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의 미학
상태바
회색의 미학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http://www.cstimes.com
2012.04.20

 

회색의 미학

  

 

자주 가지는 않지만 모처럼 들른 미술관에 색다른 그림이 가득하다. 젊은 화가 최병진의 화폭에는 주로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로봇을 닮아 기괴한 모습도 있고 희미해서 일그러진 주인공도 등장한다. 그들의 얼굴은 모두 회색이다. '문 없는 방'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다수의 사람들이 양면의 역사를 두고 고민하는 화폭들이 이색적이다. 일상의 임무를 하면서도 늘 옳고 그름이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회색지대의 고뇌로 그려져 있다. '에라스무스와 루터'라는 작품 앞에 오래 발길이 머문다. 사람들은 종교개혁가로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루터를 늘 기억하지만 동시대 사람으로 에라스무스도 있었다. 작가는 에라스무스를 주인공으로 루터를 배경으로 처리했다.

 

그가 즐겨 그려낸 회색 얼굴들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하나의 흰색. 하나의 검정색. 이 강렬한 양쪽을 좀 더 온화하고 조화롭게 만들려고 무던히 고민했을 것이다. 어떻게 했을까. 붓으로 흑을 칠하고 백을 입혀서 얼굴에서 수없이 섞이게 했을 것이다. 검은색이 흰색 위에 무리 없이 덮이고 흰색이 검은색 아래 덧칠되면서 고뇌하는 현대인의 자화상들이 창조됐을 것이다. 흑백의 중간지대라고 할 수 있는 회색의 탄생을 즐기면서. 전혀 다른 재료에서 출발한 두 가지 색이 섞이면 섞일수록 혼합의 정점에서 아름다운 회색으로 재탄생 하는 신비를 맛보았을 것이다.

회색은 흔히 재색이라고 한다. 타고 남은 재와 같은 색이라는 뜻이다. 희든 검든 제 몸을 다 태워야 얻을 수 있는 컬러다. 극단적이지 않으면서 은은하다. 색감은 희미하지만 편안하고 포용적이다. 개성이 없는 것 같지만 캔버스를 메우는 화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색이다. 아마도 회색이 가지는 혼합의 미학 때문일 것이다. 회색의 예술성과 가치는 최병진뿐만 아니라 역사를 통해 수많은 거장들이 이미 인정한 영역이다.

역사학자 윤해동(서울대 교수)은 한국 근현대사를 저항과 수탈이라는 이분법으로 구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서 신선한 화제를 모았다. 독립운동과 저항의 이데올로기만 배워온 사람들에게 그의 주장은 약간 거칠어 보인다. 하지만 일제암흑기가 배경인 '식민지의 회색지대'에서 그는 그 시대가 지배와 저항으로만 단순하게 구별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친일과 저항의 중간지대를 관통하는 수많은 프리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양분법으로는 다중(多衆)을 포섭할 수 없다. 회색지대에서 끓임 없이 동요하면서도 협력하고 저항하는 양면성이 그 시대의 진정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을 달궜던 총선굿판이 끝났다. 미디어가 전하는 성적표는 명확한 색깔의 엇갈림이다. 이념과 세대, 지역과 계층으로 선명해진 갈등의 지도만이 나부낀다. 충청지역의 중립적 심판이 그나마 위안이랄까. 민주화 20년을 넘어서면서도 우리는 아직 흑백의 줄서기에 골몰해 있다. 정치적 화제에는 항상 이쪽인가 저쪽인가가 관심사다. 색깔이 다르다고 생각되면 다음부터 대화가 막힌다. 이도 저도 아니면 줏대 없는 인간이고 회색분자다. 중간색을 지향하는 정당은 아예 출생신고가 불가능하다. 회색 민주주의를 꿈꾸는 사람들은 아직도 천박하고 줏대 없는 인간들로 싸잡아 구석신세다.

회색이 무시당하는 한 우리정치는 세월에 관계없이 승자독식과 복수의 악순환만 지속될 것이다. 승자와 패자가 6:4로 배려되는 포용은 기대난망이다. 민주화 이후 서너 번의 정권교체가 이뤄졌지만 8:1, 9:1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인사실패와 패거리 정치의 반복이 대충의 이미지다. 국민통합의 열망은 실망과 분노로 변하고 다시 사람들은 말을 거둬 들인다.

90을 바라보는 노년의 영국 대 소설가 존 르카르네는 '죽은 자에게 걸려온 전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거짓말하고 속이는 더러운 술수 덕분에 보통사람들이 느끼는 고립감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당신에게 제공하는 연료로 흔들리는 깃발과 구호 같은 것들로 당신이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다른 종류의 연료가 필요하다" 흑백과 이념의 연료를 강제 주입하는 시대를 끝내야 민초들의 삶이 나아진다는 질책이다. 회색지대에서 건전한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정치의 희망이 있다는 은유적 표현 아니겠는가.

보수에 귀 기울이면서도 끎임 없이 진보적 발전을 갈망하는 회색지대가 중산층을 두텁게 한다. 회색 민주주의가 아직도 이념이 난무하는 이 어지러운 시대를 마감시킬 수 있다. 흑백으로 몰아가는 낡은 프레임은 이제 통하지 않게 해야 한다. 미디어, 정당, 사회단체. 모든 집단이 줄서기를 강요하는 시대는 옳은 역사가 아니다. 줄 세우기와 패싸움 붙이기는 그들의 영원한 장사거리일 뿐이다.

"회색분자가 많아야 좋은 세상이다. 중도라는 것은 인간의 상식이다. 회색 비전을 밝혀야 세상이 바로 선다" 민중의 아픈 역사를 주제로 고민하는 작가 김훈의 외침이 실천의 시대로 접어들기를 기원해본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