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를 외면하는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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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를 외면하는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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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9

 

좀비를 외면하는 어른들

 

 

좀비가 다니는 천국을 향해 좀비국의 모든 좀비들이 모여 들었다. 좀비국 구성원은 전부 고아다. 이들은 모이면 서로 취하고 소리를 지르고 이유 없이 물건을 내던진다. 레스토랑을 때려 부수고 주유소를 불 지른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파괴 대상이다. 닥치는 대로 신나게 깨부수는 배경에는 놀랍게도 우아한 기성세대들이 즐긴다는 모차르트의 명곡 '피가로의 결혼'이 깔려 퍼진다.

젊은이들의 새로운 문화캐릭터라는 좀비가 궁금해서 작심하고 들여다본 영화 '좀비랜드'의 내용이다. 개봉 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인기가 뜨겁다. 취직도 연애도 결혼도 포기한 연약한 젊은 세대가 기존질서를 굳건하게 지키는 '잘난 것들'을 부숴버리고 싶다는 메시지가 전편에 흐른다. 섬뜩하다. 영화 속 그들은 절규한다. 우리에겐 '좀 더 힘들어진 취업'과 '어제보다 좀 더 힘든 오늘'이 있을 뿐이라고.

좀비(Zombie)는 서인도제도의 부두교 신자들이 초자연적 힘으로 되살려 낸다는 시체가 어원이다. 말하자면 "걸어다니는 시체"다. 영력(靈力)으로 되살아났으니 절대로 죽지 않는다. 신체를 잘라내도 멀쩡하게 살아 움직이면서 주인을 위해 어떤 임무도 수행한다,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통해 좀비를 세상에 내놓았다. 한동안 잠잠하던 좀비는 90년대 들어 '반지의 제왕' 감독 피터 잭슨의 '브레인데드(Braindead)'로 이어지고 최근에는 좀비 보안관이 주인공인 TV 시리즈 '워킹데드(Walking dead)'가 미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이변을 낳았다.

좀비 열풍은 빠르게 확산 중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을 거쳐 우리에게도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문화적 현상으로 다가와 있다. 만화 사이트 웹툰에서는 좀비시리즈가 초강세다. 인기작가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은 필자도 애독 중이다. 며칠 굶은 듯한 퀭한 눈동자, 힘없이 쳐진 어깨, 흐느적거리는 움직임, 아무런 희망도 목적도 없이 몰려다니는 좀비들이 이 시대 청년들 같다. 그들이 좀비에 열광하는 이유다. 좀비영화는 기본이고 좀비 만화, 좀비게임, 좀비기업, 드디어는 트위터의 종북좀비까지 바야흐로 좀비전성시대다.

오늘 하루 편하고 쉴 곳이 있으면 만사 오케이. 직업도 가정도 희망도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다. 잃어버린 세대들은 모든 기대를 접고 좀비 같은 일상을 꿈꾼다. 좀비는 관계를 무시한다. 친척, 친구, 사회관계, 국가관이나 애국은 그야말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다. 나의 단순하고 편안한 하루가 전부다. 지난해 월가를 점령하려던 청년들의 시위는 좀비영화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여졌다. 좀비가 이 세상 잘난 것들을 다 먹어주면 나의 세상이 온다. 인류 문명의 후퇴가 나의 새로운 기회다. 기득권을 부숴야 세상이 똑바로 간다 등이 좀비세대의 생각이다.

그 좀비들에게 SNS라는 네트워크가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였다. 단순하고 감성적 충동이 난무한다. 일차원적 판단이 정치의 계절을 맞아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내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기성세대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진정한 헤아림 없이 어떤 경청과정도 없이 다급하게 편을 가르고 패싸움에 줄서기를 강요한다. 그럴수록 말해질 수 없는 것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슬픔들, 처절한 패배와 왕따, 아무리 외치고 설쳐도 실제로 내가 구제될 수 없다는 울컥함이 그들의 목젖을 짓누른다.

말의 성찬이 사나워지는 정치이벤트가 다가왔다. 거리마다 포스터가 나붙고 어깨띠를 두른 '정치인부'들이 지하철 입구마다 장사진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사람을 어루만져야 하는 최상의 개념 아닌가 말로만 세상을 바꾸겠다는 말의 화려함들, 말의 계절이 끝나도 깊은 고뇌와 따뜻함을 잃지 않는 그런 세상 만들기,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이 세상살이의 저쪽에서 인간에 대한 절실한 애정이 경건하게 솟아나는 정치. 그런 정치를 바라고 꿈꾸는 청년들에게 다가온 "대목장날"이 진실을 가르쳐 주는 어른들의 떳떳한 기회인가를 반문해본다.

공존이 무너지고 배반이 난무하면 그들은 말들만 가뜩 떠도는 공허한 하늘을 보며 다시 말문을 닫고 분노의 동굴로 숨어들 것이다. 다음세대의 주역이라고 치켜세우고 함께 가자며 공들인 이벤트가 끝나면 연극무대는 막을 내릴 것이다. 어차피 지켜질 수 없었던 공약들이 무참히 내동댕이쳐지는 현실에 서게 되면 그들은 다시 공존이 아닌 분노로 무장할 것이다. 세계의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를 떠도는 그저 그런 민초들과 약자들, 청년들. 그 동시대인들을 치우치지 않고 함께 끌어올려 균형을 이루는 일들이 이 우울하고 고독한 시대에 필요한 정치일 텐데.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적 사명에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좀비를 주제로 하는 문화상품들의 주장은 한결 같다.

"당신들이 언제나 100% 도덕적일 수는 없는 것을 안다. 그걸 인정하라. 그러면 우리들도 당신들을 인정하고 신뢰할 것이다. 정직하고 믿을만한 어른을 만나고 싶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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