서울에서 근무하는 인연을 맺는다. 그리고 본국으로 돌아가 좌파 정당에 투신하고 민심의 지지를 얻어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지난해 6월 바로 자신이 반기를 들었던 그 후지모리 대통령의 딸 게이코 후보를 꺾고 36년 만에 좌파 정권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달 초 대통령 자격으로 우리나라를 다시 찾은 우말라는 서울근무시절을 추억하면서 "한국을 배우고 싶다. 한국의 선진기술을 조국 페루에 이전해 달라"며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을 부지런히 만나고 돌아갔다.

우말라는 회견에서 "대통령은 자기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대통령은 해야만 하는 일을 찾아내고 그 일을 열심히 해서 구체적 성과를 도출해내야 할 말이 있다"고 밝혔다. "참모와 국민의 소리를 듣는 척하고 적당히 흘려버리는 경청이 아니라 귀담아 듣는 정청(正廳)의 자세를 잃지 않겠다. 항상 적게 말하고 많이 듣기 위해 LTML(Less talk more listen)을 작은 종이에 적어 품고 다닌다"고 털어놨다. 비록 후진국 지도자이지만 철학과 신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국가나 기업을 막론하고 지도자는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만 하는 일'에 숙명의 고리가 엮여져 있다. 그 지혜와 용기를 가려내는 것이 선거의 변별력이다. 실패한 지도자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고, 성공한 지도자는 해야만 하는 일을 조심스럽게 하며 산다. 역사가 지겹도록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때만 되면 지도자의 측근과 친척들이 줄줄이 감옥 행이다. 아직도 우리 대통령은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