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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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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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6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세상

 

 

때 아닌 몸통과 깃털 공방이 치열하다. 회견을 자처해 흥분된 해명을 쏟아내는 비서관의 표정이 애처롭다. 민간인 사찰을 하지 않았고 검찰수사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왜 이런 폭로가 나왔을까. 원인에 물려 결과가 오는 법이다. 사실 규명보다 파장만 애써 감추려다 보니 논리적 설명도 알리바이도 다 망가진 '이상한 해명'이 장안의 화제거리다. 폭로카드를 꺼내든 주무관의 입막음을 위해 돈을 건넸다고 훌훌 털고 정직하게 접근하면 절대로 안 되는 무슨 비밀이라도 있는 것일까. 일만 터지면 "선의로 뒷돈을 건넸다"는 주장이 최근의 유행이다. 청와대 개입은 절대로 없었다고 주장하는 모습이 오히려 개입의혹을 부풀리는 까닭을 정말 모르는 걸까. 설령 그대로 믿는다면 일개 비서관이 '불법 사찰 드라마'를 총괄 연출했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시나리오가 궁색하다.

 

사건을 몇 달 동안 만지작거렸던 검찰도 얼굴을 못 들기는 마찬가지다. 애초에 은밀한 지시와 돈 전달의 추측 정도는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적나라한 커넥션에 정권의 최고권부가 깊숙이 개입된 고약한 사건임은 상상하지 못했다. 수사를 제대로 했더라면 피차 이런 망신은 면했을 것이다. 하나마나 한 소리지만 "역시 검찰은 어쩔 수 없는 집단이구나" 라는 조소를 또 자초했다. 재수사 액션으로 입막음 하면서 적당히 총선 넘기고 그래서 특검가고 세월 보내면 결국 망각이 치료제다. 과거에 수차 봐왔던 익숙한 대본이다. 정치와 권력의 속성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도 슬픈 쳇바퀴 돌리기다. 틈만 나면 속이고 감춰서라도 거짓을 정직으로 포장하는 구태가 이 대명천지에도 버젓이 살아있다.

원전가동이 정지 되었는데 몇 사람만 쉬쉬하다가 들통이 났다. 핵 연료봉이 들어있는 상태에서 정전되면 원자로가 냉각되지 않아 노심이 녹을 수도 있다. 노심이 녹으면 방사능이 유출된다. 위험천만한 상황을 자기들끼리 숨겼다. 국민의 안전은 뒷전이다. 우선 면피에 집중하다 보니 사후 처리도 보고도 모두 생략했다. 안 그래도 낡은 고리원전에 이러다가 더 큰 사고가 터지면 국민들은 누구를 믿어야 하나. 전문가들은 혀를 찰 일이라고 고개를 흔든다.

공자는 2천 년 전의 세상을 살다간 사람이다. 그는 중도정치의 철학과 원칙을 남겼다. 정치의 기본은 무엇인가? 논어의 안연(顔淵)편에서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정치를 묻는 대목이 나온다. 이 질문에 공자는 경제(足食), 국방(足兵), 그리고 국민의 신뢰(民信)가 정치의 기본이라고 답한다. "그 3가지 중 부득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하고 자공이 묻자 공자는 국방을 버려야(去兵) 한다고 답한다. "나머지 두 가지 중 다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하고 재차 묻자 공자는 경제를 포기(去食)하라고 답한다. 경제나 국방보다 국민의 신뢰를 더 중요한 정치의 기본으로 본 것이다.

정직하지 못해서 망가진 경우는 너무나 많다. 닉슨을 대통령직에서 끌어 내린 워터게이트 사건이 그랬고 전두환 5공 정권의 종말을 고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그랬다. "나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알지 못한다" 고 국민에게 공언한 거짓말,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거짓말. 사건 자체보다 항상 거짓말이 문제였다. 가깝게는 지난해 일본 대지진 때 간 나오토 정권이 그랬다. 일본의 양심 있는 학자들은 '그룹 1984'라는 집단 조사보고를 통해 공황상태에 빠진 국민들에게 원전피해를 거짓 전달해 재앙을 더 키웠다고 분노했다.

역대 어느 문명도 외세에 무너진 적은 없다. 내부의 거짓과 방탕이 비극을 불렀다. 인구에 회자되는 로마에서부터 다시 지금의 아랍 국가들까지 역사는 정확하게 반복을 거듭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말처럼 선진사회는 '트러스트' 즉 신뢰로 촘촘히 엮여 있다. 그 신뢰는 정치가 만들어 낸다. 정치에서 흘러 넘친 믿음의 파도가 경제, 문화를 넘어 사회 구석구석으로 촉촉이 적셔져야 '저비용 고행복'을 누릴 수 있다. 권력이 불신을 자초하면 트러스트를 다시 일구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거짓말 정치, 거짓말 경제, 거짓말 사회의 고리를 내려치지 않으면 나라가 불행해진다. 외형이 번듯해지고 먹고 살만해지면 무슨 소용이 있나. 서로 불신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면 모두가 허상이다.

이 정권에서 아직 의혹이 가시지 않은 여러 일들을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폭로가 더 이어질 것이다. 정권말기에 익히 봐왔던 풍경들이다. 정권의 역사적 평가는 '정직성'에 좌우된다. 그 정직은 신뢰에서 나오고 신뢰는 도덕성에서 온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공한 정치는 신뢰와 도덕성의 바탕에서 꽃피워졌다. 권모술수나 임기응변은 정치의 기초를 무너지게 만드는 독약이다. 진실을 가리고 잠깐은 견딜 수 있어도 영원히 살수는 없다. 손바닥으로 아무리 해를 가려도 햇빛은 더 곧게 '오리발' 사이를 파고든다. 그것이 햇빛의 속성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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