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이 부르는 국부(國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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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이 부르는 국부(國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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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는 국토의 반 이상이 물밑에 있다. 둑을 막아 농토를 만들고 안전시설을 세워 도시를 형성시켰다. 17세기 들어 갑자기 세계적 명성을 얻는 네덜란드는 1200년 이전까지만 해도 매우 초라했다. 홀란트를 비롯한 서부 의 저지국은 물에 잠겨있거나 평상시에도 질퍽한...

 
네덜란드는 국토의 반 이상이 물밑에 있다. 둑을 막아 농토를 만들고 안전시설을 세워 도시를 형성시켰다. 17세기 들어 갑자기 세계적 명성을 얻는 네덜란드는 1200년 이전까지만 해도 매우 초라했다. 홀란트를 비 롯한 서부의 저지국은 물에 잠겨있거나 평상시에도 질퍽한 델타지역이 대부분이다. 그런 나라가 어떻게 세계 전 지역에 식민지를 개척하고 패권국가로 한 시대를 주름 잡았을까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높다.

17세기 유럽전역에 퍼져가던 종교적 갈등과 박해는 거의 광신적인 상황이었다. 이교도를 죽이고 인종청소를 하는가 하면 수천 명씩 집단 매장을 시키는 지극히 배타적인 종교갈등으로 전 유럽이 피바다로 물들여 지 고 있었다. 1625년 영국과 프랑스의 위협을 벗어나 연방공화국으로 탄생한 네덜란드는 곧바로 종교적 관용을 선포했다. 이는 당시 유럽의 상황속에서 혁명적인 조치였다. 그러자 공포속에 떠돌던 남부유럽의 개신교도와 프 랑스의 위그노교도, 독일의 루터파,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세파르디 유대교도, 유럽동부의 아슈케나지 유대교도, 영국의 퀘이커교도와 필그림에 이르기까지 유럽전역에서 종교적 망명자들을 끌어들이는 자석역할을 해냈다. 각지에서 쫓겨난 진취적 이교도들은 유럽과 네덜란드의 상업적 중개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50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경제분야의 패권을 안겨줬다. 유럽의 도시들이 쇠퇴하기 시작한 1570년부터 1620년까지 암스테르담의 인구는 3만에서 20만으로, 로테르담은 7천에서 5만으로, 라이덴은 1만5천에서 7만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예컨대 다이아몬드의 경우 당시 대부분은 인도산이었지만 다면체로 가공하고 상품가치를 덧칠해 무역으로 돈을 벌게 만든 사람들은 스페인에서 추방돼 네덜란드 엔트워프에 정착한 유대인들이었다. 일찍부터 대부 업을 해온 그들은 담보물로 나오는 다이아몬드를 감정하고 특별한 세공기술로 잘 가공된 상품을 유럽과 세계로 반출시켜 엄청난 부를 창출해냈다. 다이아몬드를 시작으로 엔트워프는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합스부르크 왕국 전체의 담보물 교환소이자 유럽최고의 금융시장으로 변모해갔다. 이주민들이 수없이 밀려들어오면서 엔트워프는 유럽의 중심도시로 탈바꿈했다.

새로운 기술자들과 상인들 금융업까지 가세한 무역 네트워크 덕분에 네덜란드의 도시들은 번창을 거듭했다. 특히 엔트워프는 연관산업까지 폭발적으로 확대 발전되면서 직물가공과 사치품, 커피, 차, 산호 등을 풍부하게 거래하는 시장이 형성됐다. 이 같은 부를 바탕으로 네덜란드는 1602년 지브롤티 해전에서 프랑스를 물리치고 승리해 브라질의 설탕과 아메리카의 모피, 서인도, 동인도 회사의 향료까지 세계의 무역품을 독점적으 로 중개하면서 해상과 육상경제의 최강자 위치를 확보했다. 관용이 가져온 국부의 창출이었다.

전성기의 네덜란드 담배와 맥주는 오늘날까지도 명품으로 대접받고 있다. 경제적 부는 철학과 미술에까지 영역을 넓혀 렘브란트와 베르메르를 비롯해 인문학자 그로티우스, 철학자 스피노자와 데카르트 등을 배출 해냈다. 17세기 후반에는 영국함대를 격파하고 해군력과 상업력, 금융력을 석권해 명실상부한 세계적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이 찬란한 역사의 구석구석마다 이주민들과 관용정책을 따라 들어온 이교도들이 중심역할을 해냈 다. 숙련된 기술을 가진 이교도들이 역사상 최대규모의 이동을 감행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나라의 미래 모습을 그릴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나라가 네덜란드와 스위스다. 특히 네덜란드는 강소국 비전의 최적모델로 손꼽힌다. 서울대 임현진 교수 등 사회학자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가장 근접하게 닮을 수 있는 국가모델 가운데 네덜란드를 으뜸으로 평가한다. 비교적 다민족 사회를 형성하고 있고 핵심기술과 금융우위 정책이 세계의 강국으로 나가는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지적이다. 이 배경에는 당연히 역사적으로 관용을 주창해온 그들의 정신과 철학이 내재돼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에이미 추아(Amy Chua)는 그의 저서 "제국의 미래(Day of Empire)"를 통해 인류 역사상 관용을 통하지 않고 강대국이 된 나라는 거의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네덜란드를 비롯해 로마, 몽골제국, 합스부르크, 영국, 미국 등이 좋은 본보기로 거론된다. 특히 지금의 최강대국 미국역시 현재까지처럼 비교적 관용의 철학을 지키느냐 안지키느냐에 따라 초강대국 지위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최근 생산노동력 부족과 때마침 불어준 한류덕분에 우리나라도 이제 100만에 가까운 다민족 구성원들이 다문화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 사람들도 있지만 중국, 베트남, 필리핀, 방글라데시, 인도 네시아, 네팔, 파키스탄 등 다양한 나라의 이주민들이 한국행을 지향하고 있다. 올해는 독일 귀화인 신분으로 이참씨가 한국관광공사 사장까지 오르는 변화를 이뤄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한국에서의 삶은 쉽지 않다. 고단한 노동에 낮은 임금 그리고 사회적 냉대가 다문화 구성원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멸시와 폭행, 인격모독까지 다문화 센터에 접수되는 피해사례는 과연 우리가 OECD 선진국인지를 의심할 정도다. 모처럼 한국으로 시선 을 집중하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코리아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진지하게 돌아볼때가 되었다.

이들은 우리사회의 어려운 일, 힘든 일, 고단한 일 등 소위 3D 업종에서 묵묵히 한국의 국부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대대로 내려오는 단일민족주의는 더 이상 우리의 절대가치가 아니다. 이동과 변화의 시대가 깊어갈수록 다 양함을 수용하고 관용을 베풀어야 나라가 산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오는 이상으로 우리국민들도 세계를 향해 나가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우리가 냉대와 푸대접을 호소하면서 국내에서는 여전히 그들의 악습을 반복 하고 있지는 않는지 말이다.

이민국가로 성공한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톤의 말이다.
"어느 한계층의 사람들이 이미 타고난 권리처럼 누리고 있는 것을 관용이라 부르던 시대는 지났다. 관용은 한계층의 사람들이 다른 계층의 사람들을 가감 없이 받아들임으로서 보다 성숙된 사회를 만드는 촉매제다. 정부는 불관용과 박해를 거들지 않아야 하고 이민자들에게는 선량한 국민으로서의 행동만을 요구할 뿐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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